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가뭄 영화계…중규모 상업영화 지원, 단비 온다

이종길 2024. 9. 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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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규모 영화 제작…'부익부 빈익빈' 현상 완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 유도…영화계 화색
극장들 "영화 관람료 인하? 다각도로 테스트"

제작 가뭄에 시달리는 영화계에 단비가 내릴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중규모 상업영화 제작 지원사업 비용으로 100억 원을 편성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예산지원 영화업계 토론회'를 진행했다. 극장·제작사·배급사·투자사 관계자들에게 내년 지원 계획을 미리 설명하고, 업계 의견을 취합했다. 문체부가 예산을 두고 영화인들과 토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체부는 최근 내년 영화계 지원예산을 올해보다 92억 원(12.5%) 많은 829억 원으로 편성했다. 여기서 100억 원은 중규모 상업영화 제작 지원에 사용한다. 영화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문체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뒤 자본경색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대형 상업영화에 대한 투자 쏠림현상이 나타나 중규모 영화 제작이 크게 위축됐다"며 "이번 지원이 한국 영화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사진은 2003년의 재현이다. 당시 충무로에선 참신한 중규모 상업영화가 여럿 배출됐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이다. 영화시장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고 영화인들이 발전하는 성장 사다리 역할을 했다.

유 장관은 토론회에서 "옛날만큼 민간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문체부가 그런 역할을 좀 더 많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기존처럼 지원 작품을) 서류로만 심사하지 않고 데모 영상 등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다.

영화계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보였다. 김태완 루이스픽쳐스 대표는 "제작비 50억 원 규모의 '잠(2023)'을 준비하면서 코로나19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당시 중형급 영화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나왔으면 했는데, 문체부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반갑다"고 말했다.

'경관의 피(2022)', '아이들…(2011)' 등을 연출한 이규만 감독은 "감독들에게 문체부의 영화 제작 지원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며 "코로나19 뒤 긴 터널을 통과하는 창작진에 활력과 희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죽었다(2024)'를 연출한 김세휘 감독은 "상업성을 고려하다 보니 영화의 특색 있는 매력이 투자사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있다"며 "'파묘(2024)'처럼 마니아적 요소들이 더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하는 만큼 이번 지원이 신인 감독들의 참신한 시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영화제 지원도 확대한다. 단 심사 기준을 명확히 하고 요건을 충족하는지 꼼꼼히 살필 계획이다. 유 장관은 "영화제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심사하겠다"며 "(심사 기준에서) 벗어난 영화제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최근 화두가 된 홀드백 제도와 영화 관람료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홀드백은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가 IPTV,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 유통되기까지 유예 기간을 두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선 법제화돼 있지 않다. 극장 측은 대체로 홀드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OTT 업계는 시청권 제약이나 다름없다며 반대한다.

허민회 CGV 대표이사는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극장에 오지 않는다고 하는 관객이 많다"며 "문체부에서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영화가 흥행해야 선순환이 되는 만큼 홀드백이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르 높였다.

남용석 메가박스 대표도 "외국 영화인들이 '홀드백을 안 하면 영화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사실을 한국을 보며 배운다'고 말하더라"며 "홀드백이 잘 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 영화 산업이 코로나19 이전의 90%까지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유 장관은 "문체부도 홀드백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 합치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극장 측은 코로나19 뒤 꾸준히 인상한 영화 관람료를 다시 내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허 대표이사는 "가격을 내려서 장사가 더 잘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가격에 대한 사안은) 다각도로 테스트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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