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 경기에 나왔다? 기자들 공부해야 한다
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 <기자말>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근대5종 경기장에 관중이 꽉 차 있다 |
ⓒ 김창금 |
개막식은 프랑스 문화 예술 유산이 대거 소재로 등장하면서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유럽연합 국가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경기장은 대부분 만석을 이뤘다.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 또한 달랑 점심 도시락 하나와 유니폼만 지급받았지만 대회 기간 친절한 응대로 방문객들의 편의를 도왔다. 이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올림픽 경험과 세계인들과의 소통 등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회 기간 이슈로 여자 복싱에서 불거진 젠더 논란과 여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폭로성 발언이 있었다. 안세영의 발언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은 성평등 올림픽이라는 표어를 내세웠지만, 국내 미디어를 보면 여성 선수에 대한 묘사에서 여전히 남성중심주의 시선이 드러났고, 대한체육회의 메달 예측 실패는 스포츠 과학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보여주었다.
토론 참가자: 장익영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신문 체육부장), 김완태 전 프로농구 엘지 단장, 사회 김창금 한겨레신문 기자. 8월25일 줌 토론
아랍계의 호텔 지배인 라사드는 파리올림픽에 대해 '관심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TV로) 경기 볼 시간도 없이 바쁘다'며 일상에 치인 생활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회자: 파리올림픽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로서 먼저 얘기를 하겠다. 취재를 하면서 늘 궁금했던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을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묵었던 호텔은 파리 라데팡스 지역에 있는 레지던스 호텔이었는데, 아랍계 출신으로 호텔 지배인을 맡고 있던 라사드와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파리올림픽을 어떻게 보냐고 물었더니, 라사드는 "관심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 것처럼 보인 내가 안쓰러웠던지 설명을 추가했는데, 그는 "(TV로) 경기 볼 시간도 없이 바쁘다"며 일상에 치인 생활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버스 안에서 만났는데, 그조차도 올림픽에 큰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대회 말미에 특집기사 형태로 프랑스, 독일, 멕시코, 바스크의 기자와 토론한 적이 있는데, 독일 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의 닐스 베버 기자는 "조정 선수의 두 살배기 딸에게조차 150유로의 입장료를 요구한다. 가난한 파리 사람들은 구경도 하기 힘들었을 대회다"라고 비판적으로 말했다. 실제 20~30유로의 최저가 표도 있지만 고가의 표가 많았다. 생태와 환경,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파리올림픽조직위가 나름의 일관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속에 또다른 불평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 베르사유궁에 가설된 근대5종 경기장의 스탠드를 받치는 철골 구조 |
ⓒ 김창금 |
사회자: 파리올림픽에서는 베르사유 궁이나 그랑팔레 등 역사 유적 안에 임시로 경기장을 가설해 사후 관리로 인한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근대5종 경기장은 베르사유 궁의 잔디밭에 흙을 깔아 트랙과 길을 내고, 마구간 등을 세워 만들었다. 가설 스탠드의 규모도 엄청 컸다. 원상복구 계획이 치밀하게 짜여있지만, 문화재라도 현재적 맥락에서 활용하는 그들의 실용주의 태도가 느껴졌다.
핸드폰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각국 선수들이 항공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어마어마한 탄소가 배출된다. 티켓 값이 오전, 오후, 야간에 따라 다르고, 가난한 사람은 표를 살 수도 없는 빈익 빈부익부 현상도 있다. 아동 노동이나 착취, 오염, 불평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환경, 생태 올림픽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 2024 파리올림픽 수영이 열린 라데팡스 경기장은 파리의 대표적인 공연장 안에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을 가설한 것이다. |
ⓒ 김창금 |
장익영: 파리올림픽조직위가 노력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스포츠가 '워싱'(이미지 세탁)에 사용될 때 효과는 굉장히 크다. 사우디가 2029년에 동계아시안게임을 열기로 하는 등 중동 국가들이 스포츠 대회를 많이 유치하는데, 사실 올림픽에 여성 선수를 가장 늦게 내보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다. 그 이전에는 남자들만 나가는 등 차별이 심했다. 그런데 2025년 올림픽e스포츠가 사우디에서 열리고, 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에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일조하고 있다. 파리올림픽도 탄소를 이전 올림픽의 절반으로 줄이려고 했는데, 대회 뒤 결과 보고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거대한 행사라도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계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매머드 국제 행사는 기본적으로 환경 행사이고, 이런 점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태규: 장 교수님 말씀대로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가장 큰 지구적 문제다. 올림픽은 대규모 국제행사인데, 조직위로서는 지구적인 과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형태의 거대한 행사라도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계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대규모 국제행사는 기본적으로 환경 행사이고, 이런 점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만 미디어가 파리올림픽을 보도할 때, 조직위가 친환경 대회를 개최한다고 했는데, 선수들이 불편했다는 식으로 대립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다. 정책과 일치하면 좋지만 어느 정도 어긋남은 있을 수밖에 없다. 파리올림픽이 앞으로 이뤄질 거대 행사들에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부분에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자: 미디어 비평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같다. 올림픽 보도를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슈 중심으로 얘기를 해보자.
오태규: 한국에서 국내 미디어의 보도를 보면, 지난번 토론회에서 했던 젠더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고 느꼈다. 여자 복싱에서 알제리의 이만 칼리프가 금메달을 땄는데, 그 과정에서 이뤄진 언론 보도는 대개 '남자가 나왔다'라는 식의 보도를 했다. 젠더 의식을 갖추지 못한 열악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국내 여자 선수들의 활약을 보도하는 데에도 젠더 의식 부재가 드러났다. 가령 엄마 선수라는 표현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난번 토론회에서 얘기했지만, 여전히 보도에서 많이 사용됐다. 가난한 사람들이 경기를 볼 수 없는 문제도 짚어야 한다. 기존 시설을 경기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이번 올림픽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올림픽 스포츠 경기라면 누구라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일본의 NGO 단체가 운영하는 '피스보트'(Peace Boat)는 세계 평화 지역을 방문하는 크르주 상품이다. 자원봉사자가 매일 몇 시간씩 활동을 하면, 나중에 그 점수만큼 승선 요금에서 빼준다. 뭐 그런 방식으로 포인트를 누적해 나중에 스포츠 경기 관람 때 표를 할인해 주거나 인센티브를 주면,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람 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토론회에서도 얘기했듯이, 엄마 선수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양육에 대한 의무가 전제된다. 너는 '양육해야 돼'라는 식으로, 즉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줄 수 있다.
장익영: 지난번 토론회에서도 얘기했듯이, 엄마 선수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양육에 대한 의무를 지어주는 것이다. 너는 '양육해야 돼'라는 식으로 여성에게 부담을 부여한다. 즉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줄 수 있다. 사격 선수들이 메달을 땄을 때 국내 미디어에서는 엄마 선수라는 표현이 많이 나왔다. 이런 부분은 미디어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 파리올림픽 탁구 경기장에서 북한 선수단이 응원하고 있다. |
ⓒ 김창금 |
장익영: 칼리프 이슈는 단순히 성 구별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배경에 복싱 국제기구(IF)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기존의 복싱기구인 IBA가 퇴출되고, 대신 IOC가 신생 조직인 WB와 손을 잡고 복싱대회를 조직했다. IBA는 과거 세계선수권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테스트로 이들의 출전을 배제했고, IOC는 이번에 자체적으로 대회를 진행하면서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퇴출된 IBA가 다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미디어가 이런 스포츠 단체 간 배후 역관계를 짚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성 구별 문제는 육상에서도 호르몬 수치로 판단하는 등 여전히 이슈가 된다. 염색체가 XX나 XY다라고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좀더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기자들이 파리올림픽에 대한 사전 학습이 부족했다고 본다. 미디어가 해외 취재를 할 때는 준비운동하듯 충분히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도 내용이 4년 전이나 8년 전과 똑같아진다.
오태규: 격조 있게 품위 있게 쓸 기사를 너무 선정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의 보도를 보면 대개 남자인데 여자 경기에 나왔다는 식이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뒤의 헤게모니 다툼이 왜 발생하는지, 트랜스젠더 문제까지 포함해 고급스럽게 쓸 수 있는데 너무 일률적으로 '남자가 사기 쳐서' 대회에 나왔다는 식의 보도가 이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대회는 참여 선수의 남녀평등이 구현되고, 성평등이 중시됐는데, 기자들이 파리올림픽에 대한 사전 학습이 부족했다고 본다. 미디어가 해외 취재를 할 때는 준비운동하듯 충분히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도 내용이 4년 전이나 8년 전과 똑같아진다.
▲ 파리올림픽 여자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딴 이은혜(왼쪽), 신유빈, 전지희 |
ⓒ 김창금 |
기자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안세영이라는 선수가 갖고 있는 아픔을 국가주의적 측면에서 복속시키는 그런 문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이 부분은 스포츠저널리즘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오태규: 안세영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본다. 그런데 기자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안세영이라는 선수가 갖고 있는 아픔을 국가주의적 측면에서 복속시키는 그런 문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이 부분은 스포츠저널리즘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이제까지 못했던 얘기를 금메달을 통해서 하는 어떤 한계도 보여줬지만, 이제서야 스포츠 선수가 자기의 문제를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구나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하고,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자들이 '지금 그걸 여기서 왜?'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기자가 국가주의 등에 포섭되면 안 된다. 스포츠는 기록만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면서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안세영의 발언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할지를 깊이 있게 보도해야 한다.
사회자: 현장 기자로서 참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안세영의 발언을 현장에서 직접 듣지 못했고, 배드민턴 담당 기자도 아니어서 관성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배드민턴협회나 감독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방수현 해설위원이 말했듯이 금메달은 한 명이 땄지만, 그 뒤에는 감독, 코치, 후보선수 등 여러 사람들의 수고도 있다. 물론 문제가 된 부분을 개혁해 나가는 것은 모두의 과제다.
▲ 빛나는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한 선수들의 투쟁과 노력은 감동을 준다. |
ⓒ 김창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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