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에 사실상 온플법 ‘백기’ 든 공정위

김범준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andreaskim97jun@gmail.com) 2024. 9. 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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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행위 금지 ‘사전 지정’ 무산
매출 기준 높여 배민·쿠팡도 빠질듯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공정위 입법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공정위는 온플법 제정 대신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규모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온플법 추진 당시 공정위 입장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초 추진된 이른바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철회한 것이다.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불공정 행위를 폭넓게 규율하기 위해 별도 제정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공정위는 시장 수용성과 정합성 등을 고려해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공정위는 당초 밝힌 지배적 플랫폼 ‘사전 지정’ 방식 추진도 철회했다. 대신 사후 추정 방식을 통해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 등에서 채택하는 것과 같이 매출액, 점유율, 이용자 수 등을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지정·공표하고 관련 법 위반에 대해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플랫폼법 추진 목표였던 ‘신속한 사건 처리’와는 거리가 먼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전 지정 방식은 법 위반 행위 이전에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돼 공표된다. 지배적 사업자로 정해진 기업이 불복하게 되면 별도 절차를 통해 다투게 된다. 지배적 사업자로 최종 지정되면 위법행위 발생 시 ‘경제분석 과정’을 건너뛰고 불법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조사와 심의가 이뤄진다. 신속한 사건 처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반면 사후 추정 방식에서는 불법행위로 인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는 업체가 불복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후적으로 추가 경제분석이 진행되면서 신속한 사건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사전지정을 하지 않아도 신속히 사건을 처리할 수 있고 법 위반을 예방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 없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채택한 것이 사후 추정 방식”이라며 업계와 전문가, 관계 부처 의견을 종합 검토했다고 부연했다.

지배적 플랫폼을 사후 추정하는 요건도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1개 회사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1000만명 이상인 경우 또는 3개 이하 회사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를 지배적 플랫폼 지정 요건으로 정했다. 다만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연간 매출액 4조원 이하 플랫폼은 규율 대상에서 빠진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사후 추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구글과 애플, 카카오, 네이버 정도다. 쿠팡이나 배민 등 플랫폼들은 매출액 또는 시장 점유율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플랫폼에서도 이미 자사 우대나 최혜 대우 요구 등 불공정 행위 의심 정황이 다수 적발되고 있는 만큼 제재 대상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플랫폼과의 ‘역차별’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에 본사를 둔 플랫폼들이 매출액 등 자료 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는 경우 공정위가 실효성 있는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외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고 대규모 과징금 등 제재를 끌어낸 전례가 이미 많다”며 “자료 확보를 비롯해 모든 사안에 대해 국내·국외 기업 간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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