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유감

고현곤 2024. 9. 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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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지난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담에서 핵심 의제는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였다. 의외였다. 저출생·연금·부동산·일자리·교육 등 산적한 현안이 뒤로 밀렸다. 주가를 부양해 1400만 주식투자자의 마음을 얻는 게 급선무라고 여긴 듯하다. 한 대표는 당을 맡은 이후 1호 과제로 금투세 폐지를 꼽아 왔다. 정치 생명을 걸고 몰두하는 모양새다. 이를 지켜보면서 ‘금투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인가?’라는 의문이 든 건 필자뿐일까.

「 여야, 폐지·유예·완화 중 택할 듯
금융투자에 세금 없는 희귀한 나라
세금 깎아 주가 부양은 밸류업 아냐
금투세 안 할 거면 거래세 되돌려야

한 대표는 “최소한 내년 시행은 유예하고 계속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일정 기간 대폭 완화해 시행하는 것을 검토하자”고 답했다. 이대로는 시행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셈이다. 이 대표는 “면제 기준을 연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해 왔다. 야당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손질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약세장의 영향으로 금투세 반대 목소리도 커졌다. 폐지, 유예, 기준 완화 중 하나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금투세는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에 매기는 세금(22~27.5%)이다. 일종의 금융 양도소득세다. 2023년 도입하려다가 조세 저항을 우려한 여야가 내년 1월로 연기했다. 연간 5000만원을 공제한 뒤 나머지 수익에 세금을 물린다. 1억원 수익을 올렸다면 5000만원 공제하고, 5000만원에 과세하는 식이다. 개인투자자만 세금을 낸다. 과세 대상인 연 5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려면 적어도 5억원 이상 굴려야 한다. 5억원 이상 상장 주식을 보유한 개인은 지난해 말 전체의 1%인 14만 명 선이다.

금투세 도입은 문재인 정부 때 금융투자협회가 앞장섰다.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명분은 금융세제 선진화였다.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상품별로 제각각인 과세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였다. 업계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주식 매도 때 개인은 물론 기관에도 부과하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금투세를 도입하는 대신 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없애는 패키지 딜을 성사시켰다. 1990년대 일본이 택했던 방식이다. 이미 거래세는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농어촌특별세를 포함해 0.25%에서 올해 0.18%로 내렸다. 내년에 0.15%로 더 떨어진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약속하면서 복잡해졌다. 윤 대통령은 “자본시장 규제를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설명했다. 금투세 폐지가 대선 공약이긴 했으나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이 정부가 일하는 게 늘 그렇다.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자본소득에 세금을 물리지 않고, 노동소득에만 세금을 매기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를 4월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주식투자자를 의식한 총선용 행보였다. 별 효과를 못 보고 선거에서 참패했다. 금투세만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금투세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모건스탠리가 선진국 증시로 분류한 미국·일본·독일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은 금융투자 수익에 22%의 세금을 물린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금융투자 양도세와 거래세를 함께 부과한다. 거래세만 있는 국가는 중국·홍콩·싱가포르·대만 등이다. 어느 세제를 택한 국가가 메이저 국제금융 중심지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국처럼 거래세를 없애면서 금투세마저 중단하면 금융투자 세금은 사라지게 된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 지난해 거래세는 6조1000억원 걷혔다. 세수 차질은 물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 소액 예금에도 소득세가 부과된다. 금융투자에만 세금이 붙지 않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금투세를 폐지해야겠다면 거래세는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이치에 맞다. 그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은 주가 부양책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으로 여기는 것 같다. 착각이다. 밸류업을 하려면 정부가 반기업 규제를 완화해 활력을 높여야 한다. 오락가락 정책으로 신뢰도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 기업은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배당을 늘리고, 주주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의 기초체력이 탄탄해져야 주가도 오른다. 선순환의 물꼬를 트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세금 깎아 생색내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금투세 폐지의 명분으로 민생을 거론하는 건 듣기에 거북하다. 금투세는 기본적으로 큰손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재명 대표의 주장대로 면제 기준을 연 1억원 이상으로 올리면 대상자는 14만 명보다 훨씬 줄어든다. 큰손이 해외로 빠져나가 주가가 하락하면 1400만 개인이 손해를 본다는 논리도 지나치다. 그게 우려되면 애초에 정부와 업계가 금투세를 도입하면서 선진 세제라고 떠들지 말았어야 했다. 민생을 정말 걱정한다면 물가와 집값을 잡고, 자영업자·취약층을 보호하는 데 최우선으로 매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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