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과 다른 정해인의 악역... '베테랑2'가 전편보다 재밌는 이유

안치용 2024. 9. 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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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베테랑2>

[안치용 기자]

▲ [안치용의 영화리뷰 베테랑2] 천만 명이 보는 '가오' 사는 윤리학 교과서가 탄생할까 영화 '베테랑2'는 2015년 개봉해 천만관객 반열에 오른 '베테랑'의 속편으로 9년 만인 2024년에 선보였다. 최초 작품이 성공적일수록 속편 만들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게 통설이다. 류승완 감독이 일단 재탕은 아니라고 말했다. 속편으로 보이게끔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서도철 형사(황정민)를 비롯해 경찰 쪽은 1편의 출연진이 그대로 포진했고 진경 정만식 등 조연도 다수가 그대로 나온다. 중요한 변화는 1편의 조태오(유아인)를 대체한 새로운 빌런 정해인의 투입이다. 유아인에서 정해인으로의 대체가 1편과 2편을 구분하는 잣대가 됐다. 경찰 내부의 이야기 비중이 높아진 것 또한 2편에서 달라진 점이다. 샌델이 참고한 존 롤스의 반성적 평형(Reflective Equilibrium)은 정의를 분별하는 감각에 관한 윤리학 용어이다. 이 말을 인용하자면 '베테랑2'는 전편의 반성적 평형을 통해 속편이지만 새로운 영화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베테랑2>는 2015년 개봉해 천만관객 반열에 오른 <베테랑>의 속편으로 9년 만인 2024년에 선보였다. 최초 작품이 성공적일수록 속편 만들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게 통설이다. 류승완 감독이 일단 "재탕"은 아니라고 말했다. 속편으로 보이게끔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서도철 형사(황정민)를 비롯해 경찰 쪽은 1편의 출연진이 그대로 포진했고 진경 정만식 등 조연도 다수가 그대로 나온다. 중요한 변화는 1편의 조태오(유아인)를 대체한 새로운 빌런 정해인의 투입이다. 유아인에서 정해인으로의 대체가 1편과 2편을 구분하는 잣대가 됐다. 경찰 내부의 이야기 비중이 높아진 것 또한 2편에서 달라진 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영화 <베테랑2> 스틸컷
ⓒ CJ ENM
1편과 2편 모두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다루는 내용이 다르다. 1편이 정의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편은 정의 실현의 방법론을 조명한다.

1편은 '직진' 스타일 형사가 거악에 맞장떠 단순하고 시원하게 정의를 실현한다. 오만하고 부패한 재벌 3세를 상대로, 서도철이 남들이 보기에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을 벌여 '가오'를 세우는 과정이 큰 얼개다. 서도철은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자본권력의 횡포를 법의 테두리를 최대한 확장하며 응징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정의실현이 영화에서 일개 형사에 의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재벌의 민낯을 까발려 관객이 열광했다. 아무튼 정의가 결국 승리했다.

2편에서도 정의가 실현된다. 1편에서는 정의실현이 대단원이지만 2편에선 정의실현이 기본값이다. 정의는 시종일관 실현된다. 영화는 정의실현 자체가 아니라 사법 권력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 정의실현을 사적 제재로 이뤄도 좋은가를 묻는다. 사법 시스템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다. 1편이 사회학에 기반했다면 2편은 윤리학이다. 2편의 빌런은, 빌런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빌런 해치다. '정의로운 악당'이란 표현이 형용모순이지만, 만일 해치가 현실에 나타나 같은 일을 한다면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대체로 그의 행위를 적극 지지하며 열광할 것이다.

해치는 흔히 자경단으로 번역하는 비질란테(vigilante)의 전형이다. 자경단은 우리나라에서 경찰을 자발적으로 보조해 치안을 유지하는 민간인이나 민간인집단을 뜻하기에 비질란테와 다르다. 비질란테는 직접 경찰의 역할을 맡아 사적으로 실행한다. 비질란테의 연원이 자경단이 있다고는 할 수 있다. 사법체계의 빈틈에서 생긴 억울함을 비질란테 해치가 해소한다.

조태오 같은 거악 대신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여러 유형의 범죄가 제시되고 비질란테가 연이어 해결한다. 해결방법이 '이에는 이'로 대표되는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이어서 극중 빌질란테는 연쇄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다. 연쇄살인범은 형법상 당연히 극악한 범죄여서 경찰인 서도철이 범인을 잡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딜레마
 영화 <베테랑> 포스터
ⓒ CJ ENM
1편에서 "죄짓고 살지 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형사 서도철이, 악의 화신이라고 할 조태오를 붙잡는 데 어려움만 있지 어떠한 고민도 없었다. 반면 2편에서 서도철은 악을 응징하는 악을 체포해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놓인다. 형법상 드러난 악행의 수준으로 보면 2편이 훨씬 더 중하지만, 악행의 목적을 잣대로 하면 1편이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사악하다.

1편에서 서도철이 상대한 적은 오만하고 무자비하며,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법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악한이다. 게다가 이 재벌 3세는 자신의 행위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만족, 이익을 위해 약한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동정할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 '절대 악'의 캐릭터에 스크린 안과 밖의 시민, 일부 정의로운 형사들은 분노하고 따라서 서도철의 단죄에 박수를 보낸다.

2편의 악한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엇갈린 심경이 노출된다. 해치는 법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자들을 직접 응징하여 국민의 법감정(Rechtsgefühl)을 만족시킨다. 이 법감정에는 말 그대로 법(Gesetz)에 대한 감정과 함께 정의실현 욕구가 담겼다. 극중에서 시민들이 해치에 열광한 건 그가 실종된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해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은 제삼자인 시민들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권력에 속한 서도철에게는 문제가 된다.

1편에서 서도철은, 사소하게 넘나들기는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태오를 응징한다. 명확하고 보편적인 도덕 기준을 따르며,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2편에서 서도철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해치에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해치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느끼는 불만에는 공감한다. 9년 전보다 더 나이가 든 서도철이 그만큼 성숙했는지 그만큼 그저 늙었는지, 법 집행에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듯하다. 감정은 비질란테와 비슷한 양태로 표출하지만 극중 대사에서 드러나듯 대상이 누구이든 사람을 죽이는 건 죄라는 원론을 고수한다. 1편에 없던 서도철 캐릭터 내의 분열이 2편엔 나타난다.

캐릭터 사이의 분열 또한 목격된다. 1편의 조태오와 서도철은 캐릭터 내부의 분열 없이 대척점에 서서 정면으로 충돌한다. 2편에서 분열 없는 캐릭터는 해치 하나이고 서도철은 분열을 겪는다. 캐릭터를 기준으로 하면 선과 악이 1편에서 같은 기질이었는데 2편에서는 다른 기질로 분열된다.

액션영화이자 오락영화 요소가 강한 2편에서 이 분열이 무한정 심해지면 1편과 너무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너무 무거워져 관객에 외면을 당하게 된다. 류 감독으로서는 윤리적 딜레마를 분명히 보여주되 재미를 깨는 방식이 아닌 끼워넣기로 돌파했다. 정색하지 않았기에 관객이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엔딩에서 서도철이 해치에게 보여준, 조태오를 대할 때와 완전히 다른 강한 애착은 이 분열의 반영이며 해치를 향한 정서적 공감의 표시다.

더 나은 속편?
 영화 <베테랑2> 포스터
ⓒ CJ ENM
<베테랑2>는 '재탕'을 피함으로써 전형적인 후속작의 함정을 피했다고 할 수 있다. 분열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간명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경찰과 범죄자 간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과 대결을 보여주며 윤리적 문제를 녹여내 더 깊이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전편에도 사회문제가 노출되긴 한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 목록(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예배)을 떠올리면 <베테랑>에서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베테랑2>에 등장한 비질란테는 간디의 목록으론 설명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변화가 흥행에 지장을 일으키진 않을 것 같다. 1편이란 디딤돌이 있는데다 오락성을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적당히 자극하는 방식으로 영리하게 연출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구조는 1편과 2편이 동일하다. 에피로그에서 동일하게 3명의 가족으로 마무리하며 라면을 등장시켰기에 극장을 나서며 라면을 찾는 사람이 많지 싶다. 재탕이 아니다 보니 전체 내용에서 반복되는 건 크게 없다. '가오' 등 전편의 유명한 대사를 변용하거나 그대로 살려 배치했다.

분열과 딜레마를 포함해 더 진지해졌지만, 액션과 스토리가 조화하기에 보는 재미를 반감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액션에서는 길거리 싸움의 기술 외에 UFC 기술이 등장하는 등 변화를 꾀한 흔적이 보인다. 이종격투기 기술은 극 전개의 주요한 단서가 된다. 프롤로그를 수직화(전편은 수평적)한 것도 일종의 변용. 계단과 옥상 등의 액션 장면에서 더욱 세련된 카메라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였다. 속도와 긴장을 고조하는 전개 속에 잊을 만하면 유머를 배치한 것 또한 장점이다.

윤리학
 영화 <베테랑2> 스틸컷
ⓒ CJ ENM
<베테랑2>는, 전편과 달리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전편은 명확한 선악의 대립 구도 속에서 주인공이 승리하는 구조를 따랐다. 속편에서는 살펴보았듯 대립이 있지만 분명한 선악의 대립이라고 보기 힘들고, 승리 또한 유보적이다.

영화에 소품으로 등장한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영화의 메시지에 해당한다. 진짜 해치가 가짜 해치를 만들기 위해 놓아둔 장식이어서 살짝 어설프다는 점은 의도했을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내용 중 핵심은, 윤리에서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양대 흐름이다. 샌델의 독창적인 의견은 아니고, 윤리학의 오랜 주제이다. 애매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함부로 죽여서 되는 생명이 없다고 주장하는 서도철의 입장은 의무론에 서 있다. 그렇다면 해치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정의를 주어야 한다고 믿기에 공리주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입장 중 어느 하나가 맞는다기보다 둘이 상호보완하며 현실의 윤리를 구성한다고 보면 된다. 결국 정의는 공공선을 향하는 과정인데 공리주의나 의무론 모두 같은 생각이다. 영화에서 서도철과 해치가 원한 것도 공공선이다.

샌델이 참고한 존 롤스의 '반성적 평형(Reflective Equilibrium)'은 정의를 분별하는 감각에 관한 윤리학 용어이다. 이 말을 인용하자면 <베테랑2>는 전편의 '반성적 평형'을 통해 속편이지만 새로운 영화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베테랑2> 전반에 '반성적 평형'이란 연출감각이 작동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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