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못해도 본전, 해리스는 잘해야 본전"…미 대선 TV토론 왜

김형구 2024. 9. 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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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강자’ 트럼프의 노련미 vs ‘검사 출신’ 해리스의 정밀타격
10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이 주관하는 대선 TV 토론에서 경제 등 각종 현안을 놓고 90분간 맞대결을 벌일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초박빙으로 흐르는 미국 대선의 최대 분수령이 될 TV 토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핵심 스윙스테이트(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10일(현지시간) ABC 방송 주관으로 90분간 열리는 이번 토론은 20% 안팎으로 추산되는 중도ㆍ부동층의 표심 등 대선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이벤트다.

TV 토론은 대개 유권자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통념이 있었지만, 주요 경합주에서 1%포인트 안팎으로 승부가 결정날 가능성이 큰 이번 대선만큼은 다르다는 게 워싱턴 조야의 관측이다. 일각에선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된 19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 간 토론 이후 64년 만에 가장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대선 토론이란 평도 나온다.

신재민 기자


‘트럼프는 못해도 본전, 해리스는 잘해야 본전’


토론 전날인 9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막바지 토론 준비에 전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5일부터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한 호텔에 머물며 토론장과 비슷한 무대를 세팅하고 트럼프 대역을 스파링 파트너 삼아 모의토론 훈련을 하는 등 사실상 ‘올인 모드’다. 9일 저녁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린 해리스는 “(토론을 앞두고) 트럼프가 걱정되느냐(Are you worried about Trump)”는 취재진의 물음에 답변 없이 전용차에 올랐다.

이번이 대선 토론 7번째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 당일인 10일 필라델피아로 이동할 예정이다. 지난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TV 토론을 앞뒀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상 토론 등 전형적 방식의 토론 준비 대신 보좌진 도움을 받아가며 정책 스터디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노련한 ‘쇼의 강자’ 트럼프를 ‘검사 출신’ 해리스가 어떤 전략으로 맞서며 정밀타격하느냐다. 공격적인 독설과 자화자찬 화법이 이미 대중에게 익숙해진 트럼프와 달리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해리스에겐 사실상 첫 시험대라는 측면에서 부담감이 더 크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의 다자 토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의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안정감 있고 밀리지 않는 말솜씨를 보인 적 있지만 이번 대선 토론은 무게감이 다르다. ‘트럼프는 못해도 본전, 해리스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해리스는 이날 공개된 ‘리키 스마일리 모닝쇼’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토론장에서 또 거짓말을 할 것”이라며 “트럼프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운다. 이번 토론에서 그런 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해리스는 ‘미래’ 강조, 트럼프는 평정심 유지 관건


해리스의 전략은 무엇보다 ‘트럼프 스타일’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해리스 대선 캠프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와 맞섰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과 지난 6월 완패 평가를 받은 바이든 대통령의 ‘통계 암기 모범생’ 스타일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대신 차별화된 정책 구상을 조목조목 짚는 동시에 트럼프를 ‘낡은 세대’로 규정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 ‘과거 대 미래’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쓴다는 전략이다. 그간 유세장에서 반복적으로 외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진 않을 것(We’re not going back)”이란 구호를 트럼프의 면전에서 들려줄 가능성도 있다.

반면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토론에서 선보인 기술과 능력의 재현을 자신하고 있다. 트럼프는 당시 진행자 질문이나 바이든의 반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돌리거나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놨지만 상대방 발언을 끊고 끼어들거나 인신 비방을 하던 것을 자제하는 등 비교적 냉정을 유지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약점을 공격당하면 화제를 돌리거나 자신의 재임 중 치적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특유의 전법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중부 공항에서 열린 유세에서 청중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해리스, 생식권ㆍ총기규제 등 공격 예상


토론 주제는 경제, 국경, 여성 생식권, 치안, 대외 정책 등 미국의 현안이 두루 망라되면서 불꽃 튀는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해리스의 주요 공격 카드는 출산과 관련해 여성이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다는 여성 생식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낙태권 등 여성의 권리를 억눌러 왔다고 비판해 왔다.

해리스는 최근 조지아주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고리로 총기 규제에 반대해온 트럼프를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해리스는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등 규제 강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총기 문제가 아닌 개인 탓”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는 낙태권 이슈에 대해선 “각 주가 결정할 문제”라며 답을 미루면서 예봉을 피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개인의 마리화나 소량 사용에 대한 불필요한 체포ㆍ구금을 끝낼 때가 됐다”면서 젊은 층 유권자 표심을 의식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물가상승ㆍ국경 소재 공세 전망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과 국경 정책을 소재로 파상 공세에 나설 것으로 공산이 크다. 치솟는 식료품값 등 장바구니 물가 상승에 부통령 해리스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인플레이션 위기로 근로자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남부 국경 개방 정책으로 치안 범죄가 불안해졌다는 논리를 펴며 해리스를 몰아세울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재선 시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 장벽을 완성하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입국자 추방을 단행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해리스는 트럼프의 부자감세 기조를 내세워 ‘트럼프는 부자 편’이라는 논리로 방어하면서 자신의 중산층 경제 우선 정책을 부각시키려 할 수 있다.


언쟁 때는 마이크 음소거 해제 ‘변수’


신재민 기자
ABC 뉴스 간판 앵커 데이비드 뮤어와 린지 데이비스가 진행하는 이번 토론의 규칙은 지난 6월 CNN 주최로 열린 바이든-트럼프 토론 때와 대체로 비슷하다. 토론은 두 후보자의 모두발언 없이 곧바로 진행자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양 후보는 2분씩 답변할 수 있고 상대 후보에 대한 반박을 2분간 주고받을 수 있으며 후속 설명이나 재반박을 위해 추가로 1분이 주어진다.

백지와 펜, 물병만 소지할 수 있으며 토론에 참고할 자료를 지참할 수 없다는 점도 동일하다. 자신의 발언 순서가 아닐 때는 마이크 음을 끈다는 규칙도 그대로다.

다만 후보 간 뚜렷한 언쟁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마이크 음 소거가 해제될 수 있다고 ABC는 보도했다. 후보가 감정적으로 격앙돼 거친 말을 내뱉으면 여과 없이 전달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 말을 자르고 거친 언사를 쓰곤 했던 트럼프의 거친 화술이 그대로 드러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됐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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