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와 놀랍도록 닮았다...『귀신들의 땅』 대만 작가 천쓰홍 첫 내한
"영어권 국가에서 북토크를 할 때는 젊은 독자들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봉건적이고 고압적인 정부를 겪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반대로 한국 독자들은 대만처럼 폭력적인 시대를 비교적 최근에 거쳤기 때문에 이 소설에 더 공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장편 소설 『귀신들의 땅』으로 대만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한 대만 소설가 천쓰홍(48)은 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표작 장편 『귀신들의 땅』과 『67번째 천산갑』을 최근 잇따라 한국에 소개한 작가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천쓰홍은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소설가, 번역가,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귀신들의 땅』은 농가의 아홉째 아이로 태어난 천쓰홍의 자전적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실제 작가의 고향인 대만 중부의 농촌 용징. 천씨 집안의 막내아들이자 성소수자인 주인공 톈홍과 다섯 누나가 대만의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2019년 출간돼 12개 언어로 번역됐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소설은 해외 문학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출간 이후 1만5000부가 팔렸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한국과 대만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그 인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천쓰홍은 "한국 출간 때만 해도 잘 안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가 사인회에서 한국 독자들이 긴 줄을 서서 정말 놀랐다"며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대만 사회와 유사한 점이 있어 많은 분이 공감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신간 장편 『67번째 천산갑』은 지난해 말 대만에서 초판을 찍었고 지난 5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귀신들의 땅』이 역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면, 『67번째 천산갑』은 개인성, 특히 성소수자로서의 천쓰홍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천쓰홍은 "청소년기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30세 때 커밍아웃을 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다"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됐기 때문에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도시 외 지역에선 여전히 성소수자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고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멸종위기종 동물 천산갑은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장치다.
작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제 정체성을 숨기려 애를 썼지만 잘 안됐어요. 세계문학을 많이 읽고 영화도 즐겨보면서 다른 세상과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보수적인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상처받은 청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소설로 세상에 부딪힐 겁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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