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세월 거스를 순 없지만…게오르기우 디바 본색은 여전

2024. 9. 10.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8일 서울시오페라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토스카’ 중 한 장면. 루마니아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왼쪽)와 한국의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윤이 각각 토스카와 스카르피아로 출연한 1막의 무대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오페라 공연 중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토스카’에 출연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가 공연 중간에 무대로 나와 “이건 독창회가 아니다”라며 “나를 존중하라”고 소리쳤다. 3막에서 테너 김재형이 ‘별은 빛났건만’을 앙코르로 한 번 더 불렀기 때문이다.

이 소동에 가려졌지만 게오르기우의 서울 공연은 본래 큰 의미가 있었다. ‘토스카’는 자코모 푸치니 100주기를 기념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선택이었다. 게오르기우는 마리아 칼라스 이후 가창력은 물론 무대 위의 존재감 측면에서 최고의 토스카로 불렸던 전설의 디바다. 그를 유럽·미국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셈이었다.

문제는 게오르기우의 전성기는 분명히 지났다는 것! 이제 만 59세에 도달한 소프라노가 모든 오페라의 히로인 중에서 가장 강인한 캐릭터에 속하는 이 역을 무난히 불러낼 수 있을까?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토스카’에 출연했던 안젤라 게오르기우. 어둡고 부드러운 음성의 게오르기우는 마리아 칼라스를 잇는 강렬한 토스카로 꼽혔다. [사진 게오르기우 홈페이지]

2012년 이후 그녀의 새로운 오페라 전곡 녹음이나 실황 영상은 더는 발매되지 않고 있다. 최전성기의 가수들과 경쟁할만한 좋은 시절은 지났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정황도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여전히 오르고 있고, 올 초에도 그녀가 국제적 커리어를 시작했던 런던 코벤트가든의 로열 오페라에서 ‘라보엠’을 불렀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오페라 팬들의 게오르기우에 대한 감정은 영화 팬들이 나이 든 톰 크루즈의 액션 신작을 지금도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젊은 날처럼은 아니겠지만 과거 추억의 히어로가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보여서 안도하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톰 크루즈보다 옛 홍콩 스타 청룽(成龍·성룡)에 대해 그런 감정이었다.

게오르기우의 공연 2회 중 마지막이었던 8일, 막이 열리고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마리오, 마리오’와 함께 긴 사랑의 이중창이 시작됐다. 아, 하지만 분명 예전과는 달랐다. 음반과 영상으로 수없이 들었던 어두운 음색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 기념 내한공연으로 직접 관람할 수 있었던 게오르기우-알라냐 듀오 콘서트, 2012년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라보엠’을 불렀던 전성기의 당당함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성량이 작아졌고, 가끔 주저하는 느낌도 있었으며, 특히 고음이나 큰 외침에서는 소리가 갈라질까 봐 조심하는 면모가 두드러졌다. 중저음의 매력도 무뎌졌고, 보컬의 유동적인 움직임은 전성기보다 모자랐다. 정확하기 이를 데 없었던 예전과 달리 음정이 미세하게 벗어나기도 했다.

2막부터 모든 면이 나아졌다. 게오르기우가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다소 잠겼던 목소리도 제법 트였다. 덕분에 1막보다 공격적인 발성을 해냈고, 특히 악당 스카르피아의 탐욕을 견뎌내는 연기는 칼라스의 재래를 보는 듯 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게오르기우는 환갑을 넘겨서도 변치 않은 노래를 들려준 마리엘라 데비아, 혹은 에디타 그루베로바 만큼 여전하지는 않았으나 아직 디바로 불려도 좋을 열정이 있었다. 다만 톰 크루즈나 청룽처럼 특수효과나 편집으로 그럴싸한 조작이 가능한 영화가 아닌 눈앞의 실황이어서 나이 든 민낯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연인 카바라도시 역의 김재형은 맑은 음색과 풍부한 성량, 자신감 넘치는 표현력으로 관객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너무 잘 부른 사세가(辭世歌) ‘별은 빛났건만’의 앙코르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스카르피아 역의 사무엘 윤은 악당으로는 지나치게 깨끗한 소리였지만 충분히 열연을 펼쳤다.

표현진의 연출은 시대나 장소 배경을 원래대로 둔 전통적인 것이었으나 포격으로 일부 파손된 성당, 산탄젤로 성의 쓰러진 천사 날개 등 인류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화를 표현했다. 조금 생뚱맞은 부분도 있었지만 대역을 사용한 토스카의 투신 장면은 지금까지 실연으로 본 ‘토스카’ 중 가장 압권이었다. 지중배가 지휘한 부천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소릿결을 들려주었지만 공연장 음향 탓인지 필요한 경우의 폭발력이 다소 아쉬웠다.

비록 게오르기우가 일으킨 사건으로 마무리가 찜찜해졌어도 이런 스타 가수를 섭외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시도는 찬사를 받아야 한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어도 결코 퇴물가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국립오페라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연작에서 연속적으로 대단한 출연진을 구성하면서 국립오페라단의 대항마다운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이런 경쟁 구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유형종=무지크바움 대표.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 저서 『신화와 클래식』 『불멸의 목소리 1,2』

유형종 음악·무용 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