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앞으론 장이 터져 온 환자, 외과의사 없어 수술 못받을 수도”

민태원 2024. 9. 10.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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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위기 대장항문외과의 경고
응급수술 요하는 ‘급성복증’ 환자
75%가 대장항문외과 분야인데
열악한 근무환경·낮은 수가 탓
신입 전임의 3년 만에 반토막
2030년엔 존폐기로 내몰릴 우려
포괄수가제 개선 등 대책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현재는 응급실을 돌볼 의사의 피로와 급격한 감소가 문제지만 향후에는 장이 터져서 오는 환자를 치료할 외과 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강성범 대한대장항문외과학회 이사장은 최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필수의료 최전선, 대장항문외과 방어 전략’ 주제의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학회는 그간 매년 9월 ‘골드리본 캠페인’을 통해 대장암·변실금 등 주요 대장항문질환의 진단과 치료법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치중해 왔다. 올해는 질병 캠페인 대신, 붕괴 위기에 처한 대장항문외과의 절박한 현실과 외과 의사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대장항문외과학회 소속 전문의가 지난 5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필수의료 최전선, 대장항문외과 방어 전략’ 정책 심포지엄에서 강연하고 있다.


외과 영역에서 필수의료는 뇌혈관질환을 다루는 신경외과나 심장질환자를 보는 흉부심장혈관외과가 주로 관심을 받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인들에게 ‘필수의료 대장항문외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대장항문외과는 대학병원 응급수술의 중심이며 국민 생명과 삶에 직결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학회가 지난해 18개 의료기관(대학병원 15곳)에서 전신마취 응급수술을 받은 3만3644명을 분석한 결과, 외과가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특히 응급수술을 긴급히 시행해야 하는 ‘급성 복증’ 환자의 경우 대장항문외과 비중이 75%까지 높아졌다. 급성 복증은 배안(복강) 장기의 염증, 천공, 폐색, 파열 등에 의한 복통을 동반해 생명을 위협하는 외과적 응급 상황이다.


또 대장항문외과 응급수술 환자 10명 중 4명(41%)은 수술 전 환자 중증도 분류기준(ASA) 3~5단계의 중증에 해당됐다. 특히 응급수술의 81%는 자정이 넘은 새벽에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분석을 진행한 양승윤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이런 상황만 봐도 대장항문외과가 얼마나 많은 응급·중증수술을 맡고 있으며 노동 강도 또한 높은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고강도 업무 환경과 낮은 보상 체계로 대장항문외과를 지원하는 젊은 의사들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하는 신입 전임의(펠로우)는 2022년 45명에서 지난해 35명, 올해 21명으로 3년 만에 반토막 났다. 양 교수는 “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지원자가 거의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면서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나고 남은 인력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야간 응급수술의 절반가량은 충수염(맹장염)으로 인한 충수절제술이다. 충수염은 유병률이 높기 때문에 과소평가될 수 있으나 충수절제 시기를 놓치면 복막염으로 목숨도 잃을 수 있다. 급성 충수염은 진행 정도에 따라 중증도가 천차만별이다. 수술 후 수일 내 회복되는 단순 충수염부터 천공 및 복강·골반 내 농양, 복강내로 대변이 퍼져 복막염·패혈증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중한 상태까지 다양한 진행 정도를 갖는다. 문제는 중증도와 합병증 발생 등에 따라 수술 후 보상 체계 또한 차별화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학회 주장이다.

조성우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교수는 특히 대장항문외과 위기의 원인으로 비현실적인 보상 체계를 꼽았다. 이로 인해 병원들이 인력 충원에 소극적이고 이는 전문의 부족에 따른 업무 가중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대장항문외과에서 가장 빈도가 잦은 충수절제술(맹장수술)의 원가와 의료기관 수입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단순 충수염을 복강경으로 수술할 경우 병원에서 투입한 약제, 재료비, 행위료 등을 감안하면 포괄수가제(DRG) 체계에서 127만원, 신포괄수가제에선 80만원의 적자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괄수가제는 검사·처치·진단 등 의료행위를 세분해 진료비를 매기는 대신, 한 질환에 필요한 여러 치료 항목을 묶어 비용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신포괄수가제는 입원·처치·검사료, 약제비 등을 미리 정해진 대로 지불하고 의사의 수술·시술 등은 행위별 수가로 별도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조 교수는 “원가에 훨씬 못미치는 낮은 수가 탓에 맹장수술을 하지 않는 2차병원이 늘고 있으며 대학병원들마저 의료진 부족으로 받아주지 않으면 환자들은 끔찍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사랑병원 최동현 원장은 “포괄수가제는 수술 난이도나 전문 경력에 대한 고려가 없으며 위험도 반영도 미미하다”며 개선 대책을 요구했다. 최 원장은 한해 15만건 이상 시행되는 다빈도 수술 3위 ‘치핵수술’ 등 양성 항문질환에 대해서도 적정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이 밖에 복강경을 이용한 직장·결장암 수술이나 진행성 대장암·재발성 직장암 수술 등 고난도 수술과 10시간 이상 장시간 수술에 대해서도 수술의 복잡성과 의료진 숙련도 등을 고려한 차별화된 수가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성범 이사장은 “보상 체계 문제뿐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과도한 법적 소송에 휘말리는 상황이 잇따르면서 이대로라면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되고자 지원하는 의사들이 아예 없어지는 등 향후 존폐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의사들이 법적 소송을 신경쓰지 않고 환자의 치료 결과를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소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부의 상황 인식 변화와 대책을 촉구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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