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는 재명세” 반발 커지는데… ‘실용주의’ 이재명의 선택은?
야권 지지자들 ‘경호세’ 반박도
“여당의 공포 마케팅 성공…우려 불식시킬 방안도 필요”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두고 일반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재명세”(이재명 세금)라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난감해 하는 기류가 읽힌다. 일부 소속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금투세 유예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당내에서도 갑론을박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금투세 문제와 관련해 “일시적 유예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유예보다는 ‘완화’에 무게를 싣고 있는 모습이다.
금투세 시행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진성준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유임시킨 것도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 의원은 지난 8일에도 “기득권자들의 궤변에 속지 말자”며 “윤석열정권이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거액자산가들에게 혜택을 몰아주어 저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되 기본 공제한도를 연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리는 등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도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 “금투세를 일정 기간 대폭 완화해서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해보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일단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여야 논의를 통해 공제한도 등 기준을 대폭 양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국회 제1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금투세 유예 대신 완화로 기울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재명세’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초 ‘재명세’라는 표현은 과거 진보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민주당과 이 대표를 걱정하며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세 반대 여론을 수용하지 않는 이 대표를 걱정하며 “금투세=재명세 프레임으로 가야 민주당이 민의를 알아들을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당 표현이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로 퍼지면서 이 대표를 비판하는 취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세조항이 강할 수밖에 없는 세금 정책에 유력 대선후보이자 제1야당 대표의 이름이 붙자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기어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라는 국민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금투세의 또 다른 이름은 ‘이재명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재명세’라는 네이밍이 유행하자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과거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금투세 관련 법안을 발의한 것을 거론하며 ‘경호세’(추경호 세금)라고 맞불을 놓기도 한다. 추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의원이던 지난 2019년 소득세법 개정안과 증권거래세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주식, 펀드, 채권, 파생상품, 파생결합증권을 하나의 금융투자상품 거래로 손익을 통산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내용과 ‘양도소득세 과세범위 확대 계획과 연계해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증권거래세를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추 원내대표의 입장은 이후 바뀌었다.
당내에서도 금투세 시행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소영 의원이 꾸준하게 금투세 시행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는데, 이언주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금투세 유예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전용기·이연희 의원도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금투세 유예를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한다는 조세의 대원칙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금투세를 무리하게 시행할 경우 주식시장에 참여한 1천400만명 국민들이 투자손실 우려 등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장이)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된 뒤 금투세를 도입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당론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당내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신중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금투세의 당위성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금투세의 시행 시기에 대한 신중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도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본시장 선진화가 먼저다. 금투세는 유예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지금 금투세 논쟁은 문재인정부 시절 부동산 과세 논쟁과 다르지 않다”며 “대선 승패와 직접 연결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임에 성공한 이 대표는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중도 외연 확장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직후에는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며 세제와 관련해 유연한 태도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산층 세금 부담 완화 등의 실용주의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지난 대선 패인의 하나로 문재인정부에서 크게 오른 집값으로 인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 대상자가 늘어난 점을 지목하고 있다. 당시 득표율 차이는 불과 0.73% 포인트에 불과했다.
아직 당 지도부는 금투세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대신 민주당은 오는 24일 당 차원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고 금투세 유예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앞서 이 대표도 “정책현안에 대한 당내 이견은 건강한 정당이란 증거”라며 “나쁘게 보면 또 싸운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논쟁을 통해 당내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언급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정부·여당의 ‘공포 마케팅’이 일정 부분 성공한 것 같다. 투자자들의 걱정과 불안감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커져 있다”면서도 “당 차원에서는 이런 우려까지도 불식시킬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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