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도, 文정부도 못 잡았다…대출 막는다고 집값 내려갈까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시장이 움찔했나. 거침없이 오르던 집값 상승세가 지난달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대책과 대출규제 강화 발표 이후 주춤해졌다. 주간 아파트 가격 상승 폭이 줄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이 지난달 중순 0.3%를 돌파해 0.32%까지 올랐다. 하순에 0.26%까지 내리더니 이달 들어선 지난주 0.21%로 3주 새 0.1%포인트 떨어졌다. 국민은행 통계도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과 국민은행 통계 모두 지난주 상승 폭 감소가 두드러져 대출 규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드물지만 일부 단지에선 실거래가격이 내렸다. 목동 재건축 추진 단지의 실거래가가 지난달 초 19억3000만원에서 이달 초 18억9000만원으로 하락했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매수 문의 전화가 줄었다”고 말한다.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7월 상승률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단기간에 치솟으며 과열 우려를 낳던 주택시장의 열기가 조금 꺾였다. 대출 규제가 주택 매수세를 옭아맸다. 정부가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경제의 리스크가 될 만큼 과도하게 과열 분위기가 있을 때 공급 정책이나 수요 정책을 관리해서 과열 분위기를 조금 진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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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상승세 3주 연속 둔화에도
수요자 불안, ‘영끌’ 부추길 수도
집값 상승 요인이 하락 요인 능가
공급 약속 ‘희망 고문’ 돼선 안돼
」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 등 올해 초 내놓은 공급 확대책의 입법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지난달 8일 추가 공급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현 정부 들어 계속 풀던 대출 수도꼭지를 잠그기 시작했다. 지난달 16일 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이달부터 전방위 가계대출 옥죄기에 들어갔다.
정부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집값 최근 집값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9500여건으로 6월 대비 55% 증가했다. 7월 거래량으론 지난해(3804가구)의 두 배가 넘고, 급등기였던 2020년(1만6002가구) 이후 최대다. 가격 상승은 더 놀랍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7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19%로 6월(0.56%)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지난 3월까지 ‘마이너스’이던 변동률이 불과 4개월 사이 1%선을 뛰어넘었다. 7월 상승률로는 2005년(1.75%) 이후 19년 만에 최고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순식간에 거래가 급증하고 가격이 뛰자 정부가 이전 문재인 정부 때의 집값 급등이 재연되지 않을까 불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도 크게 늘며 집값은 경제 전반의 위험요소로 떠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3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액(21조9000억원)의 1.5배를 기록했다. 정부는 거래 제한 같은 직접적인 급제동 대신 대출 억제를 통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로 사실상 대출 한도를 줄였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사실상 대출총량제를 부활해 전체 대출 총액을 제한했다. DSR에 상관없이 아예 대출창구를 막은 것이다.
문 정부 고강도 대출 규제의 '악몽'
그런데 이번 공급 대책과 대출 규제는 한계가 있다. 집값 상승세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기 어렵다. 잠시 김을 뺄 수는 있어도 열기를 완전히 식힐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8·8대책에서 아파트 공급 시차를 메우기 위해 공사 기간이 짧은 비아파트 규제 완화를 들고 나왔지만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는 주택 수요를 분산하거나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없다. 아파트가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선 지난 4월 이후 7월까지 주택 매매거래의 67%가 아파트다. 주택거래가 폭발한 7월엔 아파트 비중이 75%까지 올라갔다. 3월 이전 아파트 비중은 50%대 이하였다.
정부의 오락가락 금리 정책과 대출 제한 은행 떠넘기기는 시장 혼란을 낳고 수요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수요자가 불안해지면 조급해져 묻지마식 대출을 자극할 수 있다. 은행마다 제각각인 대출 제한 기준을 정부가 통일하는 게 낫다.
앞서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에서 경험했듯 기본적으로 집값 상승기에 대출 제한은 집값을 잡는 데 역부족이다. 집값이 오르고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면 수요자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한다. ‘영끌’(영혼까지 팔아서 돈을 마련한다는 뜻)이 퍼진다는 의미다. 문 정부 때 2020년 이후 집값 폭등은 공교롭게도 2019년 15억원 초과 주택담보 대출 금지 등 유례가 없는 고강도 대출 규제 이후였다. 대출 규제의 역설이자 악몽이다. 대출 제한보다 금리 인상의 주택 수요 억제력이 크기는 하다. 대출금은 집값이 오르면 보전받는 투자지만 금리에 좌우되는 이자는 손실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빈대(집값) 잡으려다 초가삼간(나라 경제) 태울 수 있어서다.
국회가 공급확대 길 터줘야
여기다 주택시장 환경이 앞으로 녹록지 않다. 정부가 그동안 발표한 각종 개발 호재가 본격적으로 집값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종부세를 비롯한 주택 세제 완화 등이 시행에 들어가면 집을 팔려는 사람은 줄고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금리 인하 기대감도 크다. 집값 하락보다 상승 변수가 훨씬 많다.
수요 억제 효과는 단기적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급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대출 규제 등 돈줄 죄기는 없는 자의 지렛대를 자르고 가진 자만의 판을 깔아주는 것이어서 공정성 논란도 크다. 지난달 8·8 대책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계획과 밑그림이 대부분 그려졌다. 문제는 '희망 고문'에 그치지 않게 빨리 주택을 지어 시장에 실제로 공급하느냐다. 시작은 국회다. 속속 올라오는 공급 확대 관련 법안을 여야가 적극 통과시켜 주택공급 확대의 길을 터주고 시장에 신뢰를 줘야 한다. 개발 호재에 따른 단기 집값 상승을 상쇄할 신속한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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