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됐다? 前 ECB 총재 "유럽 경쟁력 위기, 연 1100조원 투자해야"
마리오 드라기(77)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9일(현지시간) 미국·중국과 비교한 유럽연합(EU)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존 위기" 수준이라고 경고하면서 EU 차원의 산업 전략 전환을 제안했다. 연간 최대 8000억 유로(약 1187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신규 투자와 탄소세 강화 등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 EU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U 경쟁력의 미래'(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보고서를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1년여 전 EU 집행위원회가 경제 침체와 전쟁, 극우정당 부상 등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드라기 전 총재에게 작성을 공식 의뢰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개혁을 이행하지 못하면 유럽이 실존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EU의 글로벌 경쟁력 도태 조짐에 경종을 울렸다. 가디언은 보고서의 배경에 대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국가적 투자를 늘리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유럽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위기에 맞닥뜨려 정체된 상황이라고 짚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유럽에선 1000억 유로 (약 148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등장한 사례가 없고, 2040년까지 매년 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EU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가 제안한 신규 투자 규모는 연간 7500억∼8000억 유로(약 1114조∼1188조원)로,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4~4.7%에 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럽 재건 원조 계획인 '마셜플랜' 규모가 GDP의 1∼2%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가 넘는 비율의 공격적 투자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의)민간 부문은 공공 부문의 지원 없이는 이런 규모의 투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EU 차원의 공동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유로존 국가들이 연대 보증을 통해 공동명의로 발행하는 채권인 '유로본드'의 적극적인 발행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 철강기업 등과 관련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서는 역외 기업들이 CBAM을 우회할 가능성을 고려해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오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CBAM은 EU 수출 기업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이행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역내) 에너지집약 산업에 대한 탄소배출권거래(ETS) 무상 할당의 단계적 폐지를 보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EU는 역외 기업의 반발을 고려해 2026년부터 2034년까지 EU 기업들에 제공해온 'ETS 무상 할당'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예정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CBAM가 존속할 경우 국내 철강업계의 관련 비용이 2026년 851억 원에서 2034년 55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EU 차원 무기 조달 확대해야"
드라기 전 총재는 EU 차원의 무기 조달을 확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유럽이 무기 구입에 있어 미국 방산 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유럽은 현재 유로파이터의 타이푼, 다소의 라팔 전투기, 레오파르트2 7+ 주력전차 등 자체 생산 무기가 있지만, 다수가 무기를 유럽 밖에서 조달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중반부터 2023년 중반에 걸쳐 EU 방위분야 주문의 63%가 미국 기업에 이뤄졌다. 2022년 한 해 동안 집계된 EU 27개 회원국 전체의 방위 연구개발 예산은 107억 유로(약 16조원)로 총 예산의 4.5%에 불과했는데 미국은 1400억 달러(약 188조원)로 총 국방예산의 16%에 달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각국 정부가 유럽 무기를 사게끔 EU 자금과 연계된 '실질적인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며 접근 방식으론 유럽방위기금(EDF) 및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에서 이미 실행되거나 제안된 자격 기준에 자금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일례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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