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개국 수백만 신도 거느린 필리핀의 ‘라스푸틴’

강창욱 2024. 9. 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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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강간·성매매·아동성학대 등 혐의로 체포
신도들, 지진 멈출 수 있는 신의 아들이라 믿어
경찰 피해 도망치자 “목사님 벽 통과했다” 생각
필리핀 종교단체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KJC) 설립자 아폴로 카레온 퀴볼로이. KJC홈페이지


8일(현지시간) 필리핀에서 미성년자 강간 등의 혐의로 체포된 종교 지도자 아폴로 카레온 퀴볼로이(74)는 ‘신의 아들’ ‘우주의 소유자’로 불리며 미국과 뉴욕을 비롯한 200개국에서 수백만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영적 조언자이자 ‘절친’인 그는 제정 러시아 말기 황제의 신임을 얻어 배후에서 내정간섭을 일삼던 파계 수도자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테르테를 비롯해 추종자들은 “퀴볼로이 체포는 ‘왕’을 폐위시키려는 미국 ‘악의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퀴볼로이는 1985년 9월 1일 필리핀 다바오시 아그다오에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KJC)이라는 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활동해왔다. 그가 꿈에서 받은 신의 계시로 설립했다는 KJC는 삼위일체론을 근간으로 하는 주류 개신교와 달리 비삼위일체를 주장한다. 신도들은 퀴볼로이를 ‘하나님이 임명한 아들’ ‘우주의 소유자’라고 부른다.

‘왕국’은 전 세계적으로 약 200개국에 300만~700만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과 브라질, 우크라이나, 홍콩 등 각지에 퀴볼로이의 설교를 듣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12세 소녀 ‘목회자’의 ‘야간근무’
2021년 미국 연방 대배심은 퀴볼로이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KCJ 관계자들을 사기·협박·무력에 의한 성매매 공모와 아동 성매매, 거액 현금 밀반입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74쪽 분량 기소장에는 12세 소녀들이 퀴볼로이의 개인 비서나 일명 ‘목회자(pastorals)’로 일했다고 기재돼 있다.
KJC 행사 장면. KJC 홈페이지


14, 15세 소녀를 포함한 ‘목회자’들은 ‘야간 근무’라는 표현으로 포장한 성관계를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몸을 퀴볼로이에게 바치는 ‘헌신 서약서’를 작성했다. 거부하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기소장에 명시됐다고 NYT는 설명했다.

성적 요구를 거부한 여성 ‘목회자’는 다바오 외곽 ‘기도의 산’이라는 곳에서 감옥에 수감된 죄수처럼 머리를 깎이고 주황색 옷을 입도록 강요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여성은 넓적한 나무 몽둥이(패들)로 맞기도 했다고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퀴볼로이를 최우선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미국이 발부한 체포 영장은 필리핀에서 효력이 없었다. 퀴볼로이는 교회 본부에서 설교를 계속했다. KJC 지도부는 다바오에서 대학, 로스쿨, 항공사,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등을 운영했다. KJC는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방송국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모금액 못 채우면 가두고 굶겨
미국과 필리핀 사법기관은 KJC가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신도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켜 기부받은 돈으로 부자가 됐다고 평가한다. 다바오에서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장신구 등을 팔아 ‘왕국’에 돈을 갖다바쳤다고 전 신도들은 주장했다. 신도가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면 기부금을 모으거나 물건을 팔아 점점 늘어나는 금전적 할당량을 충족해야 했다고 한다.

기소장에 따르면 미국에서 KJC를 위해 일한 노동자들은 거의 매일 돈을 모아야 했고 밤에는 차에서 자기도 했다. 충분한 돈을 모으지 못하면 종종 방에 갇힌 채 굶었다. KJC는 이런 사람들을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위장 결혼을 주선했다. KJC 측은 이들 노동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으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NYT는 전했다.

퀴볼로이(왼쪽)가 2010년 4월 45일 필리핀 다바오에서 열린 자신의 60번째 생일 축하 행사에서 상원의원이자 대통령 후보인 마누엘 비야르(가운데)와 그의 부통령 후보 로렌 레가르다와 대화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KJC는 필리핀 출신 해외 노동자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로스앤젤레스(LA), 싱가포르, 두바이 등 각국 거리에서 아동구호단체 ‘어린이기쁨재단’을 위해 기부금을 모은다. 그 자선단체 중 적어도 한 지부는 가짜였다. 기부금은 고아를 돕는 데 쓰이지 않고 퀴볼로이와 KJC 지도부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고 미 사법 당국은 지적했다.

퀴볼로이는 전용기를 타고 다녔다. 홍콩 중심부에 있는 최고급 호텔인 샹그릴라 호텔의 연회장에서 생일 파티를 연 적도 있다고 당시 참석자 3명이 진술했다. 천장에 샹들리에가 달린 장소였다고 한다.

KJC에서 나온 신도들은 퀴볼로이가 특히 우크라이나 출신의 젊은 ‘목회자’를 선호했다고도 폭로했다. 피부가 희고 아름다운 게 이유였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KJC와 퀴볼로이의 노동착취 및 성학대 문제를 다룬 필리핀 상원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2명은 영상 증언을 통해 퀴볼로이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한 필리핀 여성은 미성년자였을 때 퀴볼로이에게 강간당했다고 증언했다. 퀴볼로이는 이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소환 요구에 불응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막가파 대통령도 떠받드는 목사
미국에서 퀴볼로이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진 2021년 필리핀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집권하고 있었다. 퀴볼로이는 두테르테가 의지하는 영적 조언자였다. 두테르테는 대통령에 오르기 전 20년 넘게 다바오 시장을 지내며 퀴볼로이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바오 시장 시절 KJC가 제공하는 헬기를 무제한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KJC 전 세계 법률고문인 미국 변호사 마이클 제이 그린은 퀴볼로이와 두테르테가 ‘아주, 아주 가까운 친구’라고 NYT에 말했다. 퀴볼로이가 도주했을 때 두테르테는 ‘왕국’ 재산 관리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KJC 설립 39주년을 맞은 이달 1일 두테르테는 퀴볼로이를 지지하기 위해 다바오를 방문했다. 퀴볼로이의 행방을 묻는 언론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천국에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신도들에게는 “나는 당신의 어둠 속에서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퀴볼로이 수색이 장기화하는 동안 KJC 측은 두테르테 집안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딸 사라 두테르테가 2022년 대선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에 부통령에 올랐다.

일부 경찰관은 자신들이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두테르테에게 충성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KJC 구매 담당 매니저 소피아 아르헨티나는 현지 경찰이 “여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나 목사님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NYT에 전했다.

KJC 측은 퀴볼로이가 무고하다는 근거로 두테르테와 친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린 변호사는 두테르테가 인기를 얻은 이유가 마약상들을 처형했기 때문이라며 “두테르테는 필리핀에서 그 누구보다도 법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동을 성추행한 목사를 포용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NYT에 반문했다.

NYT는 “비판론자들은 퀴볼로이를 라스푸틴에 비유한다”며 “퀴볼로이는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대규모 투표 집단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일종의 영적 왕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땅속에 숨은 ‘하나님의 아들’
퀴볼로이 체포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달 24일 중무장을 한 경찰 약 2000명이 필리핀 다바오에 있는 KJC 교회 구역에 투입됐다. 경찰은 신도들이 던진 돌과 물건에 경찰관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KJC 측은 완전무장한 일부 보안 요원에게 신도 수십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KJC 수석 법률 고문은 “체포 영장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권, 재산권, 종교적, 학문적 권리를 짓밟을 수 있는 면허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지난달 26일 필리핀 다바오 KJC 단지 밖에서 경찰과 퀴블로이 지지자들이 대치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30만3514㎡ 면적의 구역을 신도들은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른다. 당국은 퀴볼로이가 이 구역 아래 숨겨진 지하벙커에 숨어 있다고 봤다. 경찰은 열 감지 및 레이더 기술로 땅속 깊숙이서 사람의 체온과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체포 며칠 전이었다.

신도들은 야외에서 거대한 화면에 퀴볼로이의 설교 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뜨거운 날씨에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화면을 보며 박수치고 노래하며 몸을 흔들었다. 경찰은 2주 넘게 일대를 포위하고 퀴볼로이 얼굴이 인쇄된 수배 전단과 방패를 들고 경계를 섰다. 헬기는 퀴볼로이를 찾기 위해 상공을 선회했다.

필리핀 내무부 장관이 퀴볼로이 체포 사실을 발표한 건 8일 저녁이다. 퀴볼로이 측은 그가 자신해서 항복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항복을 협상했다고 설명했다.

‘왕국 위기’에 상복 입은 여신도들
무장 경찰이 새 예루살렘을 덮치면서 예배당 접근이 금지되자 신도들은 KJC 소유 패스트푸드 식당을 지휘본부로 삼았다. 올해 4월까지 맥도날드였던 곳이다. 퀴볼로이에 대한 여러 범죄 혐의가 제기된 뒤 맥도날드가 철수하고 지금은 ‘왁시스’라는 간판을 달고 라이스 버거와 두리안 커피를 판다. 이곳에서 매일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사람은 대부분 검은 상복 차림을 한 여성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교회 소유 인기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사 ‘손샤인 미디어 네트워크 인터내셔널(SMNI)’의 뉴스를 시청했다. SMNI 유튜브 채널은 퀴볼로이 관련 문제로 차단됐다. 필리핀 하원은 이 방송사의 방송권을 취소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SMNI는 여전히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으로 계속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필리핀 항소법원은 S.MNI와 관련된 은행 계좌를 포함해 퀴볼로이의 자산을 동결하라고 명령했다.

KJC 신도들이 행사 후 촬영한 기념 사진. KJC 홈페이지


왁시스는 KJC 구매 매니저 아르헨티나가 운영하고 있다. 충실한 신도 중 한 명인 그는 예전에 맥도날드의 자원봉사 매니저였다. 대학생이던 20년 전 퀴볼로이의 텔레비전 설교에 감동을 받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KJC에 합류했다. KJC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을 갔지만 학위는 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가 해외에 혼자 있는 것을 퀴볼리이가 걱정해 불러들였다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급여를 받지 않고 저축한 돈도 없다고 NYT에 말했다. ‘왕국’에서는 모든 게 무료이기 때문에 급여나 저축이 필요없다는 취지다.

그가 처음 교회 단지에 살기 시작했을 때 KJC는 가난한 단체였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려고 시장에서 버려진 과일과 채소를 구입했다는 게 아르헨티나의 설명이다. 안과의사인 그의 어머니는 전 재산을 팔아 교회에 기부했다.

“목사님 벽 통과해 사라졌다”
신도들은 여전히 퀴볼로이를 믿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퀴볼로이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경찰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목사님이 벽을 통과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이건 우리가 이겨내야 할 영적 시험”이라고 말했다. 신도들은 퀴볼로이가 지진을 멈출 수 있는 신의 후계자라고 믿는다고 NYT는 설명했다.

아르헨티나는 자신도 한동안 목회 보좌관으로 일했지만 성적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오히려 교회가 도덕적이고 보수적이라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을 금지했다고 주장했다. 퀴볼로이는 신도가 아무하고나 결혼하지 못하도록 직접 승인했다고 한다. 남편 후보들에 대한 기준이 높아 자신을 포함한 많은 여성이 결혼하지 못했다고 아르헨티나는 설명했다.

경찰에 체포된 퀴볼로이(가운데). AP연합뉴스


그린 변호사는 퀴볼로이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는 퀴볼로이의 혐의에 대해 부패한 전 교회 간부가 거짓말을 지어내고 다른 신도 14명을 설득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유도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린 변호사는 “이 왕국에서 교육받고 먹고 옷을 입었던 사람들의 충성심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는 미국이 퀴볼로이에 대한 인신공격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 반미·친중 정책을 폈다. 두테르테는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더 비극적인 상태에 빠진 적이 없다”며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필리핀을 경찰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르코스는 미국 친화적 노선을 걷고 있다. 신도들도 퀴볼로이가 필리핀과 미국 기득권층에 의해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NYT는 “퀴볼로이의 운명은 필리핀 사회의 여러 균열을 드러낸다”며 “로마 가톨릭 다수와 늘고 있는 복음주의 인구, 수도 출신 부유한 엘리트와 지방 출신 권력 브로커, 필리핀 전·현직 대통령 간 갈등이 그것”이라고 해설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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