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들에게는 온 국민이 자본가 행세를 하나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이란주 기자]
▲ 고용허가제20년 기자회견 고용허가제 실시 20년,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하라. |
ⓒ 이재산 |
사장님,
당신의 냄새가 배어 있는
당신이 준 낡은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말보로 담배가 수없이 구멍을 낸
당신의 낡은 노스페이스 재킷을 입고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에게 준
당신의 가죽 모자를 쓴 후에
자존심의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채
나는 허수아비가 되었답니다
러메스 사연, <허수아비> 중에서
2023년 국회의원 조정훈이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외치며 법안을 발의했다. 월 100만 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 저출생 및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 완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배제는 차별이라는 비판에 막혀 법 제정이 무산되자, 서울시장 오세훈이 나서서 6개월 시범 사업으로 최저임금 적용 받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을 초청했다. 오세훈은 이들의 임금을 월 100만 원으로 후려칠 방안을 계속 찾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도 끼어 들었다. 가정 내 고용(개별 가구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최저임금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국민을 꼼수의 세계로 꼬드겼다. 삼겹살도 아니고 대파도 아니고, 노동자를 반값에 사고 싶다는 사악한 욕망이 어떻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걸까. 이주노동자를 차별하여 국익을 도모한다는 기괴한 인식을 가진 이들이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무참한 일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반값노동자가 전에 실제 있었다. 외국인연수생들 이야기다.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1994년 옹골찬 차별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했다가, 연수생들의 농성투쟁이라는 강력한 항의를 받고 뒤늦게 근로기준법 일부를 적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최저임금이다. 당시 연수생들의 절규에 온 나라가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연수생제도를 폐지시키고 도입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만 20년을 맞았다. 고용허가제 또한 만들어질 때부터 비판 받아 왔다. 노동자에게서 직장을 옮길 권리를 빼앗아 사실상 강제노동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려 두 차례나 헌법소원을 했지만 매번 결과는 '이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아야 고용주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국익이라는 논리다. 차별이 정당할 수도 있는가?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메롱한 국익을 내세우면 처절한 차별도 정당해 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2. 더 빨리, 더 많이
햇살이 문틈으로 비치면 재빠르게 일어나서
순응하듯 일터로 간다
가능하다면 기계보다 더 빨리 일을 하려 하고
차는커녕 물 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개미가 집을 지을 때도
참새가 둥지를 틀 때도
저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으리라
써꾼 아수, <외국에서 만난 동생> 중에서
업종을 막론하고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며 외국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기 위해 정부는 외국인 고용 허용 업종을 확대하고 고용허가제 신규 도입 규모를 2021년 5만 2천 명에서 2024년 16만 5천 명으로 대폭 늘렸다.
농업 부문도 마찬가지다. 농번기가 시작될 때마다 '더 빨리, 더 많이' 외국인을 데려오라 아우성이다. 농어업 분야에서 활용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은, 한국 지자체가 계약을 맺은 외국 지자체의 주민을 추천받아 초청하고, 법무부가 비자를 발급하는 형식이다.
한국 지자체가 노동자를 보내줄 외국 지자체와 연계가 있을 리 없으니 브로커가 끼어들었다. 브로커들은 외국 지자체와 깊게 연루되어, 한국 지자체와 계약을 주선하고 노동자 선발과 이동, 관리 권한을 행사하며 온갖 전횡을 일삼는다.
최장 8개월까지만 일하고 돌아가야 하는 계절노동자는 임금의 절반 정도를 브로커에게 갈취 당하기도 한다. 갈취를 피하고 더 나은 수입을 얻기 위해 계절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탈'밖에 없는데, 브로커는 또 '이탈'에 연대 책임을 지운다. 언니가 '이탈'하면 동생을 강제로 돌려보내는 식이다.
다른 문제도 싹트고 있다. 계절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 농민이 말했다. "왜 외국인돌보미만 반값이야? 농민들도 힘들어. 우리도 반값에 쓰게 해줘야지!"
지금 대한민국은 3. 이주노동자에게 몰아주는 임금체불과 죽음
그리고
'RIP'
명복을 빕니다
딜립 반떠와, <내일> 중에서
배터리 제조 회사 아리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많은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으로 위험한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를 몰아넣고 있음이 또 증명되었다. 이주노동자는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위험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50인 미만 사업장들에 주로 고용되어 있는데다, 언어를 핑계로 안전교육도 소홀하니 산재 앞에 총알받이로 내몰린 셈이다.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전체 산재 사망사고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연간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90명에서 102명으로 늘어났다. 죽도록 일하고 임금을 못 받은 이들도 많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이주노동자가 받지 못한 체불임금액이 1223억원이라고 밝혔다. 미등록체류 등 여러 이유로 행정기관에 진정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4. 외국인이 아닌 국민이 일할 수 있게 합시다
내 심장의 한 조각 같은 아들은
내 행복을 위해
낯선 나라에서 땀을 팔고 있단다!
서로즈 서르버하라, <아들의 주소> 중에서
'국민세금으로 짓는 건물은 외국인이 아닌 국민이 일할 수 있게 합시다'라고 적힌 민주노총 건설노조 명의의 현수막이 지난 6월 서울 거리에 내걸렸다.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를 요구하는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했을 뿐 혐오가 아니라 변명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혐오가 명백하다.
건설노조는 이전에도 미등록노동자 단속과 추방을 요구해서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은 내부에서 반복되는 이주노동자 혐오에 대하여 '이주노동자를 공동체 일원으로 존중하고 대안이 될 수 없는 혐오를 중단해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 되도록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위원장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5. 불법 자경단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산다
입조심 몸조심 행동조심
조심, 조심, 조심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서 또 조심
스스로 내 생각을 부정하고 묻어 두고
스스로 내가 가진 자유를 포기하고
이렇게 사는 나 정상인가
오늘도 또 묻는다
로넬 차크마 나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중에서
자국민보호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이 불법 자경단 조직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삼단봉과 가스총으로 위협하여 연행하고 돈을 갈취했다. 금반지도 빼앗았다. 경찰에 붙잡힌 일당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 단체의 대표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난민법 폐지, 한국인 임금의 절반만 지급하는 산업연수제 부활 등을 주장하며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겼다. 수상한 시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6.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라면 온 국민이 자본가 행세
오 노동자여 그 노동으로
인간의 새벽을 열었던 대지의 해방자여
자본의 세계에 와서 그대는
말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구나
그 도구가 자본가의 배를 채워주는 동안에만
그대의 목숨은 붙어 있게 되었구나.
김남주, <사료와 임금> 중에서
김남주 시인은 상상이나 했을까.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라면 온 국민이 자본가 행세를 하는 2024년 대한민국을. 시인이 살아 이 세상을 본다면 그 마르고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일갈할 테지.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사지를 쭉쭉 뻗으며 뒈져갈 놈!
김남주, <흡혈귀 같은 놈>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란주는 르포작가입니다.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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