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기먹는 하마’ AI 시대, 핵융합에너지 육성을
기술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이다. 산업과 에너지는 인류 발전의 두 수레바퀴다.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 발전이 가능하게 하려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에너지는 기술 진보와 함께 발전해 왔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석탄을 기반으로 한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촉발됐다.
20세기 대량생산 체제와 정보혁명은 석유와 원자력을 기반으로 에너지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눈부신 첨단기술은 풍부한 에너지를 만났기에 새로운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67년에 수립된 ‘장기원전개발계획’에 따라 건설돼 1978년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중화학공업 중흥기가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한 원전 건립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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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성형 AI 가동 위해 전기 더 필요
미국·중국·일본 핵융합 집중 투자
한국이 에너지 전환기 선도해야
」
21세기 인공지능(AI) 기술과 산업 발전 또한 에너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특히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생성형 AI’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예컨대 구글에서 일반 검색에 필요한 전력은 0.3Wh(와트시)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내용을 생성형 AI로 검색하면 이보다 10배가량 많은 2.9Wh의 전력이 소모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2년 45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에는 1000TWh로 2배 가까이 급증할 전망이다.
이처럼 급증하는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빅테크 기업들의 뜨거운 화두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이 또 한 번의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첨단 미래산업을 이끄는 주요국과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주목하는 에너지가 바로 핵융합이다. 실제로 오픈 AI와 MS는 최근 핵융합 스타트업인 헬리온에너지와 대규모 투자 및 전기 공급계약을 했다. 구글과 아마존 등도 가세하면서 핵융합 기업의 투자유치 누적 규모는 2020년 15억 달러에서 2023년에는 62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핵융합이 AI를 비롯한 신기술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으면서 상용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하다. 중국의 핵융합 관련 예산 지출은 미국의 2배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미·중의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일본도 지난해 발표한 ‘핵융합 에너지 혁신 전략’의 일환으로 올 초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일본핵융합에너지협의회(J-Fusion)를 설립하고 상용화 기반 마련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핵융합에너지 가속화 전략’을 발표했다. 그동안 국가 주도의 투자를 통해 축적한 기술 및 민간의 산업역량을 바탕으로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공공 중심의 연구개발에 머물지 않고 대학·기업 등이 핵융합 운영 데이터와 연구 인프라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연구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민간 중심의 연구개발 지원체계로 전환해 나간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산·학·연의 협력을 더 강화하고 민간의 혁신을 통한 핵융합 기술 난제 극복에도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핵융합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전공 교육의 강화, 안정적 인력 수급을 위한 중장기 인력양성 계획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40여 개의 핵융합 스타트업이 이미 존재하는 반면, 한국은 핵융합 관련 기술을 보유한 공급망 기업들은 풍부해도 핵융합 중심의 스타트업 기반은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민간 스타트업 창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고온초전도자석, 구형토카막 등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의 창의적 역량이 축적된 공공의 우수 기술을 만날 때 비로소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고, 한국의 핵융합 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모든 기술과 산업이 그렇듯 핵융합 역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다면, 우리가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용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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