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에서 장애 아이 엄마로, 10년의 여정
[장혜령 기자]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
상연(김재화)은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탄탄대로 인생을 그렸던 여성이다. 40대에 정치부장, 50대에 편집국장을 꿈꾸며, 아들딸 둘을 낳아 잘 기르고 대학 들어가고 나면 마당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겠다는 계획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모든 계획은 180도 달라진다.
쌍둥이가 태어나던 날, 축복과 상처는 동시에 찾아오고야 만다. 지우(빈주원)는 먼저 나온 지수(이하린) 보다 늘 느린 아이였다. 말을 늦게 떼고 행동이 더딘 아이가 있게 마련이니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은 예상대로 흘러갔고, 지우가 자폐성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장애 아이 엄마로 살아가게 됐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큰소리 뻥뻥 치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 됐다. 혹시라도 폐 끼칠까 연신 굽신굽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지난 10년. 장애라는 섬에 숨어 살기 바빴던 상연은 아이와 자신을 위해 다시 노트북을 펼친다. 잘못한 일이 아닌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사과부터 할 게 아니라 세상에 당당히 존재감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타의 반 자의 반 장애도(섬)에 갇혀있던 상연은 드디어 날개를 꺼내 날아갈 채비를 마치게 된다.
▲ 영화 <그녀에게> 스틸 |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
영화는 정치부 기자로 지내며 경력, 가족, 미래까지 계획했던 상연이 계획에 없던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겪어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린 실화다. 발달장애 아이의 부모인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했다.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배우 김재화는 10년의 세월을 특수분장 없이 헤어스타일과 표정만으로 완성해 열연을 펼친다. 그간 상업 영화에서 짧지만 강렬한 신 스틸러로 활약한 그녀가 처음으로 무표정으로 일관해 중심을 잡는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담담함과 애달픔이 오롯이 얼굴과 몸짓으로 표현된다.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
필자는 원작과 영화를 보며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바꾸고 삶의 다양성을 배웠다. 나와는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는 주변의 또 다른 이웃에게 배려가 필요다는 사실도 배웠다. 더불어 열린 가치관과 따스한 포용력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천적, 후천적인 장애는 병이 아니라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생겨났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장애는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남들과 다르고 불편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꼭 불행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영문 제목 'BLESSER(축복)'는 '축복하는 사람'이란 영어 뜻과 '상처를 입히다'라는 프랑스어 뜻이 공존한다. 축복과 상처의 양면성은 같은 어원에서 갈라졌다는 아이러니가 흥미롭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던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손바닥 뒤집기처럼 고난과 행복은 양면과도 같아서 언제든 변하는 게 인생이란 소리다.
상연은 20대 초 장애인과 스치기만 해도 장애가 옮기라도 하듯 불쾌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30대의 상연은 아이의 장애가 자신 때문이라고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애 아이의 엄마로 살며 편협된 생각을 고쳐나갔다. 아이와 씨름하고 부당한 사회와 싸우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누군가는 겪지 않길 바라는 부모로 우뚝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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