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좋은 정치를 원한다고? 그럴 욕망, 기회, 능력은 있는가?

2024. 9.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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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정치 서비스를 위하여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눈덩이처럼 불어난 신용카드 지출 내역을 읽다 보면, 의식하지 못한 채 많은 서비스 구독료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음악을 듣기 위해, 영상을 보기 위해, 잡지를 읽기 위해, 뉴스레터를 받기 위해, 각종 앱을 사용하기 위해, 매달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대로 두어도 될까. 위기감이 들어 그 중 자주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로부터 탈퇴하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그러나 탈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서비스에 가입하기는 쉬워도 탈퇴하기는 어려운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수십 년 전 중고등학교 운동부 중에는 수십 대 맞아야 탈퇴가 가능한 곳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곳은 없어졌겠지. 온라인 활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가입 버튼은 눈에 띄는 곳이 큼지막하게 만들어놓는 반면, 탈퇴 버튼은 오랫동안 헤매야 간신히 찾을 수 있게끔 해놓는 경우가 흔하다. 탈퇴 버튼 찾으려다 지쳐서, 혹은 탈퇴 버튼 찾는 와중에 변심하기를 기대하는 속셈, 어지간히 강한 탈퇴심이 아니면 탈퇴하지 못하게 하려는 비즈니스 전략이 거기에 있다.

「 새 정치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욕망·기회·능력 삼박자가 필요
현실은 저질 정치인들이 판쳐
유권자가 먼저 좋은 시민 돼야

행동 발생에는 욕망·기회·능력 필요

이쯤 되면 애당초 이 서비스에 왜 가입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떤 행동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욕망, 기회, 능력이 필요하다고 사회과학자 욘 엘스터는 정리한 바 있다.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를 하려면,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야 하고, 맛있는 것을 접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맛있는 것을 판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특정 서비스에 가입할 당시에는 그에 관련된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에 맞는 서비스라는 기회가 있었고, 그 서비스를 알아볼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가입했다.

서비스 제공자는 대중의 욕망과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해서 제공했다. 그래서 가입자들은 그 서비스를 통해 편의를 얻을 수 있었고 욕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변심한 가입자가 그 서비스 구독을 그만두려는 것이다. 그가 탈퇴하면 서비스 제공자가 얻는 이익이 줄어들 것이다. 어떻게 그를 말릴 수 있을까? 욕망, 기회, 능력 중 일부라도 작동하기 어렵게 만들면 된다. 탈퇴하려는 욕망을 없애거나, 탈퇴 기회를 축소하거나, 기회 판별 능력을 박탈하면 된다. 서비스 제공자는 개인의 욕망과 능력을 좌지우지하기는 어렵지만, 서비스 기회는 제법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서비스 가입 경로는 쉽게 해 놓는 반면 탈퇴 경로는 어렵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탈퇴하려던 이는 버튼 찾다가 지쳐서 자문한다. 이 고생을 해가며 탈퇴할 정도로 내 탈퇴 욕망은 강력한가. 수십 년 전 중고등학교 운동부 탈퇴 희망자는, 맞아가면서까지 탈퇴해야 하느냐고 자문했겠지만, 이제 달리 자문한다. 다른 급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거 하나 탈퇴하자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그러다 보면 탈퇴를 미루게 되고, 서비스 비용은 계속 청구될 것이다.

탈퇴가 어려운 ‘인생이란 서비스’
인생이라는 서비스는 어떤가. 인생이 실현되기 위해서도 욕망, 기회, 능력이라는 삼요소가 필요하다. 삶을 살아낼 욕망, 기회,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여느 서비스와 달리, 인생이란 서비스 가입은 자신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다. 자기 욕망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 때문에 인생이 시작된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인생이라는 서비스에 가입된 것이다! 이제 할 수 없이 할당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운 좋게 기회와 능력이 충분하다면 별문제 없지만, 기회와 능력이 열악하면 부모에게 불평할 수 있다. “왜 나를 낳았어!” 자식을 인생이라는 서비스에 가입시킨 부모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른바 “낳은 죄” 때문에. 그러나 그것도 어쩌면 100% 그들 책임은 아닐 것이다. 종족 번식의 욕망을 주입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조물주가 아니겠는가.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이렇게 시작된 인생, 살다 보면 인생 서비스에서 탈퇴하고 싶은 순간이 올 수 있다.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환경이 지속할 때, 사는 것이 너무나 열악할 때, 희망이 사라졌을 때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서비스 탈퇴 버튼을 찾게 된다. 그러나 인생 서비스 탈퇴 버튼은 찾기 쉽지 않다. 여기에는 생명존중 사상뿐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개입이 있다. 국가가 굴러가려면, 누군가 살아남아 분업을 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

자살을 어렵게 혹은 불가능하게 만들려면 자살의 욕망, 기회, 능력을 없애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살 욕망과 능력을 쉽사리 없앨 수 있을까. 그보다 쉬워 보이는 것이 자살 기회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자살 도구에 접근을 제한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은 죽고 싶어도 쉽게 죽을 수 없다. 의사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치명적인 약물에 남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지적이 있다. 안락사라는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안락사는 일종의 조력 자살로서 자살 기회를 줄이고자 하는 국가의 의지와 충돌한다.

연애·결혼이 성립하려면
인구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욕망, 기회, 능력의 삼요소가 작동한다. 인구가 유지되거나 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으려는 욕망과 기회와 능력이 충분해야 한다. 인생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쉽게 아이를 낳으려 들지 않는다. 이제 국가가 나서 개인의 재생산 욕망, 기회, 능력을 증진하려 든다. 출산 및 육아 휴가 제공이나 불임진료지원 같은 조치는 인생 서비스 초기 구독료를 낮추어 주겠다는 제안처럼 들린다. 그러나 일단 가입하고 나면 초기 프로모션이 사라지고, 냉정한 현실이 다가오겠지. 초기에 가입비와 사용료를 받지 않던 서비스들도 어느 날 구독료를 청구하기 시작하지 않던가. 구독료는 늘어나기 일쑤고, 할인 쿠폰은 아주 가끔씩 발행된다.

서울 도심의 공사장 가림막에 그려진 행복한 가족 그림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지난 1일 한반도미래연구원은 전국의 20~49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심층 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20~49세 남녀 43% 가까이는 출산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애나 결혼도 그렇지 않은가. 욕망, 기회, 능력이 모두 있을 때 연애와 결혼이라는 행위가 성립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이라는 말은 그 삼요소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애와 결혼에 적극적일 만큼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욕망도 없다. 여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프러포즈 장소를 건설해준다고 프러포즈가 늘어날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성적 매력을 강화해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공무원 코디네이터가 파견되어 얼굴을 씻겨주고, 소개팅 복장을 살펴줄 수도 없지 않은가. ‘이번 소개팅에서는 개량 한복 대신 청바지를 한번 입어보세요’ 라고 일일이 조언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양질의 정치 서비스가 어려운 이유
이 모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정치가 필요하다고? 양질의 정치 서비스를 제공할 양질의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저질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원인으로 욕망, 기회, 능력을 거론했다. 일단 적임자를 선출할 기회가 드물다. 적임자는 진흙탕이 된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정치판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적임자는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가 정치판에 들어가서 얻을 것이라고는 피곤함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적임자는 오히려 은거하는 경향이 있다.

7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뿐인가. 좋은 정치인을 뽑고 싶은 욕망도 없다. 탁월한 사람을 보면 시기심이 끓어올라서, 어떻게든 그의 흠을 잡고, 비방하고, 끌어내리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시기심을 느낄 필요조차 없는 범용한 인물이 정치계에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선출된 정치인은 자기 능력에 넘치는 횡재(?)를 한 셈이 되니, 다시 오기 어려운 그 자리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니 오래 권세를 누릴 가능성이 있다.

그뿐인가. 좋은 정치인을 판별할 능력도 부족하다. 겉으로 드러난 후보 커리어가 좋아 봐야 그것이 진정 그의 능력을 반영하는지 불확실하다. 연설 솜씨가 뛰어나 보아야 과연 그가 충분한 행정 능력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그 개인은 훌륭할지 몰라도 일을 함께할 그의 추종자들이 부패한 이들인지도 모른다. 누가 좋은 정치인인지 판별하기 이처럼 어려우니, 그저 개인적인 인연이 있거나, 자신에게 편의를 제공한 적이 있거나 제공할 것 같은 사람을 뽑게 된다.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인을 기대하기 전에 유권자가 먼저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 쉽다. 원래부터 완벽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모르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 역시 욕구, 기회, 능력이 필요하다. 21세기 한국인에게 좋은 시민이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는가, 적절한 기회가 있는가, 충분한 능력이 있는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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