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파킨슨병에도 희망 줄까… “초기 진행 지연 효과”

민태원 2024. 9. 10.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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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Q&A 궁금하다! 이 질병] 파킨슨병
권도영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
권도영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파킨슨병의 발병 기전과 최근 개발 중인 치료제 관련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뇌도 인슐린 분비에 문제 생기면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 손상 확인

임상3상시험 결과 이달말 발표
파킨슨병 늦추는 첫 약물 될 수도
살·근육 빠져 고령 환자에겐 위험

근래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GLP-1(글루카곤유사펩티드-1) 기반 약물’이 급부상하고 있다. GLP-1은 인슐린 분비 촉진과 식욕 억제에 도움 되는 호르몬이다. 해외에선 GLP-1 계열 약물의 체중 감량 효과가 알려지며 신(新) 다이어트약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최근 연구에선 노화를 늦추고 사망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GLP-1에 대해 의학계가 한 가지 더 주목하는 것은 퇴행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다. 지금까지의 임상시험을 통해 GLP-1 약물이 초기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춰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는 약물이나 수술 등을 통한 증상 완화가 최선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권도영 교수는 9일 “GLP-1 약물을 활용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임상3상시험 결과가 빠르면 이달 말 발표될 것으로 보여 학계 관심이 높다”며 “GLP-1의 효과가 입증된다면 이는 최초로 질병 진행을 늦추는 약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다만 파킨슨병 초반에 사용해 악화 속도를 지연하는 것이지, 이미 병이 많이 진행돼 걷지 못하는 등의 후기 환자들을 중기나 초기 상태로 되돌리거나 완치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권 교수에게 파킨슨병 치료의 최신 지견에 대해 들어봤다.

-파킨슨병의 원인과 의심 증상은.

“파킨슨병은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이 뇌 아래쪽 바닥 부분의 흑질을 침범하면서 발생한다. 흑질에선 운동 기능에 관여하는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그 기능이 소실되면서 운동 능력이 저하된다. 파킨슨병 초기 증상은 비대칭의 몸이 무언가 무겁고 아둔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TV를 보는 도중 한쪽 손·발이 떨린다거나 걸을 때 한쪽 다리가 끌리는 게 대표적이다. 다만 한쪽 눈꺼풀이 떨리거나 머리가 저절로 계속 흔들리는 체머리 증상은 파킨슨병과 거리가 있다. 평소 양치질할 때 동작이 어설퍼지거나 단추를 채울 때 전보다 오래 걸리거나 보폭이 좁아져 종종걸음을 하게 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의심해봐야 한다. 또 표정이 화난 것처럼 보이는 얼굴 굳음과 표정 소실이 나타난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는 어떻게 하나.

“파킨슨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완치 치료제는 아직 없다. 증상 완화를 위해 불편 증상을 조절하는 약물치료가 주를 이룬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 손상으로 도파민 분비가 줄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물치료를 통해 운동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도파민의 전구물질인 ‘레보도파’다. 레보도파는 위에서 분해되고 장에서 흡수된 후 일부가 뇌로 가 도파민으로 변환된다. 아울러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해 효과를 내거나 도파민이 분해되지 않도록 하는 약물이 쓰인다. 또 약물이 몸에 흡수되는 경로를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 약물의 한계를 극복한 제형들(위장관 투입, 코 흡입, 피하 주사 등)도 나와 있으나 국내에선 사용의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 수술(뇌심부자극술, 초음파 뇌수술)도 이뤄지고 있으나 이 또한 증상 완화 치료의 한 축일 뿐이다.”

-새 치료제 개발에 기대가 큰데.

“증상 완화가 목적인 현행 약물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질병 자체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질병 조절 약제 개발이 한창이다. 여러 약물이 임상시험 단계에 있지만 가장 성과를 보이는 것이 GLP-1 계열 치료제다. 인슐린 이상으로 당이 조절되지 못해 당뇨병이 생기듯, 당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뇌도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기면 신경 염증과 사멸, 도파민 신경세포 이상 등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GLP-1 약물이 뇌의 인슐린 저항성(인슐린 기능이 떨어짐)을 줄이는데 도움 된다는 것이다.”

-그간 진행된 임상 연구들은 어땠나.

“2017년 오스트리아 대학 연구팀이 저명 의학저널 ‘랜싯’에 GLP-1과 파킨슨병의 연관성 논문을 처음 발표했다. 도파민 작용제의 약효가 감소한 파킨슨병 환자 62명을 대상으로 각각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엑세나티드’와 가짜약을 48주간 투약한 뒤 병의 진행 상태 측정 도구(MDS-UPDRS)로 평가한 결과 엑세나티드 투약군이 대조군보다 운동 평가 점수에서 평균 3.5점 더 많이 개선됐다. 또 해당 약물 투약군에서 도파민 수용체 결합량이 더 느리게 감소했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 손실로 도파민 수송체의 밀도나 기능이 감소한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임상시험이 진행됐고 올해 2월 임상3상시험이 마무리돼 조만간 최종 결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지난 4월엔 또 다른 GLP-1 수용체 작용제 ‘릭시세나티드’가 파킨슨병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임상2상 결과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게재됐다.”

-GLP-1 신약 개발의 의미는.

“파킨슨병을 인지하게 된 것은 200년 정도 됐지만, 약물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도파민을 발견한 것은 불과 5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증상 조절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파킨슨병은 진행될수록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다른 퇴행성 신경질환과 증상이 동반될 수 있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증상 조절을 넘어 병의 진행 자체를 늦추는 GLP-1 치료제 개발은 의미가 있다. 신경 염증 반응을 차단하는 기전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만큼, GLP-1 약물이 파킨슨병은 물론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본다.”

권 교수는 “최근 알츠하이머병에도 병의 진행을 늦추는 신약이 개발됐다. 이제 퇴행성 뇌 질환들도 초기에 발견해 질병 조절 약물로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악화를 예방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다만 GLP-1 치료제는 작용 메커니즘상 살과 근육이 동시에 빠지는데, 가뜩이나 근육 약한 고령의 파킨슨 환자들에게는 역효과가 나거나 위험할 수 있다”며 “근육이 너무 없는 80세 이상 초고령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초기 환자들에게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고 부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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