성운이 쓴 '묘갈명' (3)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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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壬申年, 1572)에 병이 심해지자 임금이 의원을 보내 병을 다스리게 하였으나 도착하기 전 그 해 2월 8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2세이다. 산천재 뒷산에 자리 잡아 4월 6일에 장사 지냈다.
공은 하늘이 내린 자질이 뛰어나고 기질이 고매하여 단엄방직(端嚴方直)하고 강의정민 (剛毅精敏)하였다. 몸가짐이 확고하여 움직임에 법도를 따랐으며 눈으로는 나쁜 것을 보지 않고 귀로는 엿듣는 일이 없었다. 장중한 마음을 항상 흉중에 지니고 태만한 모양을 밖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항상 깊은 방 안에 조용히 거처하여 발걸음이 문 밖을 나가지 않았으니 비록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그 얼굴 보기가 드물었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일어나 관을 쓰고 띠를 두르고는 자리를 바로 하여 시동(尸童) 처럼 앉아 어깨와 등이 꼿꼿하였으니 바라봄에 마치 도형이나 조각상 같았다. 책상에 먼지를 털고 책을 펴면 심안(心眼)이 집중되고 묵관잠사(默觀潛思)하여 책 읽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 방안이 적적하여 마치 사람이 없는 듯 하였다. 품행과 거동이 느긋하고 한가하여 스스로 법도가 있었으며 비록 급하고 놀란 때를 당해도 법도를 잃지 않았으니 매우 볼 만 하였다.
집에서는 엄하게 가족을 다스려 규문(閨門)과 외정(外庭)의 남녀 모두가 정숙하였으니 가까이 뫼시는 몸종들도 머리를 거두어 쪽을 단정히 아니하면 감히 나오지 못했으며 비록 부부 사이라도 또한 그러했다. 벗을 사귐에 반드시 단정하여 그 사람이 벗 할만 하면 비록 포의(布衣)라도 왕공(王公)처럼 높여 반드시 예로써 공경했고 벗하지 못할 사람이면 비록 벼슬이 높고 귀하여도 흙으로 만든 인형 같이 여겨 함께 앉기를 부끄러워 하였다. 이 때문에 사귐이 넓지 못했지만 더불어 아는 이는 학행과 문예를 지니어 모두 당세의 이름난 선비 중에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환하게 밝아서 사람들이 숨길 수 없었으니 어떤 신진 소년이 청반(淸班)에 올라 명성이 드러났거늘 공이 한 번 보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 재주를 끼고 스스로 뽐내며 기세를 부려 사람 대하는 것을 보니 뒷날 어질고 능한 이를 해치는 일이 반드시 이 사람을 연유할 것이다." 하였으니, 그 후 과연 높은 벼슬에 올라 몰래 흉악한 괴수와 결탁하여 법을 농간하고 위세를 부려 선비를 섬멸하였다.
또 어떤 선비가 글재주는 있으나 급제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됨이 음험하고 시기심이 많아 어진 이를 원수 같이 여겼다. 공이 우연히 모임 중에서 보고 물러나 친구에게 말하기를 "내 그 사람의 미간을 살펴보고 그 사람됨을 짐작컨대 외모는 호탕하지만 흉중에 남을 해칠 마음을 품었으니 만일 벼슬을 얻어 심술을 부리면 착한 사람들이 위태할 것이다." 하니 친구가 그 명석함에 탄복했다.
매양 국기일(國忌日)을 당하면 풍악을 듣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더니 하루는 두 셋 높은 관리가 공을 청하여 절에 모여 술자리를 벌였다. 공이 천천히 말하기를 "아무 대왕의 기일이 오늘인데 여러분은 어찌 잠시 잊었는가?"했더니, 좌우가 깜짝 놀라 사과하고 서둘러 풍악과 고기를 물리고는 술만 한두 잔 돌리다가 이내 헤어졌다. 천성이 효우(孝友)에 돈독 하여 어버이 곁에 있을 때는 반드시 온화한 얼굴로 잘 봉양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며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또한 두루 갖추었다.
상(喪) 중에는 애모하여 피눈물을 흘렸으며 상복을 벗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으니 비록 병이 들어도 또한 즐겨 빈소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을 갖추어 알맞게 익었는지 깨끗하게 씻었는지를 부엌 하인에게만 맡기지 아니하고 반드시 몸소 살폈다. 조문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엎드려 곡하고 절할 뿐 함께 앉아 말하지 않았으며 하인에게 분부하여 상을 마치기 전에는 집안의 번잡한 일로 찾아와 고하지 말게 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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