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 나돌아…스토킹처벌법 적용 검토
경찰이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의사 블랙리스트인 ‘감사한 의사 명단’ 관련해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개인정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여기에 더해 이를 ‘스토킹 범죄’로 보고 수사한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건 ‘의사 집단따돌림’”이라면서 “스토킹 범죄와 유사해 관련 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9일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의사 블랙리스트에 대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을 위축시키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감사한 의사 명단’ 사이트가 진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사기와 근로 의욕을 꺾고 있다”며 “일부 군의관은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군의관의 정신적 고통은 해당 사이트에 최근 올라온 ‘응급실 부역’이란 이름의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여기엔 추석 연휴 병원별 근무 인원이 일부 근무자 명단이 담겼다. 특히 응급실에 파견된 군의관·공중보건의사의 실명과 “민족의 대명절 추석,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드린다”는 문구도 있다.
해당 사이트는 복귀 전공의를 포함한 병원 근무 의사들에 대한 조리돌림의 장이다. ‘감사한 의사 명단’ 사이트는 운영자가 제보를 통해 확보한 의료현장에 있는 의사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모은 뒤 매주 업데이트한다. 여기에 이름과 면허 번호,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는 기본이다. “불륜이 의심된다”, “탈모가 왔다” 등 악의적인 표현도 수두룩하다.
경찰은 이러한 행위를 ‘집단 따돌림’의 한 형태로 보고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검토한다. 지난 1월부터 스토킹의 새로운 유형으로 정보통신망에 개인정보를 지속적·반복적으로 올리는 행위를 처벌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온라인에서 신상공개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 복귀에 부담을 느끼거나 동료 의사집단에서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의사 블랙리스트 수사는 전반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감사한 의사 명단’이 매주 갱신되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경찰은 지난 6월 말부터 텔레그램 등을 통해 리스트의 유포를 인지했지만 지난 7일에도 이 명단은 버젓이 업데이트됐다. 이 사이트는 수사망을 피해 웹페이지 곳곳을 옮겨 다니다 현재는 일반인까지 볼 수 있는 곳에 게시된 상태다.
‘감사한 의사 명단’의 원조는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의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서 나온 ‘참의사 리스트’다. 경찰 관계자는 “의사판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가 문제의 시작”이라면서 “한다고 하는데도 (블랙리스트) 삭제·차단 조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사이트가 의사·의대생임을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는 익명성과 보안성을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위해 해당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의사들을 일일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명단에 올라온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서 게재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처벌할 수 없는 죄) 규정은 현재 삭제됐지만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란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9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의사 블랙리스트 작성·유포와 관련해 “30명 정도를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추석에 근무하는 의사와 진료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 명단을 계속 공개하면서 괴롭히고 모욕을 주고 있다”면서 “국민을 괴롭히고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석 연휴 응급실 운영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복지부는 추석 연휴 기간 문 여는 당직 병·의원이 올해 설 연휴보다 2배 이상 많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9일 파악한 추석 연휴 문 여는 병·의원은 일평균 7931곳이다. 이는 올해 설 연휴 기간 운영한 당직 병·의원(하루 평균 3643곳)의 2.2배 수준이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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