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없는 벌새, 미국서 15일 간 관찰해보니 이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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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현 기자]
제가 벌새(Hummingbird)를 처음 만난 곳은 20년 전 교환학생 때 알게 된 미국 가족 집 뒷마당이었습니다.
몸집이 작지만 힘차고, 햇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이 새가 제 눈엔 매우 신비로웠습니다. 하지만 벌새는 한국에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다시 직접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 벌새 피더 벌새를 위한 설탕물 피더 |
ⓒ 이아현 |
▲ 맛있어요! 벌새가 맛있게 먹고 있어요. ⓒ 이아현 |
바로 다음 날 벌새가 왔습니다. 작은 몸으로 벌컥벌컥 아주 맛있게 설탕물을 먹었습니다. 처음엔 한 마리만 오는 줄 알았더니 두 마리가 오고, 그러더니 세 마리, 네 마리가 옵니다.
영역 다툼을 매우 심하게 하는 게 벌새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지켜보니, 어쩌면 먹는 시간보다 다투는 시간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특히 해가 뜰 무렵인 새벽 6시 즈음에 가장 심합니다.
▲ 영역 다툼 중인 벌새 |
ⓒ 이아현 |
▲ 나눠 먹으면 안되겠니? 파이터 벌새들 ⓒ 이아현 |
이번 주 제가 사는 곳은 내내 거의 40도를 웃도는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 벌새가 너무 더워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
ⓒ 이아현 |
관련 ' Hummingbird Central ' 정보에 따르면 벌새는 1월부터 5월까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까지 이동한다고 합니다. 보통은 하루에 37km를 날 수 있지만 멕시코 만을 지나 이동할 때는 804km까지 날기도 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10cm정도 되는 작은 몸으로 평균 속도 시속 32-48km, 심박수 분당 1260회, 1초당 최대 80회의 날갯짓을 하며 북미로 이동한 후 9월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버드피더는 벌새들의 휴게소인 셈입니다. 기후 변화로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지고 있어서 벌새가 도착했을 때 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륙을 종단하면서 틈틈이 먹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버드피더는 필수입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는 일 년 내내 한 지역에만 사는 벌새도 있다고 합니다. 봄에 알을 낳고 육추를 하면 여름에는 아기새도 다 커서 먹이를 찾아 나섭니다. 벌새 개체수가 많아지니 여름에 꽃이 적은 동네는 버드피더가 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벌새 먹이주기는 쉬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합니다.
미국 국립오듀본협회(National Audubon Society)에서는 마당에 미국 자생 식물 심기를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심으면 곤충이 살 수 있게 되고 새가 먹이 활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둥지를 지을 수 있고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우는 것)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새가 사는 곳에서는 우리네 삶도 즐거워집니다. 새의 춤, 노래, 색깔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고 다툼마저도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낯선 곳에 살지만 매일 오는 벌새 덕분에 외롭지가 않습니다. 건너편에 사는 가족이 "새를 좋아하시나 봐요. 사진 찍으시는 거 봤어요"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벌새 덕분에 이웃이 생겼습니다.
벌새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방법은 설탕물 가득 채운 피더 밖에 없겠지요? 진짜 꽃 꿀은 아니지만 제 마음이 닿도록 조만간 한 번 더 맛있는 설탕물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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