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장애인 존재 허용하는 수준, 유럽도 꽝이야"
[김준하, 장하윤, 김현진 기자]
▲ 혜화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앞 카페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는 손목에 찬 장난감 수갑을 자랑했다. |
ⓒ 장하윤 |
6일 혜화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앞 카페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손목에 찬 장난감 수갑을 자랑했다.
"프랑스에서 온 거예요"
박경석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박경석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다. 1983년 행글라이딩을 하다가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2001년부터 지하철 승강장을 주요 무대로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외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과 노동권,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 장애인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 2021년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는 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며 전장연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
▲ 2024 파리패럴림픽 특사단은 노르웨이, 베를린, 파리를 방문하는 14박 15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장애인이 받는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유럽에 전달했다. |
ⓒ 전장연 |
3국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 노르웨이는 1988년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을 제정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 '탈시설'을 법제화했다. 독일은 나치의 장애인 대량 학살 프로젝트 'T4 작전'이 시행된 나라다. 프랑스는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패럴림픽을 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은 다 탈시설 해서 지역 사회에서 자립 생활해야 한다는 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장애인도,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 그리고 자립 생활을 못 하는 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 보조인 3~4명을 붙여야 하는데 여기엔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간다"라고 말했다(2023.7.30 국민일보 인터뷰).
"결국 T4의 비용 논리가 오세훈 시장의 논리와 똑같아요.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 약탈 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특사단을 만들었죠"
박 대표는 유럽이 한국보다 편했다고 말했다.
▲ 파리 올림픽이 만드는 사회적 파괴에 반대하는 ‘사카즈 2024(Saccage 2024)’의 활동가 노아 파존(Noah Farjon)이 특사단의 집회에 참여해 발언했다. |
ⓒ 전장연 |
올림픽·패럴림픽은 치열한 경쟁,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은 올림픽 정신을 문제 삼고 올림픽·패럴림픽을 '권리림픽'으로 바꾸자는 구호를 외쳤다. 권리림픽(Rightslympic)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패럴림픽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올림픽을 말한다.
"올림픽이든 패럴림픽이든 능력주의가 바탕이잖아요. 경쟁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올라가야 성공하는 능력주의. 그런데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승자' 혹은 '정상(正常)'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거야.
▲ 특사단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특사단의 시위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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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특사단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다이인 은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죽은 사람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 행동이다. 루브르박물관 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게 대응했다. 보안관이 관람객을 전부 내보내고 시위하는 곳을 검은 천막으로 둘러 가렸다.
"당연히 내쫓길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건드리는 거예요. 시위는 관심을 받아야 하는 건데. 관람객들 다 내보내고 못 들어오게 하니까 누가 볼 수도 없잖아요. 한국에서 그랬으면 바로 쫓겨났지. 근데 거기 보안관들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 묻더니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겠다" 하더라고. 오히려 아쉬워. 더 알려져야 하는데 "
특사단은 유럽에서도 출근길 지하철 포체투지(匍體投地, 기어가는 방식의 오체투지)에 나섰다. 혼잡도가 높은 한국에 비하면 유럽 지하철은 한산했다.
▲ 프랑스 시민들이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 권리 약탈을 고발"하는 유인물을 읽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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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단은 시위, 집회 외에도 노르웨이·독일·프랑스 각국의 주요 장애인 권리 단체를 만나 장애인 정책을 논의했다. 독일에선 장애인 인권운동단체 사회영웅(Sozialhelden)을 만났다. 사회영웅은 스스로 '독일의 전장연'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눈엔 투쟁 방식이 달랐다. 사회영웅은 책자를 내거나 SNS 등 인터넷을 통해 문제를 알린다.
▲ 독일의 장애인 인권운동단체 '사회영웅(Social heroes)'을 이끄는 활동가 라울 크라우트하우젠과 박경석 상임대표가 만났다. |
ⓒ 전장연 |
"그쪽은 한 20년 전에 투쟁 크게 벌여서 정부의 약속을 받아 냈대요. 그래서 국가가 잘 하겠거니 믿고 협력했는데 가만 지켜보니까 아닌 거야. 투쟁도 많이 해야 몸에 배는 거지. '야 이제 투쟁 끝났다 들어갈게' 이러면 못 해. 그렇게 20년 넘게 세월이 지나니 전투력이 닳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우리처럼 투쟁하고 싶다는 거죠.
▲ 박경석 대표가 유럽에 다녀온 소감을 밝혔다. |
ⓒ 김현진 |
"유럽이 한국보다 지상 교통이 잘 갖춰져 있고, 복지 수준이 높은 건 맞아요. 그렇다고 단순히 부럽다 할 문제는 아니에요. 장애인의 가시화, 이런 부분은 유럽도 영 꽝이야.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허용하는 수준이니까. 복지 수준이 높아봤자 '식민지' 느낌이지. 한국이 일본 식민지로 더 잘 산다고 행복한 게 아니잖아요.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감춰버린 거지.
장애인은 여전히 중심이 아닌데, 우리 존재가 어떻게 제대로 인정받겠어요. 복지가 좋아져도 자본주의 생산 방식은 그대로잖아요.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월주의는 여전해요. 남보다 '뛰어난' 인물이 '더 빨리' '더 잘' 정복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라면, 그건 실패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식민지화되는 것이 우리의 꿈은 아니니까."
독일의 혁명가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지만, 장애인은 노동에서 쉽게 배제된다. 하지만 장애인은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과 연대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길 꿈꾼다.
▲ 특사단은 독일 훔볼트 대학교에서 베를린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했다. 학교에 있는 칼 마르크스의 사진 앞에서 박경석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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