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마켓 나우] 중주마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언뜻 쉬워 보이는 이 질문은, 물물거래가 시작되었을 선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특히 미술품이나 저작권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가지는 재화를 거래하는 일이 일상화된 이후에는, 가격을 정하는 일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가격을 정하는 일이 자리 잡았다.
흔히 밸류에이션(valuation)이라고 불리는 기업가치의 평가는,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직장인이나 개인 투자자라면 피해가기 어려운 주제다. 문제는 두꺼운 전공 서적이나 유명한 온라인 강의를 통해 공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특정 시점에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모두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기업가치가 존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29일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을 철회했다. 두 상장사 합병을 추진하며 규정에 따라 양사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했지만,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금융감독원이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두 차례나 정정하라고 요구하자, 자발적으로 합병 철회를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출 규모가 크고 영업이익도 많은 두산밥캣과 매출도 작고 적자 상태인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하는 비율을 정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했을까? 수많은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양사가 모두 상장된 경우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가총액은 공개된 주식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끊임없는 거래를 이어가면서 만들어내는, ‘그 시점에서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업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기업의 모든 주주가 동의하는 객관적인 가격인 시가 총액을 기준으로 규정에 맞추어 합병 비율을 정했음에도, 이번 합병이 철회되어야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해당 합병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었는가’에 대한 주주들의 의구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병 비율을 논하기 이전에, 해당 합병이 양사의 모든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했다.
최근 주식 시장의 가장 큰 화두인 상장 기업의 ‘밸류 업’을 위해 경영진이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주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합병 철회 건은 ‘중요한 것은 주주를 생각하는 마음’(중주마)이라는 인식에서 밸류 업이 시작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확인시킨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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