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관리, 경력·자격증 없어도 할 수 있어요"

김부규 2024. 9. 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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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이야기] (주)○○리더스 이소룡 관리부장

[김부규 기자]

- 2020년 12월말 직장 퇴직
- 2022년 9월 ~ 2023년 9월 인천 고등학교 야간당직전담실무원 역임
- 2023년 10월 ㈜○○리더스 취업

한국은 고층 건물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대부분의 고층 건물에는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건물 유지 관리에 있어 관련 자격증을 갖추고 숙련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은 경력이나 자격증 없이도 할 수 있다. 은퇴 후 4년이 경과하는 동안 첫 번째와 두 번째 직장에서는 여건이 맞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세 번째 직장에서는 경력과 자격증 없이 입사하여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이소룡(가명, 64) 은퇴자를 지난 8월말 만났다. 경력과 자격증이 없더라도 오랜 직장생활의 경험이 소중하게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글쓴이 말)
 전문 자격증을 갖춘 숙련된 기술자만이 건물 관리 직종에 취업하는 것은 아니다. 경력과 자격증이 없어도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의 문은 열린다.
ⓒ 김부규
- 은퇴 후 소감 한 말씀

"40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일하다 퇴직하니 시원섭섭했죠. 솔직히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런데 제가 퇴직할 때까지 은퇴 설계를 한 게 전혀 없었어요. 퇴직하기 전까지는 다른 걸 준비할 생각도 없었고 오로지 직장에만 100% 집중했어요. 요즘은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라고 해서 직장, 가정, 또 자기 개인 생활을 균형있게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고 가정 일보다도 거의 직장에 매여 있는 생활을 하고 또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퇴직 후 출근하지 않는 1년 동안의 기간이 편안하긴 했지만 쉬면서 약간 뭐랄까 쉬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좀 답답하기도 했고, 또 할 일이 없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감이 많이 떨어지는 거죠. 뭔가 아직도 정신과 신체가 멀쩡하니까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자녀들이 보는 눈도 있고 그래도 아직 꽃중년인데 할 일 없이 노는 것도 스트레스였어요.
 이소룡 은퇴자(가명). 본인의 원에 의해 뒷모습만 촬영했다.
ⓒ 김부규
정년 퇴직 이후에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됐으니까 가볍게라도 뭐 좀 해볼까 하고 여기저기 일자리도 알아보면서 알바라도 해보려고 치과 기공소에 들어갔어요. 컴퓨터로 치아 임플란트, 틀니 틀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기술이 없으니까 책상에 앉아서 하라는 대로만 따라했어요. 거기는 진짜 점심시간 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서 주어진 일을 해야 했어요. 너무 답답했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보름 만에 관뒀어요.

그후 좀 쉬다가 지인의 권유로 학교 당직원에 지원했어요. 그것도 6군데 넣었는데 면접에조차 부르지도 않았어요. 일자리 잡는 게 쉽지가 않았죠. 7번째만엔가 처음 면접을 봤어요. 두 번째 면접에서 됐어요.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13개월 근무했어요. 2명이서 교대로 근무했죠(학교 당직전담실무원). 근데 조금 해보니까 불편한 게 처음에는 잠을 못 잤어요. 잠자리가 바뀌고 또 과거 현직 때 당직 서듯이 괜히 긴장이 되는 거예요. 잠을 또 푹 자지 못하니까 그다음 날 하루를 쉬어도 그렇게 편치는 않더라고요. 1년이 넘어가니까 밖에 나가서 자는 게 좀 아닌 것 같았고 집에 안식구 혼자 놔두고 나가서 잘라니까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 와중에 지인을 통해서 이 회사로 옮기게 되었죠."

-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과거 직장에서 동호회 활동을 같이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가 있었는데 이 회사 대표님과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분 소개로 직장을 옮기게 됐어요. 제가 학교 당직 일을 관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이었어요. 전임자가 경찰 출신인데 3개월 후 퇴직이 예정되어 있어서 자리가 나게 된 거죠. 직장 동호회 회원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좋은 직장을 구한 거죠."

- 관리부장으로서 회사 업무 전체를 총괄하시는 건가요?

"제 직함이 관리부장이지만 회사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아니에요. 소규모 회사의 관리부장이라는 직함은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아니고 대외 이미지를 위해 붙여주는 명칭이라고 보면 돼요. 우리 회사는 건물 관리가 주업무로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제외하고 집합 건물이라고 하는 상가 건물이나 오피스텔 관리를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우리 회사가 관리하는 서울, 인천, 고양, 부천시 소재 건물 80여 개에 파견 나가 있는 직원 140여 명의 인사와 노무관리, 그리고 총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챙겨야 하는 일이 많아요. 처음 일을 맡아서 할 때는 이것저것 몰라서도 그랬겠지만 이거 일이 별로 없네 했다가 몇 달 근무해 보니까 챙겨야 될 게 자꾸 생기더라고요. 사실 업무적인 부분은 난이도가 높거나 부담스러운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일이라는 게 차츰 알아가다보니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니까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현재로서는 어떤 목표가 있거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은퇴 후 일자리가 있다는 안정감 그리고 가정에 경제적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 이 직종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회사와 근로계약을 할 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근무하는 걸로 계약했어요. 제 전임자는 오후 3시까지 근로계약을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업무량이 많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회사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일이 많아져서 1시간 더 늘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조기 퇴근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죠.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개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죠. 일찍 퇴근하면 손주와 같이 놀아줄 수 있어 그 시간이 행복해요."

-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제 근무 시간이 6시간이잖아요. 8시간 근무한다고 보고 계산하면 최저임금 수준이 될 거예요. 이게 퇴직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급여수준이죠. 젊은 사람을 안 쓰고 그 자리에 퇴직한 사람을 채용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급여가 좀 적어도 되니까 이런 근무형태가 생긴 것 같아요."

- 은퇴 후 부인과 두 분 생활비는 얼마나 드나요?

"한 300만 원 정도 들지 않을까 싶어요. 가끔 여행도 간단하게 갔다 오고 또 이래저래 둘이 사는 데 그 정도는 들 것 같아요. 두 사람 생활하는 데 불편함 없는 수준으로 만족해요."

- 이 직종의 전망과 앞으로 언제까지 근무하실 계획이신가요?

"사실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앞으로 2년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올 때 3년 근무로 계약했어요. 1년 가까이 했으니까 2년은 더 근무할 수 있고,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연장 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해야죠.
 부동산관리업종에 50대 이상 종사자가 8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채용 시 경력과 자격증 유무를 따지지 않는 비율이 24%나 된다. 절실한 사람에게는 취업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 김부규
건물관리 업종의 전망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 갈 수 있어요. 건설 경기가 좋으면 사업이 더 확장될 수는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특별히 변하는 건 없어요. 또 요즘 AI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이 많은데 우리 업종은 사람이 몸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아요."

-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자격증을 딴다고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해라 하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런 소규모 기업에서의 노무행정업무는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을 쓰기는 어려워요. 사람을 알고 써야 직원을 믿고 아무거나 맡길 수 있는 거죠. 저와 같은 자리는 많이 희소하지만, 우리 140명 직원들을 생각한다면 공개 채용을 많이 하기에 충분히 도전해 볼 수는 있어요. 우리 직원들 중에는 군인 출신이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은퇴자들이 꽤 있어요. 그리고 이 일이 강도 높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고 관리적인 측면이 많아서 청소도 일부 할 수도 있고 분리수거도 할 수 있겠지만 생각을 바꾸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선호하는 일 중에 하나예요."

- 평소 인생 후배들에게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하는 현실 조언?

"주변 사람들을 보면 퇴직하기 전부터 취미생활이나 자기개발을 해온 사람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참 부러운 게 퇴직하면서 그걸 쭉 이어갈 수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현직에 있으면서 계속 수석(壽石) 취미생활을 한 분이 있었어요. 수석 분야에서 전문가까지 됐어요. 수석 관련 협회의 전문 감정과 본인 전시회까지 할 수 있는 실력자였어요. 그런 취미를 평소에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요. 취미 활동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지금 종사하는 일과 관계없이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 자격증 준비를 꾸준히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퇴직 10년 전, 최소 5년 전에는 자기 전문 분야를 정해서 준비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MZ세대 젊은 친구들이 직장과 가정, 자기 개인 생활을 균형있게 많이들 하는 것 같은데 심적으로 직장에 비중을 너무 많이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물론 직장이 기본적인 삶의 원천이기 때문에 중요하죠.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만 5 대 5 정도로 균형을 맞췄으면 해요. 너무 몰빵하지 말라는 거예요. 부부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그걸 제가 젊었을 때 잘 못해서 퇴직하고 나서 아내한테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있어요. 아내를 많이 챙겨주지 못하고 배려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집안일을 몸으로 도와주는 것보다 감정을 잘 읽어주는 것, 배우자의 마음 상태를 읽고 공감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47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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