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죄책을 고백합니다"

지창영 2024. 9. 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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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한국 기독교' 세미나에서 울려 나온 개신교 내부 반성의 목소리

[지창영 기자]

국가 폭력에 편승하여 한국 기독교가 저지른 죄책을 고백하는 세미나가 9월 6일 열렸다.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NCCK인권센터,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기장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K), 예수살기에서 주최하고 (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이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그레이스홀에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렸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축사에서 "뉴라이트의 도발로 촉발된 역사전쟁이 학계와 정계를 비롯한 사회 각 영역으로 확대되고 … 국가 정체성 논쟁이 새롭게 불붙고 있"다면서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고 진단하고 "이런 시기에 '국가폭력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자신의 과거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 것은 한국 기독교가 성숙의 기회로 가려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한국 기독교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정당화하게 되었고, 기독교인들도 폭력에 가담하게 되었"는데도 "그동안 이러한 과거사를 되돌아보지 않았"다며 "늦었지만 이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두 번째로 축사에 나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전쟁은 민족 문제, 계급 문제, 외세 문제가 결합되어 있고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까지 결합돼 있는데 종교의 문제는 그동안 언급하기를 회피해 왔고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당시 지배층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는 한국의 반공체제 형성에서 중요한 헤게모니의 한 기둥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한편으로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이 부분이 제대로 밝혀져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화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는 세미나 참가자들
ⓒ 지창영
민중신학 연구자이기도 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는 '지금 여기에서 '사과'하고자 하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에게 필요한 물음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기조 발제를 통하여 "최근 역사전쟁의 화두는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의 호감도는 다른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훨씬 낮은데도 불구하고 호출되는 이유를 살폈다.

그는 "이승만을 호출해낸 이들의 욕망" 중 하나로 "'공격적 반공주의'에 대한 갈망"을 꼽을 수 있다면서 극우주의자들에게 "이승만처럼 '적'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성을 분출시켰던 지도자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극우주의의 약진은 이런 이승만 추앙담론이 맹위를 떨칠 기회가 되고 있"다면서 기독교인이 "어떤 방식의 담론을 만들어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항쟁 연구자인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1946년 10월 항쟁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해방 후 미군정이 남한에 미국식 국가기구를 건설하면서 좌익을 탄압하는 배경 속에서 10월 항쟁이 일어났는데, 당시 서울 영락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원 100명이 대구에 들어와 있었고 이들은 항쟁 기간 총을 들고 다니면서 민간인 학살과 가옥 방화, 주민 재산 탈취, 성폭행 등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서 지방 보수세력은 초기에는 조직이 별로 없었으나 친일파와 기독교계가 중심이 되어 지역 보수세력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조직하여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고 이들이 10월 항쟁을 진압하면서 지역에서 중요한 권력을 누리면서 지역사회가 반공 우경화되었다고 언급했다.

제주 한울교회 윤태현 담임목사는 '4.3항쟁과 기독교 - 장두(狀頭)와 메시아'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하여 "4.3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제주를 토벌한 경험으로 한국 전쟁 동안 승승장구하여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이미 먼저 독립군을 토벌한 경험을 활용하였고 이러한 학살의 경험치는 한국전쟁 이후에는 베트남전쟁과 80년 5월 광주에서도 활용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제주와 여순을 거치며 형성되기 시작한 '반공 기독교'는 여전히 4.3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 극우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으며, '뉴 라이트' 논쟁 등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이 이제라도 다함이 없는 사과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여순사건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여순사건 당시 기독교인들이 민간인학살에 가담한 사례를" 밝혔다. "여순사건 당시 반군 토벌에 나선 야전 부대장에 기독교인이 다수 포진했으며 이들은 비기독교인 지휘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군 협력 민간인들을 체포, 분류, 처형했다"면서 국가폭력에 적극 가담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진영에 속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적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마귀와 사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음을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소련 군정과 북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고 월남한 기독교인들이 설립한 영락교회, 경동교회, 남산교회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교회는 남한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사탄, 마귀로 규정,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제, 제거했다"는 것이다.
 발제자와 토론자들
ⓒ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손승호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는 '6.25전쟁기 민간인희생과 기독교'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하여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의 기독교는 공공연하게 북한보다 남한의 이념과 체제를 더 선호했"고 "친이승만의 태도를" 가졌으며 "비밀리에 미군정과 연락을 취하는 인사들도 있었"으므로 "북한 지역에서 기독교는 반동세력으로 인식되면서 요시찰대상이 되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자로서의 기독교를 언급했다.

그러나 남한에서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보면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보인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학살에 가담하였고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폭력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통렬히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 … 언젠가 한국교회가 수십만의 희생자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황미숙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국가폭력과 원용덕'이라는 제목으로 원용덕의 삶을 조명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 엘리트로 성장했으며, 타자를 위한 공익적인 삶을 살았"고 "의사가 된 후 병원을 세워 무산자를 위한 무료 진료를 전개하는 등 사랑의 신학을 실천하던" 그가 "만주국군 군의관으로 입대하면서 180도 다른 길을"가게 된 사실에 대하여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삶의 명분을 찾도록 하였고 명분은 기독교 엘리트주의를 형성하여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했는데 "이들은 겉으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틀에서 공익성의 면모를 보이나 시류에 따라 스탠스를 변경하는 사익추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수용시기에는 친미,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또 다시 미군정시기에는 친미, 이승만 정권시기에서 냉전체제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친미, 친일, 반공이 교집합을 형성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기독교라는 숙주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빼먹으며 정치적으로 생존 진화하는 인간에 불과하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한국 기독교의 과거사를 설명하는 한홍구 교수
ⓒ 지창영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종합 및 총평 시간에 기독교가 친일, 민간인 학살, 반공과 독재에 가담했던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현재도 극우적 행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은 개신교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며 "개신교가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정상이지, 시민들이 개신교의 거듭남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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