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지현의 권고, 2년 전 경찰·방통위·방심위가 뭉갰다
[김화빈 기자]
▲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가 2021년 10월 2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지원 전문위원(S2W 부대표),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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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가 우려되고, 해외기업 메신저는 규제하지 못해 역차별 논란 소지가 있음. - 경찰청
수사기관이 바로 (디지털성범죄물) 삭제를 요청할 경우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됨. -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수사기관에 인터넷 내용규제 권한(응급조치)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 검열 오해 우려가 있음. -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경찰청·방통위·방심위가 2년 전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물 초기 차단·삭제를 위한 '응급조치법' 신설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의 광범위한 확산이 큰 문제로 불거진 상황에서 "안일한 정부의 반대로 대응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22년 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 피해예방과 보호를 위한 정책개선 비공개 간담회' 자료집을 입수했다. 해당 간담회에서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와 경찰청·방통위·방심위 등 관계 당국은 수사기관이 선제적으로 디지털성범죄물을 채증하고 차단·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서지현 당시 TF팀장은 "피해자가 신고를 위해 기초자료를 직접 확보하는 등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범죄행위를 제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초기 차단·삭제 등)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4개월 전 TF 차원에서 내놓은 2차 권고안 내용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 온라인도 '응급상황' 있다 "법 바꿔 디지털성범죄 초기 차단해야" https://omn.kr/1vn3t)
정보통신망법, 방통위법 등 현행법상 영상물의 차단·삭제의 주체는 영상이 유통된 플랫폼의 운영자(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이고, 차단·삭제를 요청하는 기관도 방심위로 제한돼 있다. 수사기관이 범죄 영상물을 인지하더라도 방심위를 거쳐야만 이를 차단·삭제하도록 요청이 가능하다.
"충분한 검토" 뒤에 숨은 정부 "응급조치 실익 없다" 단언
당시 간담회에서 경찰청·방통위·방심위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응급조치법 신설에 반대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는 "성착취 정황 발견 시 경찰의 보고·신고 의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사업자가 범죄예방 명분으로 이메일·메신저 등 이용자의 사적 공간을 검열할 경우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해외기업 메신저는 규제하지 못하고 국내사업자만 규제하는 역차별 논란 소지가 있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확산방지팀도 "피해자의 고충을 감안해 신속한 삭제·차단 등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면서도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국가의 조치·개입은 기본권에 대한 중차대한 제약으로 제도(응급조치) 자체에 대한 침해 최소성 및 대안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독임제 수사기관에 인터넷 내용규제 권한(응급조치)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 검열의 오해 우려가 있다"며 "수사기관(사법경찰관)의 임의 판단에 따른 온라인상 정보삭제는 종국적 조치 수단으로서, 삭제된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거나 구제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장 요청에 따라 (방심위에) 불법촬영물에 대한 신속 심의·시정을 요구하는 패스트트랙 등 실질적으로 응급조치를 구현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방통위는 "(응급조치법 신설은) 실익이 거의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방통위 인터넷윤리팀은 "수사기관이 방심위를 거치지 않고 플랫폼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할 경우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또 불법촬영물 재유통 방지 정책의 실효성이 저하(DB 관리)되고 삭제 요청 판단이 어려울 시 방심위로 다시 (요청이) 송부돼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방심위가 연중 상시적으로 '24시간 내 심의체계(신속심의제도)를 운영 중이므로 방심위를 거쳐 삭제 요청을 하더라도 시간 지체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 지난 8월 31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교(영풍문고) 앞에서 진보당이 주최한 '딥페이크 성범죄 강력수사 촉구' 집회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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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도 "국가 검열을 우려한다면 엄격한 내부 규정이나 매뉴얼을 만들어 보완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먼저"라며 "어떠한 노력도 없이 국가 검열이 우려되니 (응급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건) 국가가 디지털성범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해 "오히려 (피해자들은) 응급조치로 증거가 삭제돼 유포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응급조치로) 삭제나 임시차단을 하더라도 별도로 증거물을 보관해 수사가 가능하게끔 하는 후속 대책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실제 TF가 권고했던 응급조치법에 "피해 영상물 채증"까지 포함).
방통위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에 "기존 심의 및 차단체계를 통해 일관성 있게 (디지털성범죄에) 대처하자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오는 10월까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해명했다. 경찰청과 방심위는 <오마이뉴스>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한편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6일 만에 서지현 TF팀장을 원소속으로 복귀시키며 사실상 TF를 해체시켰고 응급조치법 등 권고안은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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