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웨이의 비결⑦]정의선 취임 후 그룹 시총 48조원↑…조용한 실리주의 리더십

우수연 2024. 9.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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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율 높인 현대차, 대주주 의지 반영
역대 최대 실적 바탕…취임 후 그룹 시총 45%↑
정 회장, 리더십 긍정 평가…과묵한 질문형 리더
'안정과 혁신' 양손잡이형 조직 구축 힘써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고급車' 브랜드 이미지 제고

"현행 세법상 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대주주 입장에선 손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주환원율을 높인 현대차 밸류업 프로그램은 대주주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적극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가치투자의 대가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지난달 현대차가 내놓은 주주환원정책에 대해 10일 이같이 평가했다. 현대차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총주주환원율(TSR)을 향후 3년간 최소 35%로 유지한다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주당 배당금을 최소 1만원 이상으로 늘리고 자사주 매입도 병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현대차 인도공장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 가운데)이 공장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의 밸류업 정책은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주주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시행한다 해도 기존 배당금 대비 증가분에만 저율 과세가 적용된다. 따라서 정 회장 같은 대주주는 체감상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의장은 "현실적인 세율 불일치 때문에 대주주에게는 고배당이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단기간 배당 확대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 지속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배당 밸류업, 탄탄한 실적 바탕=현대차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실적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0년 10월 정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판매 순위뿐만 아니라 시가총액, 신용등급 등 각종 시장평가에서 긍정적 지표가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글로벌 판매 순위는 2020년 5위에서 2021년 3위로 뛰어올랐으며 올해는 2위를 넘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집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주 시총(상장사 12개 기준, 9월 2일 기준)은 153조원 수준으로 정 회장 취임 전 대비 48조원가량 늘었다. 4년여 동안 시가총액이 45% 증가한 셈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3사가 매긴 현대차·기아 신용등급도 ‘올 A’를 기록했다. 3사에서 모두 A등급 이상을 받은 자동차 제조사는 현대차를 비롯해 벤츠, 도요타, 혼다 등 단 4곳뿐이다.

시장 안팎에서 호실적이 나타나면서 정 회장 리더십에 대한 긍정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오른 2018년만 해도 현대차그룹은 위기였다. 중국 판매는 급감했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이 완성되지 않은 미국 시장도 문제였다. 내연기관 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친환경차 분야 혁신을 선도해야 했다.

이무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미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케이스센터에 등재된 사례연구를 통해 "혹자는 정 회장을 ‘선도자’라고 했지만 그 역시 격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예측하긴 어려웠다"며 "레거시 업체인 현대차가 스타트업보다 빠르게 변화하긴 힘들었다. 정 회장은 안정과 혁신 사이에서 ‘양손잡이형 조직’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 말수 적은 ‘질문형 리더’=정 회장에 대한 현대차그룹 안팎의 평가를 들어보면 조용한 실리주의자, 글로벌 감각을 갖춘 질문형 리더 등으로 요약된다. 정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보고를 받기 전에 의견을 절대 먼저 내비친 적이 없다"며 "실무자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이후 본인 의견을 꺼내놓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정 회장은 말수가 적은 편이다. 보고받을 때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다만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낸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지시하기보단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임직원들이 스스로 방안을 찾아내기를 유도한다.

정 회장의 리더십 유형은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과는 다르다. 정 명예회장은 철저히 스스로의 ‘직감’을 믿었다. 경기 침체가 심화된 러시아 시장에 역발상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고 모두가 안 될 거라 장담했던 한국형 하이브리드 개발도 밀어붙여 성공했다. 리더의 생각과 방향이 그룹의 운명을 좌우했다. 다만 실패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본인이 졌다.

두 리더의 언론을 대하는 자세에도 차이가 있다. 정 명예회장은 공식석상에서도 좀처럼 원고대로 읽는 법이 없었다. 회사에 좋은 일이 있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땐 현장에서 즉석 기자회견이 이뤄지기도 했다. 반면 정 회장은 언론 전면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선 정제된 발언만 하며 돌발행동도 없다. 본인 대신 실무자들이 주목받기를 바란다. 다만 그가 언론 앞에서 말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 양궁 이야기를 할 때다. 양궁 관련 내용을 질문하면 어떤 내용이든 적극적으로 답변하곤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 왼쪽부터 두 번째)이 2024 파리올림픽 현장에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젠슨 황에 가죽 재킷 선물한 사연은=정 회장 리더십의 또 다른 강점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글로벌 감각이다.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에서 한·중·일 산업분석을 맡고 있는 한스 그레이멀 아시아 편집장은 "정 회장은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하고 첨단기술이 자동차 산업과 큰 그림에서 어떻게 융합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 확장의 비결은 세심한 배려다. 2017년 CES 현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났을 때는 황 CEO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재킷’을 선물하기도 했고, 2018년에는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승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차량 기능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작년 10월에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을 방문한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 내외를 위해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 건설 현황을 직접 설명해준 사례도 있다.

정 회장의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킹은 위기에 빛을 발했다. 2021년 반도체 공급대란이 발생했을 때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은 반도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이때 정 회장은 개인적인 인맥을 총동원해 구매부서를 지원하고 반도체 확보에 총력을 다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이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 현장에서 브라이언 켐프 미국 조지아 주지사의 부인인 마티 켐프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HMGMA]

◆"저가 브랜드 이미지 버려라"=정 회장이 경영 전권을 장악한 이후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다.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저가형 차’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브랜드 이름만으로도 사고 싶은 차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특히 정 회장은 현대차의 헤드쿼터가 있는 국내서부터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고 봤다. 고양 현대모터스튜디오, 태안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등 즐거운 자동차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복합 문화 공간을 설립했다.

정 회장은 전시장의 작은 조명까지 세세하게 챙길 정도로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건축물을 짓는 일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 단기간에 수익으로 성과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진행되기 어려운 프로젝트다.

현대모터스튜디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직원은 "회장님께서 한 달에 한 번 직접 현장에 나와 진행 상황을 점검하셨다"며 "점검이 끝난 이후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현장 직원들과 격의 없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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