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통영 멍게… “뜨거워진 바닷물에 전부 녹아버렸다”
지난 4일 경상남도 통영의 한 멍게양식장. 보통 때라면 내년 멍게 수확 준비를 위해 한창 분주했을 6만6000㎡(약 2만평)의 바다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전국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남해안 멍게가 높은 해수온도에 ‘전멸’한 탓이다. 이곳에서 18년 동안 멍게를 키운 양식업자 김대환(58)씨가 배에서 5m에 달하는 양식줄을 끌어올렸다. 양식줄에는 붉은빛을 띠어야 할 싱싱한 멍게 대신 하얗게 탈색된 멍게 사체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김 씨는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심각하다”며 “태풍, 비도 안 오고 태양만 계속 내리쪼여서 전부 다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전국의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물고기, 양식 멍게 등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올해 해수온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폐사 피해 규모도 유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고수온에 취약한 멍게 양식업장은 ‘초토화’ 수준이다. 멍게가 살기 적정한 온도는 최고 26도이지만 지난달 30도를 넘어버린 바닷물에 양식장 멍게들은 전부 녹아 사라졌다. 박정식 멍게수하식수협 지도경제상무는 “올해 우리 조합에서 난 피해액만 약 700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8일 수협중앙회·국립수산과학원 등에 따르면 해수 온도 1도 상승은 육지에서 10도가 오르는 것과 맞먹는다. 김 씨는 “지난달 15일부터 바다가 하루에 2도씩 오르더니 나흘 만에 8도가 올라 30도를 넘어섰다”며 “인간으로 치면 80도가 오른 셈이라, 멍게가 아주 구워 삶아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산했던 멍게 양식장과는 대조적으로 인근 통영 달아항은 죽은 물고기를 버리러 온 어민과 배들로 붐볐다. 항구 한쪽에선 포크레인이 고수온으로 집단 폐사한 물고기 더미들을 컨테이너에 연신 퍼담고 있었다. 이날 달아항에 물고기 폐사체를 버리러 온 배는 모두 21척. 피해 규모를 조사하러 나온 황선경 통영시청 어업진흥과 주무관은 “한창 더웠던 지난달 말에는 오전 8시부터 폐사체를 버리러 온 배가 줄지어 항구를 가득 채웠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날 달아항을 찾은 양식업자 박용상(64)씨 배에는 죽은 어패류를 꾹꾹 눌러 담은 통과 비료포대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박 씨가 이날 버린 우럭만 84㎏짜리 통 5개, 26㎏짜리 비료포대 25개 규모로 모두 4000마리 수준이다. 박 씨는 “냉동 창고에 일주일치 버릴 우럭을 얼려뒀다가 오늘 한꺼번에 처리했다”며 “오늘 버린 것만 3~4t인데, 이웃집은 하루에만 100t을 버렸다”고 혀를 내둘렀다.
따뜻한 물에서 잘 견딘다는 참돔 양식장 사정도 좋지 않다. 참돔만 18년 키운 양식업자 김미숙씨(55)는 “다른 어종과 비교해 폐사는 잘 하지 않아도 돔 상태가 예전과 같지가 않다”며 “사람으로 치면 피부에 땀띠가 나는 건데, 비늘이 약해지고 밥을 줘도 잘 먹지도 않는다. 온난화 때문에 앞으로는 더워졌으면 더워졌지, 덜 더워지진 않을 거라 갈수록 이 일이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어민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기후 여파에 물고기와 어류는 죽어 나가고, 사료값은 올라 지출비용은 오르는데 해산물 소비량마저 줄어 출하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지난해와 비교해 수익은 반 토막 나고, 사료값은 20㎏ 단위로 5000~6000원씩 오르는데, 소비자들이 (어류를) 먹지도 않아 큰일”이라고 말했다.
수협은 이 같은 피해를 본 어민들의 경영안정 등을 위해 2008년부터 ‘양식수산물재해보험’ 제도를 해양수산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태풍, 적조, 고수온 등 예기치 못한 재해를 입은 어가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어가의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국고에서 순보험료 50%, 지자체에서 최소 30%가 지원된다.
수협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재난지원금을 5000만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어 원상복구에 한계가 있지만, 양식보험은 보유하고 있는 수산물의 한도 범위 내에서 보상하고 있어 어민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닷물 고수온 현상이 잦아지면서 수협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수온 피해 규모가 늘면서 누적 손해율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고수온 지속일은 2018년 43일에서 2019년 22일로 줄어든 후 2020년 43일, 2022년 64일로 길어졌다. 이에 따른 누적 손해율도 해당 기간 192.1%로 높아졌다. 올해 수협이 예상하는 보험료 지급액은 54억원으로 전년(30억원)의 2배 수준에 근접했다.
비싼 보험료에 어민들의 보험가입률이 저조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양식장 사업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이 높아 평균 보험료(8900만원)가 농작물보험(1800만원)의 5배 수준이다. 연도별 가입률도 2018년 44.3%에서 2024년 8월 기준 36.1%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수협은 피해 지원 규모를 넓히기 위해선 양식보험 보험료의 국고보조 지원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양식보험 국고 보조액은 2022년 248억5800만원에서 2025년 245억9800만원으로 소폭 줄었다. 내년 배정된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다. 수협 관계자는 “국고보조나 지방비 보조를 높이기 위해 매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건의를 하고 있고, 해수부도 예산 반영에 힘쓰고는 있으나, 예산을 크게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영=글·사진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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