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세대별 차등’…가본 적 없는 길
‘보험료율 차등 인상’과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뼈대로 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공개되자 전문가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정부가 개혁안을 단일안으로 내놓은 것은 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보험료율 차등 인상과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과거 몇 차례 언급만 됐을 뿐 제대로 된 논의는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던 ‘뜨거운 감자’다.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4%p 더 내고 2%p 더 받는다
인상 속도 세대별 차등화
9월 4일 보건복지부는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둔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국민연금 개혁 방향은 크게 ① 지급 보장 명문화 ②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 ③ 자동조정장치 도입 ④ 납입 기간 추가 산입 제도(연금 크레디트) 확대 ⑤ 기초연금 인상 등으로 압축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9%인 보험료율(가입자가 내는 돈)은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가입자가 받는 돈)이 40%까지 줄게 돼 있는 것을 42%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보험료율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가파르게 인상돼 세대별 차등을 둔다. 기대수명이나 가입자 수와 연계해 연금 수급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검토한다. 이외 기초연금은 2026년 저소득층부터 40만원으로 10만원 인상한다. 의무가입 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늦추는 방안도 고령자 계속 고용과 함께 논의한다. 퇴직연금 가입을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의무화하고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통해 개인연금 가입을 독려한다.
논쟁적인 대목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과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두 가지다. 보험료율 차등화는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청년 세대를 위해 연급 수급 가능성이 큰 중장년층이 은퇴 전까지 보험료를 많이 내자는 취지다. 내년 50대인 가입자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1966~1975년생인 50대(내년 나이 기준)는 내년부터 보험료율을 10%로 1%포인트 올리고 이후에도 매년 1%포인트씩 올린다. 다만 1966년생은 내년(59세)을 끝으로 연금을 더는 납부하지 않으므로, 최종 연금 보험료율은 10%로 끝난다. 1967년생은 11%(2026년), 1968년생은 12%(2027년)로 각각 마치게 된다. 1969~1975년생은 2028년 이후 13%의 보험료를 부담한다. 50대 보험료율 인상은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져 2028년에 종료된다. 40대는 50대의 절반씩 매년 오르므로 최장 8년, 30대는 12년, 20대는 16년간 보험료가 오른다.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부과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낳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어떤 국가도 세대별 차등 부과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제도 도입에 따른 연금 추계나 사회적 충격 등에 관해서도 축적된 자료가 전혀 없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에 대해 찬반이 팽팽하지만 대체로 우려 섞인 시선이 우세하다. 찬성 진영에서는 취지에 공감하며 보험료율 차등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도 거센 조세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던졌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더라도 보험료율을 20%까지 올리지 않으면 후세대가 막대한 빚을 떠안는 구조”라며 “앞 세대가 연금 제도를 방만하게 운영했으니 젊은 세대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 불만을 완화하고 곧 혜택을 받을 세대에 더 걷는다는 면에서는 합리적”이라면서도 “이례적인 형태로 조세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론 골자는 납부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세대’라는 단일변수로 묶어 인상률을 일괄 적용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50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보험료를 20~30대 대기업 정규직보다 더 많이 올리는 게 ‘형평’이냐”고 비판했다.
연금법 개정 난제 중 난제
자동조정장치도 논쟁거리다.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여명 증감률’에 따라 연금 수급액이 자동 조정되게 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경제성장률 둔화 등 거시경제 상황이 변하면 연금 지급액을 낮춰 연금재정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 제도는 스웨덴, 일본,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4개국이 운용 중이다. 우리 정부가 참고한 방식은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2004년 ‘거시경제 슬라이드’로 불리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슬라이드’는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연금액이 미끄러지듯 줄어든다는 의미다. 가령, 물가 상승률이 2%라면 그만큼 연금이 늘어야 하지만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개입하면 연금 증가폭이 줄어든다. 연금 하락폭을 결정하는 ‘슬라이드율’은 가입자 감소율과 기대수명 증가율을 더한 값으로 그만큼 연금이 감액된다. 예컨대, 가입자 감소율이 1%고 기대수명은 0.5% 늘었다면 이를 합한 1.5%가 ‘슬라이드율’이 되고 그만큼 연금이 감액된다.
자동조정장치 역시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둔 것으로, 소득보장론자 사이에선 반발이 거세다. 지난 4월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최종 설문에서도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소득보장안’이 ‘재정안정안’보다 선호도가 높았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 2030년 신규 수급자 기준 평생 받는 연금액이 16.8% 깎인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데,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연금재정을 위한 자동조정장치만 도입하는 것은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노인 빈곤율은 중위 소득(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한 사람 소득) 50%에 못 미치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을 뜻한다. 한국은 2020년 기준 40.4%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연금 개혁안을 두고 이해관계 대립이 극명하게 갈리자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난제 중 난제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 국회 상황을 두고 비정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여야는 곳곳에서 충돌한다.
여야는 벌써부터 긴장감을 높인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 때 여야 간 의견 접근을 이뤘던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인상안으로 다시 합의를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서둘러 국회 내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리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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