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련의 시선] 라이더가 지나간 자리
‘배달의 달인’ 사망 소식에 애도가 이어졌다. 신호를 위반한 버스와 충돌 사고 후 한 달만에 숨진 고 전윤배씨 얘기다. 그는 인천 송도에서 매일 15~ 17시간씩 쉼 없이 달리며 월 수입 1200만원을 올린 라이더로 유명해졌다. 찜질방에서 먹고 자던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시작한 배달로, 배달대행업체의 지사장까지 올랐다.
그 누구도 그렇게 오래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하루 110~120건, 8~10분당 콜 1개를 처리하는 배달 노동이 뇌졸중·백내장·우울증을 앓는 그에게 무리였을 터다. 그러나 그의 과로를 말리는 시스템은 없었다. 많은 라이더들은 사고 없이, 오래 일하는 그를 부러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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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수수료 앞에 목숨 건 레이스
기존 근로기준법은 보호에 한계
플랫폼노동자 안전, 사회 과제로
」
그의 부고 이후에도 배달 라이더 사고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든다. ‘궂은 날씨에 배달하다가’ ‘재촉을 받고 달리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건당 3000원 안팎의 배달료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의 질주로 이룬 속도와 편리, 이대로 괜찮은가.
배달라이더 외에도 대리기사, 데이터입력자 등 플랫폼 위에서 일하는 이들은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88만3000명, 전년보다 11.1% 증가했다. 취업자 100명 중 3명꼴, 매년 그 비중은 커진다(한국고용정보원). 이중 배달·운전 종사자는 55%(48만5000명)다. 좋은 일자리가 좀체 늘지 않는 2024년 한국에서, 배달 플랫폼이 창출하는 이 일은 학력·인맥을 요구하지 않는, 진입장벽 낮은 몇 안 되는 일자리다. 대신 안전을 비롯한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들을 연료로 태우며 굴린 ‘서비스로서 인간(Human as a Service)’ 시장은 지난 10년 간 세계적으로 커졌다. 이들의 지위가 ‘근로자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소송도 각국에서 일어났다. 월 소득의 상당 부분을 플랫폼 일감에 의존하는데, 갑자기 ‘계약종료’ 당한 이들이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면서다. 최근 우리 사법부의 판단도 속속 나오고 있다. 요약하면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
법원이 보기에, 콜택시 타다의 기사는 플랫폼 기업(쏘카)의 지휘·감독에 따라 일했던 종속 근로자(대법원3부, 7월 25일)이지만, 배달라이더는 콜 수락 여부와 이동 경로를 자유롭게 선택했기에 배달대행업체에 종속된 근로자가 아니다(서울중앙지법, 7월 12일).
법원을 줏대 없게 만드는 건 현행 근로기준법의 한계다. 이 법은 특정 사용자(employer)에 종속된 임금 근로자만을 부당해고나 초과근로로부터 보호한다. 라이더는 근무시간과 장소를 통제받지 않고, 일감을 선택할 수 있는 자영업자 같은 특성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여러 플랫폼에서 콜을 받으니 현행 법으론 사용자도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배달 앱과 대행업체 등 플랫폼에 대한 라이더들의 경제적 의존성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콜을 배정하는 알고리즘에 따라, 배달 앱의 수수료 체계 변경에 따라, 혹은 플랫폼들의 출혈 경쟁의 양상에 따라 라이더의 월 소득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근무시간과 장소를 통제받지 않는다지만, 플랫폼은 그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데이터 형태로 빠꼼히 파악해 보상과 불이익을 정한다. 그런데도 현행 법은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특성을 다 띄는 이들을 두고 ‘둘 중 무엇이냐’만 따지고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약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법률’(가칭) 제정은 그 출발이다. 야당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반(反)노동으로 몰린 보수에겐 어쩌면 기회다. ‘노동개혁 하겠다’는 이 정부의 실력은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법의 테두리 안에 포섭해 보호하느냐로 평가받을 것이다. 올해부터 통계청도 고용통계에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의존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 항목을 신설해, 실존을 통계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국회 눈치만 살피고 있다.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이 4년 전 플랫폼 기업 중 세계 최초로 관련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책임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경쟁 업체들은 여전히 책임과 수익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지만 ‘쩐의 전쟁’의 중심에 선 배달 앱들은 더 이상 배곯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사회가 언제까지나 ‘위험’을 ‘모험’으로 봐주길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여러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게 노멀이 된 플랫폼 노동에서 ‘의존 계약자’를 상대하는 ‘사용자’ 개념은 기존 근로기준법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는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이뤄내는 혁신 기업을 기다린다.
박수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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