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김미도]
▲ 지난 7월 8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 유성호 |
2017년 9월 11일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문건' 및 'MB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건'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유인촌은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며, "배제하거나 지원을 한다는 게 누구를 콕 집어 족집게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12일 '광화문 문화포럼'에 참석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사실상 '족집게처럼 콕 집어'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 유인촌 장관의 발언을 기점으로 정은숙 국립오페라단장, 신현택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사임했다.
유인촌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해임시키기 시작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08년 11월에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김윤수 전 관장은 해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8개월 내내 사퇴 압력을 받았다. 문광부 관계자들을 시켜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날 협박했다. '이렇게 하면 재미없다', '김 관장 다 조사할 수 있다'며 날 압박했다. 문광부 소속의 국장들, 감사관들을 동원해 날 몰아내려고 경쟁을 시킨 것 같다. 내 흠을 찾기 위해 그 사람들이 미술관 전체를 다 뒤지게 했다... 그(유인촌)는 내게 반말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12월, 유인촌 장관은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을 해임했다. 해임된 김 위원장은 3월부터 12월까지 사퇴압력을 받은 일지를 정리해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그 일지에 따르면 문화부 예술국장, 문화부 차관 등에게 직간접적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지만 거부하자 11월 26일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직원 4명이 나와 특별조사를 벌였다. 그때 감사를 나온 문화부 직원은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 2017년 11월 28일 배우 문성근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도 한 인터뷰에서 "유 전 장관 재임 당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회원이 불법 집회에 참여하면 지원금을 반납하라'는 서약서를 요구받아 논의 끝에 아예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한국작가회의) 계간지 발행도 전부 취소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여기서도 불법 집회에 참여한 인물이나 단체는 곧바로 블랙리스트가 되어 지원에서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하에서 유인촌이 특정 인사들을 조사하고 퇴출시킨 행위가 바로 블랙리스트 실행이다. 블랙리스트란 단순히 명단이 적시된 리스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배제·감시·차별·통제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후, 문체부 산하 주요 기관 33개 중 31개 단체장이 교체됐거나 공석이었다. 솎아낸 인물들의 자리는 소위 'MB맨'이거나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로 채워졌다.
2018년 3월 21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하던 서울 서초구 소재 영포빌딩 지하 창고에서 다른 종류의 블랙리스트 문건들이 발견되었다. 그중에 '보조금 지원실태를 재점검해 좌파 성향 단체는 철저하게 배제, 보수단체 지원 강화'라는 내용의 문건이 있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부 비판적 발언을 한 연예인의 마취제 중독설 증거 확보에 주력하는가 하면 포섭이 불가능한 강성 연예인들의 수입을 끊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100여 명의 연예인을 강성과 포섭가능 등으로 분류한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였다.
보조금 지원실태를 점검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과정은 문체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실행되기 어렵다. 지원 신청한 개인 및 단체들의 리스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2023년 11월 17일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판결로 유인촌 장관의 블랙리스트 연루는 분명해졌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국가와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행위"라며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기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배상 판결을 통해 "블랙리스트는 절대 없었다"던 유인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문체부가 발간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를 엉터리라 부정했던 그는 법원의 판결마저 부정할 것인가.
2023년 11월, 유인촌 장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원정책에 대해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다시 말해 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단체나 작품들은 철저히 선별하여 지원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놓고 블랙리스트를 실행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 지난 8월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주요행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석열 정부는 최근에 블랙리스트 실행의 대표적 가해자인 용호성을 문체부 차관에 임명하였다. 용호성은 누구인가.
2013년 9월 3일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의 지시로 문체부 기조실에서 작성된 비밀 보고서가 잡음이 발생할 개연성에 대비하여 '인편'으로 청와대 교문수석실의 용호성 행정관에게 은밀히 전달되었다. 이 문건은 2013년 8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좌편향 예술 지원 실태 및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에 따라 그 대책을 강구하여 보고한 것이다.
용호성과 관련된 블랙리스트 실행의 증거 역시 차고 넘치지만 이 비밀문서 전달 과정이야말로 그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웅변한다.
용호성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책임규명 이행 권고에 따라 수사의뢰자에 포함되었다. 문체부는 용호성을 포함한 수사의뢰자 3인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불기소하더라도 중징계로 처벌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2022년 3월 검찰은 용호성에 대해 결국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따라 황희 당시 문체부 장관이 징계를 추진하려 하자 유진룡, 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들을 비롯한 전직 문체부 관료들이 징계를 멈춰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그를 문체부 차관으로 임명하고야 말았다. 이는 고위 공무원이 심각한 국가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도 면죄부를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선례를 남기고 있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현 정권에서도 블랙리스트 실행의 수괴를 자처하고 있다. 역사는 이제 그를 뛰어난 배우로 기록하기보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동료 예술가들을 배신하고 탄압했던 불의한 정권의 앞잡이로 기록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미도 연극평론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위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발간위원장 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제도개선 이행협치 추진단’ 위원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제도개선 이행협치추진단 백서'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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