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신해철, ‘나른한 오후의 단상’에 더욱 그리워진 그 이름

박세연 2024. 9. 10. 06: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해철. (사진=드림어스컴퍼니 제공)
주말 오후 드라이브 삼아 나선 도로 위, 무작위로 재생되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예상치 못한 반가운 곡이 흘러 나왔다. 밴드 넥스트의 ‘나른한 오후의 단상’이었다. 

이 곡은 1995년 발매된 넥스트 3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2 월드’ 10번 트랙에 수록된 연주곡이다. ‘세계의 문’, ‘코메리칸 블루스’, ‘나는 쓰레기야’, ‘머니’, ‘호프’, ‘퀘스쳔’ 등 강렬한 사운드 사이에 쉼표 같은 느낌의 곡으로 가사 없이 오직 클래식 기타 연주로만 이뤄져 있다. 2분 50초의 차분한 연주에 온전히 마음을 맡긴 채 평온하게 곡 제목 그대로 ‘나른한 오후의 단상’에 빠져들다 보니 새삼 애석하게 돌아간 천재 뮤지션, 고 신해철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넥스트의 구심점이던 고 신해철이 비운의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게 2014년 10월이니, 어느덧 그의 10주기가 코 앞에 다가왔다. 오는 10월 26, 27일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10주기를 맞이한 헌정 공연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가 개최될 예정이라 한다. 

라인업은 더없이 쟁쟁하다. 신해철이 리더로 활약한 밴드 N.EX.T(김영석·김세황·이수용)를 비롯해 고유진, 홍경민, 김동완 등 신해철과 생전 인연이 깊던 가수들이 양일 공연을 채운다. 26일에는 가수 싸이, 김범수, 예성(슈퍼주니어), 솔라(마마무), 밴드 넬, 해리빅버튼이 참여하며 27일 공연은 전인권밴드의 스페셜 스테이지를 비롯해 이승환, 국카스텐, 에피톤 프로젝트,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밴드 음악의 진수로 채워질 예정이다.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각각의 매력으로 신해철의 음악 세계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담아 펼쳐낼 것으로 기대된다. 

고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 참여한 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솔로 아티스트이자 밴드 넥스트로 활동하면서는 70~80년대를 주름잡은 기성 밴드 음악과 차별화된 진보적 사운드와 실험적인 시도가 가득한 음악들로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로 평가되는 90년대 황금기 밴드신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장 10분여에 달하는 기승전결 서사가 뚜렷하면서도 사운드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음악들에 그저 입을 떡 벌렸던 학창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멜론 차트에서 넥스트의 곡을 인기순으로 검색해보면 ‘히얼 아이 스탠드 포 유’, ‘라젠카, 세이브 어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날아라 병아리’, ‘그대에게’, ‘도시인’,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인형의 기사’, ‘먼 훗날 언젠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더 드리머’, ‘호프’ 등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개인의 내면이나 관계에 대한 농밀한 고찰, 시대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공유하는 인류애가 담긴 곡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세계의 문’이나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 등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대에 대한 단상 등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이 담긴 가사의 곡들도 유의미성까지 담보한 지지를 받았다.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냉철한 분석과 인류애적 신념을 담은 진보적인 철학을 거침없이 표현해 온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이기도 하다. 여전히 변함 없이 혼란한 시대, 혹자에겐 그의 부재가 더욱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인 건, 음악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단 점이다. 지금도 ‘그대에게’가 틱톡, 숏츠, 릴스 등 숏폼 콘텐츠를 통해 심심치 않게 재조명되고 있으니, 명곡의 힘이 그렇게 세다. 신해철을 통해 다시 넥스트의 음악을 들어보고, 넥스트 음악을 통해 다시 신해철을 돌아본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