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복수'가 불러온 파장,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윤일희 기자]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보며, 전반까지는 시간성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두 축의 사건이 동 시간대 펼쳐진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두 사건을 병치시킨 이유가 궁금해졌다. 짜임새를 두고 호불호가 갈린 모양인데 후반으로 갈수록 납득이 됐다. 이 흐름을 타다 보면, 살인마의 선정적 희열보다 그 살인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살해한 펜션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역겨운 사이코패스 성아(고민시). 그는 아이를 죽이면서 살인의 희열을 느끼고 살인의 욕구가 강해지며, 이로써 그림도 잘 그려지자 신이 난다.
이와 비견되는 인물은 레이크뷰 모텔의 연쇄살인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잔혹함을 모텔에 버젓이 전시하는 사이코패스다. 드라마는 다행히 연쇄 살인범에게 살인의 동기, 이를테면 알고 보니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버림받았거나 고통당해 그와 유사한 여자들을 찾아 죽이며 찌질한 복수를 한다거나, 사이코패스가 됐다거나 하는 등의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스틸컷 |
ⓒ 넷플릭스 |
20년 전 레이크뷰 모텔의 살인 사건은 한 가족을 거의 몰살 시켰다. 이런 극단적 사건에서는 희생자의 가족이 가장 큰 피해자나 유일한 피해자로 당연시되지만, 피해의 파장은 이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 사건에 연관된 어떤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가해자의 가족도 그렇다. 가해자의 가족은 가족이 살인했다는 이유로 살인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내내 고통받는다.
드라마는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모텔을 운영했던 가족의 피해자성을 이야기한다. 대부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사건 발생 장소는 시체를 치우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리셋된다고 믿어진다. 사건은 희미해지고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깨끗이 지워진다. 하지만 살인의 파장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훼손된 시체를 목격한 모텔 주인 은경(류현경)은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어 미쳐가고, 모텔이 살인 파티가 벌어진 장소로 낙인 당하자 사악한 아이들은 이를 트집 잡아 모텔 주인 아들 기호(찬열)에게 술 셔틀을 시키며 희희낙락한다. 이들이 피해자로 여겨졌다면, 무심코 맞은 돌에 죽어가는 개구리의 사지를 재차 짓밟는 잔인한 가해를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호가 같은 학교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모욕을 삼키고 부모를 잃는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은 처절한 이유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에 있었음에 공감하게 된다.
기호의 복수는 논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적인 복수는 또 다른 피해를 낳는 피의 복수를 반복하니 법의 심판에 만족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죄의 무게에 비해 짧은 형기를 마치고 나오거나 특사로 빠져나오는 범죄자들도 있다. 피해자는 이들을 보고 분노에 차 상상이라도 복수를 꿈꿀 수도 있다.
▲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스틸컷 |
ⓒ 넷플릭스 |
마찬가지로 사적 복수의 정당함도 송곳처럼 예리하고 정확해야 한다. 기호는 부수적 피해를 낳지 않는 딱 그만큼의 선에서 가해자를 정밀히 타겟팅한다. 살인마가 눈 감고 귀 막은 대가로 준 자기 목숨값을 부모의 소멸로 대속한 기호는 당한 만큼 되갚는다. 공들여 조립한 총으로 저격의 동선을 시뮬레이션하고 마침내 살인마가 씌어준 모자를 쓰고 이제 더 이상 무력한 어린 '고스트'가 아닌 실재하는 인간(피해자)의 몸으로 나타나 원수에게 왜 죽어야 하는지를 고지하고 심판한다. 기호에게는 살인마의 목숨을 거둘 책임이 있었다.
기호의 살인마 처형은 소명을 끝낸 자의 자살로 마무리될 뻔했다. 하지만 그가 결행한 복수의 책임감은 뜻밖에 펜션 주인 영하(김윤석)를 각성시킨다. '미루고 피하고 숨기다 어떻게 되는지' 깨달은 영하는 기호의 총을 들고 자신이 은폐한 살인이 낳은 결과를 늦었지만 책임지기로 한다. 여기에 이르면 20년 전 레이큐뷰 모텔 사건이 왜 펜션 사건과 맞닿는지 이해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에서 '타고난 술래'인 경찰 보민(이정은)의 캐릭터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평소 말수가 적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살인 사건에 흥미를 느낀다. 더 구체적으로는 피가 낭자한 살인 현장에 흥분되고, 이 피의 파티를 벌인 살인마를 쫓고 잡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그녀는 20년 전 레이크뷰 모텔 사건을 목격했고 살인마의 유희가 참혹한 가족 파괴로 이어진 것을 잊지 못한다.
'도대체 이정은 같은 배우를 왜 이리 허투루 쓰지' 하던 의구심은 그가 그때 그 사건을 잊지 않고 돌아온 파수꾼 보민이라는 진실로 말끔히 해소된다. 그는 꼭꼭 숨은 머리카락을 끝까지 찾아내는 술래의 인내와 20년을 거슬러 그때 그 사건으로 다시 낙하하는 진정성으로 왜 지금 여기 있는지를 납득시킨다. 그는 진짜 나쁜 놈(범인)은 놓치고 '개구리'나 잡아 넣고 승진하고 자족하는 민중의 몽둥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리라. 해서 살인마를 저격한 진범을 알고 그의 사적 복수가 현 법체계를 거스르지만, 짐짓 정의로운 경찰인 양 하기보다 법의 무능을 참회한다.
우리 사회는 '개구리'의 존재와 피해에 얼마나 공감할 능력이 있는가. 'N번방'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딥페이크 디지털 성폭력'이 젊은 여성들을 강타해 패닉에 빠뜨렸다. 도대체 '개구리'가 얼마나 더 맞아 죽어야 돌팔매질 파티를 끝낼 텐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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