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은 이제 26년 남았다

김용만 2024. 9. 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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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라면 온실가스 순 배출량 0되는 해... 헌법재판소 결정 대로 정부 구체적 준비해야

[김용만 기자]

2050년은 2015년 12월 12일 채택된 파리협정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로 한 최초의 해이다. 계획대로라면, 2050년 이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이 맞추어져 순 배출량이 제로가 된다.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지금의 속도를 감안하면 순 배출량이 마이너스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목표는 보수적으로 잡은 듯하다. 목표가 보수적이라 해서 그 달성이 쉽다는 건 아니다.

탄소포집 기술 혁신이 없다면 당분간 흡수보다는 배출 감소에 집중하는 게 맞겠다.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이 109위인데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1.5%를 차지하고 상위 10위권 이내다. 국토의 63%가 산림이지만 절대 면적이 작다보니 탄소 흡수량은 배출량과는 달리 하위권이다. 면적 대비 배출량이 많다는 건 산업 활동과 경제 발전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우리 국내총생산(GDP)과 배출량 순위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한강의 기적'이 자랑거리였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자기 발목 잡기?
▲ 헌재 심판정 나서는 한제아 청구인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한제아 학생이 헌법재판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기후소송에 대해 내린 결정은 반가운 일이다. 아시아 최초여서 더욱 그렇다.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2030년부터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온실가스 감축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으로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우리나라는 현재 2030년 이후 목표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 이제 정부는 소송의 쟁점이었던 온실가스 감축 목표부터 다시 세우고 명문화해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일각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탄소저감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법제화하는 건 '자기 발목 잡기'라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목표 수치를 선언만 하고 법제화하지 않고 있는 사례를 들고 있다. 배출량 상위 국가들인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등이 아직 움직이고 있지 않은데 빨리 움직이는 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발전의 특혜를 본 누적 배출량 상위 국가인 유럽과 미국이 구체적인 보상 책임안을 내놓고 있지 않음도 지적한다. 또한 대기업에 비해 여력이 없는 우리 중소기업의 부담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1년 동안 190여 건의 기후소송이 있었다. 대부분의 판결은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 대응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애초 파리협정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개별 국가의 자율에 맡긴 건 한계였고 잘못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개별 국가 단위에서 법적으로 다시 바로잡고 있다. 자율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흐름이고 되돌리지 못하는 추세다. 흐름을 주도하는 건 리더십이지 자기 발목 잡기가 아니다. 그래서 헌재 재판관들도 숙의 끝에 전원일치로 동의한 것이다.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도 언론 보도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대세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 중국조차도 탄소 저감 시책의 우선순위를 당 차원에서 높이고 있다. 최근 중국 대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피부로 느낀다고 한다. 파리협정에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매년 1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유럽은 과거의 유럽이 아니다. 유럽이 선진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일의 경제난과 영국과 프랑스의 빈곤율을 보면 유럽의 책임 보상을 기대하고 계획을 세우는 건 현명치 못한 일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7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907기후정의행진'에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강남역 일대에서 본집회를 진행한 후 테헤란로를 따라 삼성역까지 행진했다.
ⓒ 김종훈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결국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 가계에서 배출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다하겠지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필수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만 구조 변경을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새롭게 필요하다. 이는 단기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고 주저하게 된다. 그래도 대기업은 여력이 있고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 투자 여유가 크지 못한 중소기업은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집중해서 개입해야 할 곳이다.

2050년은 특별한 해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목표로 설정해 놓은 상징적인 숫자이다. 하지만 준비해서 쌓아 놓은 것이 없으면 저절로 실현되지 못한다. 양적 축적이 없으면 질적 변화는 없는 법이다. 설정해 놓은 매해 목표치를 하나씩 이루다 보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헌재가 요구한 계획을 세울 때 현실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계획을 추진할 때, 사회 사각지대에 발생할 수 있는 소외를 잊지 말아야 한다.

탄소중립에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에는 산업구조 개편이 뒤따른다. 그리고 산업구조 변화는 사회 내부 약한 고리에서 희생을 불러오기 쉽다. 당장 내년에 석탄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연쇄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간주해선 안 된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양보할 수 없는 사회적 의제다. 기술 혁신이 가급적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지금은 예측 범위 밖에 있는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서 2050년을 준비하자.

덧붙이는 글 | 김용만 기자는 기후 숲 생태 전문 미디어 '플래닛03'(https://www.planet03.com/) 편집인입니다. 이 기사는 '플래닛03'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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