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위안부' 현장 증거 없애려는 동두천시
[임성용 기자]
철거예산 확보로 철거가 임박한 성병관리소
9월 8일, 천막농성 15일째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에서는 동두천 시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차리고 시의회의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된 성병관리소 철거비용 통과를 막아내고자 했지만 끝내 막지 못했다. 9월 6일 오전에 동두천시 의회는 의원 7인 전원 찬성으로 철거예산을 의결하였다. 예산을 확보한 동두천시는 즉각 철거준비를 하고 공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시청 관계자는 철거시기를 10월 예정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거짓으로 흘리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 관급공사가 두어 달가량 걸리는데 반해 성병관리소는 철거계획을 이미 다 잡아놓았고 이젠 예산까지 마련되었으므로 거리낄 게 없다는 자세다. 설계-입찰공고-유예기간 일주일을 감안한다 해도 빠르면 9월 말 이전에 철거공사를 할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성병관리소 앞 집회신고를 하려고 보니, 동두천시는 동두천경찰서 경비과에 아래와 같은 협조 요청을 미리 해두었다.
- 옛 성병관리소 공사차 진입을 위한 진·출입로 제외 및 집회참가자 차로 인해 소요산 주차장 구역 내 차(공사 차 포함) 통행과 진입을 막는 등의 위반행위를 할 수 없음을 고지
- 준비물로 신고한 천막, 텐트 등을 설치할 경우 불법점유 시설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관련법 위반에 따라 처벌될 수 있음
- 옛 성병관리소 시설물 기능침해(월담, 손괴 등) 하지 않도록 안내
▲ 동두천 시청 앞 천막농성 15일째 |
ⓒ 경기북부평화행동 |
8월 27일부터 시작된 동두천 시의회 추경예산 회기를 앞두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전국 63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돋보였다. 아울러 KBS, JTBC, MBC 등 방송에서 현장 취재를 나왔고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중앙언론사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다녀갔고 관련 기사들이 이어졌다.
방송과 언론의 보도 관점은 단순히 동두천시와 시민단체 간의 갈등 문제에만 있지 않았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의 현장, 그 아픈 역사를 담은 성병관리소 철거냐 VS 보존이냐'를 국민들에게 묻고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동두천 시장이나 시의회 의장은 언론 취재나 인터뷰에 일정 응하지 않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해 중앙언론까지 첨예한 사회 이슈로 보도하고 있는 마당에, 행정 최고 책임자인 시장은 물론 시민들과 가장 먼저 소통해야 할 시의회 의장 및 의원들이 보인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대한민국 지자체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와 의회가 한편이 되어 움직일 바엔 지방자치제의 근간이 되는 의회의 존재가 필요할까 하는 심각한 의문마저 들게 했다.
공대위는 추가경정예산 심의 전에 시의회와 간담회를 갖고자 했고 약속이 잡혔다. 그러나 시의회 의장이 돌연 간담회를 거부하고 대화를 회피했다. 간담회 개최를 요구하는 공대위 대표단과의 면담 자리에서 김승호 의장은 "성병관리소는 가치 있게 보존할 것이 하나도 없고 지자체에 도움이 안 된다" "미국이 도와줘서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하면서, 성병관리소를 근현대역사유산으로 보존하자는 공대위의 요구에 불만을 드러냈다. "기지촌 여성들은 집창촌 여성들과 다를 것 없다"는 발언도 서슴없이 했다(관련기사: 성병관리소 없애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https://omn.kr/29z1c)
▲ 주민여론조사 결과 자료 작년 9월~10월 성병관리소 존치 및 철거에 대한 주민여론조사 결과 자료 |
ⓒ 동두천시 |
존치 시 활용 설문에서는 현재 성병관리소 위치에 리모델링 후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답변이 63.1%로 압도적이고, 원형 그대로 수리 및 보존하자는 답변도 34.3%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설문조사 결과는 기성세대를 제외한 젊은 세대는 철거를 반대하고 보존하자는 입장인 것이다. 때문에 동두천시와 시의회 의장이 말하는 '시민들 대다수 철거 찬성'은 여론을 곡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두천시와 시의회 의장에게 '시민'이란 누구일까? '그들의 시민'이 따로 있는 듯 하다. 이름하여 '동두천지역발전범시민대책위원회'가 그들의 시민으로 행동하고 있다. '범대위' 안에는 동두천 지역 내 행세깨나 하는 모든 단체들이 수백 개 결합되어 있다. 이들은 성병관리소를 철거해야만 동두천 지역경제가 살고 소요산관광지 개발이 가능하고 이에 따른 상권 회복과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역경제 개발의 걸림돌이 왜 하필 '성병관리소'일까?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성병관리소' 때문인가? 현재 성병관리소는 소요산 입구 주차장 숲 속에 숨어 있다. 밖에선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곳에 성병관리소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성병관리소가 개발을 가로막고 지역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범대위에 속한 단체들, 예컨대 자유총연맹, 상가번영회, 예총, 여성단체연합회 등은 단지 "성병관리소 저거 보기 싫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시설이니 부끄럽다, 빨리 없애고 그곳에 상가를 짓고 호텔 같은 숙박시설을 짓는 게 낫다, 그래야 장사도 잘 되고 관광객들이 많이 올 것이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성병관리소를 없앤다고 해서 이들이 원하는 대로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까? 정말 그건 근시안적 생각이다. 어쩌면 현실 파악을 이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지 개탄스럽다. '개발'하면 금방이라도 무슨 이득이 생길 듯이 기를 쓰고 오로지 성병관리소를 철거하자는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역발전' 외엔 아무런 고민도 없다. 고민이 없기에 실제로 '지역발전을 위한 대화'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미끼를 물고 죽어도 놓지 않는 물고기와 같다. 그들에게 인생은 욕망일뿐 의미가 아닌 것이다.
범대위 단체들이야 그렇다치고, 동두천시는 아름답고 예쁜 소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되었다. 소요산에 그 어떤 시설을 꾸미고 관광단지를 조성한다 해도 자연 환경만 파괴할 뿐 관광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모노레일을 놓는다고도 하는데, 사람들이 설악산으로 가지 그다지 높지도 않은 소요산으로 케이블카 타러 올 리가 없다. 반려견 공원도 만든다는데 강아지 데리고 누가 얼마나 오겠는가. 천문대도 만든다는데 가볼 만한 천문대는 많다. 그런 시설들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지역 상권을 살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입될 만한 게 못 된다.
성병관리소 부지에 상가를 짓는다고도 하는데, 상가 개발 역시 오래 가지 못한다. 이미 소요산 입구에 '축산물브랜드타운'을 건립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망하고 말았다. 문 닫은 축산타운을 보면 어떻게 여기에 쇠고기 파는 고깃집 지을 생각을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소요산 등산객들은 나이 든 노년층이 건강 삼아서, 산책 삼아서, 전철 타고 오가는 곳이다. 그런데 축산물타운을 지으면 사람들이 고기 먹겠다고 소요산을 찾아올 것이라는 엉뚱한 짓을 했다.
개발예산확보, 마스터플랜도 없이 '지역발전범대위'와 결합한 동두천시
가장 큰 문제는 소요산관광지 확대개발사업의 예산확보 방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발계획에 따르면 3700억의 예산이 잡혀 있는데, 소요산개발이 무슨 국가사업도 아니고 인구 8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동두천시가 무슨 수로 수천억 대의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소요산개발사업'은 동두천시가, 정확히 말하자면 동두천 시장이 동두천 주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아무런 예산도 없이 개발을 하겠다고? 개발에 대한 마스터 플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꾸 주민들을 부추기고 지역발전 운운하면서 성병관리소 철거가 마치 소요산 개발의 시작인 것처럼 말한다. 성병관리소 철거가 동두천 지역 경제살리기 사업의 생사가 달린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이다. 그래서 보존과 활용 방안엔 귀를 틀어막는다. 공론화 과정이나 시민들과의 민주적 숙의절차도 무시한다. 요지부동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무조건 철거를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것은 지자체 단체장의 정치적 선택이다. 동두천 초임 시장(박형덕)은 재선을 하기 위해서라면 뭔가 개발 호재를 제시해야만 하고 그 기반이 바로 '소요산확대개발사업'이다. 창의적인 발상이 없는 시장으로서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동두천 시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다.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도 지역 발전을 위한 개발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병관리소를 보존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공익적으로 훨씬 더 크다는 것이고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이 삽질보다는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자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소요산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이 아니다. 전철이 닿는다고 해도 서울에서 족히 2시간이 걸려서 접근성이 그리 좋지도 않다. 설령 롯데월드가 들어선다 한들 사람들이 서울로 가지 굳이 소요산까지 오진 않는다.
일례를 하나 들겠다. 구파발에서 송추 가는 길목에 북한산성 입구가 있다. 그곳은 예전에 북한동 마을 전집, 막걸리집 같은 가게들이 내려와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스타벅스 북한산점'이 생기자 분위기가 일거에 변했다.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주말이면 차들이 수백 대 진을 칠 지경에 이르렀다. 떠들썩하게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개발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된다. 특히 젊은층에겐 더욱 그렇다.
만약 소요산에 '스타필드'가 들어선다고 해보자. 노인층 등산객 중심인 소요산은 젊은이들 세대의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동두천엔 해마다 락 페스티발이 열린다. 자연스레 이를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동두천시 노인 인구 비율이 2할이 넘는다고 하는데, 전국에 널린 관광지를 지역 특화된 사업이나 문화적 전략도 없이 위락단지, 상업시설 위주로 개발해 봤자 사람들은 외면한다. 특히 젊은층을 모으지 않으면 활기 있고 생동하는 미래지향적 도시가 될 수 없다.
동두천은 '동두천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기지촌, 미군, 위안부 등으로 점철된 동두천의 지나온 역사를 스스로 버리고 흔적을 지운다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동두천을 숨기고 동두천의 이름을 지우려 하고, 자꾸만 부끄러운 이름으로 치부한 '동두천'을 떳떳이 돌려놓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것이 곧 미래세대인 동두천의 청년들에게 기성세대가 남겨줘야 할 몫이다.
아니 성병관리소 존재를 모르는 이 땅의 모든 청년세대에게 알려줘야 할 책임이다. 그러면 청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가 감춘 상처를 씻어내고, 상처를 보듬고, 상처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지금 동두천에선 개발이니 경제발전이니 목청만 높이는 '지역발전범대위'가 동두천 시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사람들은 동두천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성병관리소 보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동두천, 그 이름을 부르고 싶어한다. 동두천은 내 이름이고 우리 국민의 이름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분단된 역사의 이름이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기 때문이다.
"동두천, 내 이름을 불러줘" 간절한 이 말은 <2018년 경기북부 마을아카이브 프로젝트 : 동두천-평화를 향한 역사> 결과물로 발간한 책자의 제목이다. 이 자료집을 보면 동두천 기지촌의 형성 과정과 미군들의 모습, 기지촌 여성들의 생활상, 성병관리소의 실상들이 다양하게 채록되어 있고 인물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책자에서 동두천의 이름은 그저 동두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0년 전에 있었던 기지촌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문제가 집약된 동두천을 낱낱이 펼쳐 보인다.
문득,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을 두고 미국이나 유럽 같으면 이와 같은 문제에 시민들이 결코 손을 놓고 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양한 시민여론이 형성되고 그 여론을 바탕으로 한 정치민주화를 도모하는 서구의 정부는 성병관리소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 단지 지역갈등 문제로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과 의원들이 가장 먼저 달려오고 보존에 발 벗고 나섰을 것이다.
▲ 동두천 시의회 항의집회 9월 6일, 동두천 시의회 추경예산 의결을 앞두고 열린 항의 집회 |
ⓒ 경기북부평화행동 |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어느 젊은 여성 분이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동두천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성병관리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크고 나서야 제 고향에 이리도 아픈 역사가 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미군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그로 인해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병관리소가 기필코 보존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024. 9. 2
9월 3일, 경기도 의회에서는 유호준 도의원이 김동연 도지사에게 도정질의를 진행했다. 유 의원은 2020년 성병관리소 보존이 필요하다는 경기도 의회 조례 제정 이후, 경기도는 왜 보존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현재 철거를 앞둔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에 대한 도지사의 의견을 물었다.
김동연 지사는 이에 대해 "(동두천)시의 입장이 굉장히 강경하다. 저희가 주도적으로 이걸 하기엔 조금 제한적이다"고 답했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지켜본 공대위는 크게 실망했다. 도지사로서 중재가 어렵다는 것이고 사실상 경기도에선 철거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김동연 지사의 답변대로라면 기초단체가 강경하면 광역단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인가? 도지사의 뜻을 확인한 경기도 의회는 유 의원을 중심으로 '조례 개정'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경기도 의회 도정질의가 있던 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지의 50여 해외동포 단체들의 연대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동두천시는 옛 성병관리소 철거 계획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우리 해외동포들은 한국의 동두천시가 소요산 입구에 위치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에 유감을 표하며 중단을 촉구합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주한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애국자' 혹은 '민간외교관'이라 추켜세우며 성매매를 독려했습니다. '성병으로 인해 미군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주한미군의 관리 요청'에 당시 한국 정부는 그 대책으로 '깨끗한 몸'을 미군에 제공하기 위해 성병관리소를 설치, 운영해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상대로 주 2회 성병검사를 실시했고, 낙검 여성들을 이곳에 강제로 무기한 가둬 놓고 페니실린을 과다 투여했습니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여성들이 페니실린 쇼크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국가폭력 범죄입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반인권 범죄였습니다. 이미 2014년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제기한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022년 대법원은 기지촌 성병관리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고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한과 눈물이 담겨있는 성병관리소는 '공대위'가 제시한대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역사와 문화 예술이 깃든 평화와 인권의 기억공간으로 활용되어야"마땅합니다. 아울러 미군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배·보상 및 지원, 인권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024년 9월 3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 PTN)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역사 현장으로 보존해 주십시오
"국가가 포주였다"
"국가는 우리를 개 취급했다"
"페니실린 606호 주사를 맞고 쇼크사하는 것을 보았다."
"미군 군의관이 성병관리소에서 페니실린 606 주사를 놓았다."
우리는 미군 기지촌에서 수십 년간 미군 '위안부'였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신매매를 당해 기지촌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기도 하고, 포주에 의해 10대의 나이를 속이고 성년 여성으로 가짜 주민등록증과 가호적으로 성매매 현장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팀 스피릿'이 있던 해에는 포주가 주선하여 담요를 들고 미군 참호를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미군'위안부' 생존자 122명은 2014년 6월 25일, 해방 이후 현재까지 거의 80년간 주한미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미군 '위안부' 제도의 국가 책임을 규명하고자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소송을 통해 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고, 국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였습니다. 8년 3개월을 끌었던 소송 중 병마에 시달려 11명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남은 우리들이 반드시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물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22년 9월 29일에 우리 122명의 기지촌 미군 '위안부' 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가의 성매매 중간매개 및 방조,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부분에 대해서 국가책임을 인정하며, 국가가 기지촌을 운영·관리한 것 자체의 위법성을 인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은 소위 '안보'를 위해 우리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미군의 '위안부'로 전락시켰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민간 외교관,' '애국자'라고 치켜세우고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달러를 벌어들여 우리가 이만큼 부강해졌으니 앞으로 여러분들을 보호해 주겠다"라던 대통령의 약속도, 미군이 철수하면 땅 일부를 우리에게 분배해 주겠다는 미군의 약속도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미군 폭행 발생 시 경찰과 미 헌병에 신고하면 우리는 오히려 피의자 취급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한국 경찰과 보건소, 시청, 미 헌병이 합작하여 소위 '토벌'을 나와 정당한 절차도 없이 불시에 검진증 검사를 하면서 검진증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몽키하우스'로 불리던 동두천 성병관리소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특정 미군과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증거도 없이 그 미군이 지목만 하면(소위 '손가락 총') 무조건 '몽키하우스'로 끌려 들어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국가폭력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낙검자 수용소로 불리는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반인권적· 폭력적인 실태는 국가배상소송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특히 지자체 중 한국전쟁 발발 이후 가장 많은 미군 기지촌을 보유한 경기도의 경우, 총 6개 지역에 낙검자 수용소를 운영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낙검자수용소)는 과거 미군 '위안부' 불법 강제 감금, 페니실린 과다투약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감금되면 미군이 제공한 페니실린 606호를 과도하게 맞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팔다리를 부르르 떨며 쇼크사하는 동료를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1주일 후 재검진해서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데, 검진 결과가 안 좋으면 다시 한정 없이 감금되어 페니실린 606호를 맞아야 했습니다. 당시 담당 의사도 "치사량이 될 수도 있었는데 피검진 여성들에게 일반 투약의 10배 이상을 투약하도록 위에서 지시했다"라는 증언을 법정에서 한 바 있습니다.
2023년 2월, 동두천시는 구 성병관리소와 그 대지를 소유주(신흥재단)로부터 매입하여, 시가 현재 추진 중인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과 연계해 해당 부지를 개발하기로 하고,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 발전방안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통해 활용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해당 건물을 철거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성병관리소로서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낙검자 수용소입니다. 아직도 우리 생존 피해자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인권 침해와 폭력을 겪었던, 아프지만 반드시 보존해야 할 엄연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후대가 기억해야 할 공간으로 남겨져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공식 사과를 원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가 우리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게 가했던 젠더 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한 기억·기림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보존은커녕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건물을 철거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미래의 세대에게 인권과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상 피해자 호소문
피해 당사자들의 호소문을 보고 동두천시장과 시의회 의장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성병관리소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증거물'이다. 피해는커녕 피해 여성들로 인해 돈을 벌고 경제 활동을 하고 미군의 달러가 뿌려지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면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피해 여성들을 외면하고 끊임없이 비하하고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어쩌면 인간으로서 눈곱만치의 동정이나 연민도 없는 그들의 눈빛이 섬찟하기까지 하다.
인간에겐 최소한의 인지상정이란 게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이다. 하물며 동물에게도 수오지심이란 게 있다. 당신들은 기지촌과 그곳에 갇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여성들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가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워해야 한다. 누구보다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성병관리소를 보존하자고 하는 시민단체와 시민들을 미워해선 안 된다.
각계 선언 이후 하주희 변호사의 UN 진정서 발표가 있었다. 진정서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 정부와 미군이 기지촌 운영을 통해 조장하고 권유한 성매매는 그 본질이 '성노예제'에 해당하고, 국제법이 금지하는 '인신매매'에 해당합니다. 성노예제는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고문방지협약)이 금지하는 고문 및 학대행위(Torture and ill-treatment)이자,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여성차별철폐협약)이 금지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으로 국제인권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합니다.
...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 유린을 보여주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철거하는 것은 피해자의 관점을 반영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 과정에 피해자의 참여, 시민사회 참여도 배제되어있다는 점에서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철거하는 것은 문화적 권리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지적한 것처럼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의 '서사'를 지우는 반인권적 조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유엔 특별진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 등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1)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계획이 유엔 국제인권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점에 대한 특별보고관들의 우려 표명 및 개입해줄 것
2) 정부에 피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기억과 추모의 장소로서 보존할 것을 권고해줄 것
3) 이와 더불어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규모·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진상규명,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성 회복을 위한 공식적 사과,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경제적·심리적 의료적 지원 등의 현황을 조사하고, 필요한 권고를 내줄 것
위의 요청을 담은 진정서는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대위'를 진정인으로 하여 9월 6일,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통해 유엔인권위에 제출되었다.
▲ 각계선언과 UN 진정서 발표 5일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 각계선언과 UN 진정서 발표 현장 |
ⓒ 경기북부평화행동 |
"왜 남의 동네 와서 그래?"
철거에 목숨 건 그들이 내뱉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항의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체 대표자 한두 명을 빼놓고는 모두 동두천에 거주하고 있고 혹은 양주나 의정부에서 온 시민들이었다. 양주, 의정부, 동두천은 동두천이 시로 승격되기 전엔 모두 양주군 소속이었고 경기북부 생활권도 같은 동네이다.
그럼에도 '범대위' 어르신들은 보존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건 동두천 사람이 아닌 외부인들 와서 저러는 것'이라고, 이간질을 하고 편가르기 하는데 혈안이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나라의 국민이 아니고 어디 다른 나라에서 왔는가?
동두천시의 철거 집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 공사업체와 싸우고 경비경찰과 싸우고 시청과 싸우고 철거 찬성 '범대위'측 시민들과도 싸워야할 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들어오고 철거업체에서 동원한 인력들이 들어오고 막무가내 밀어붙일 상황이 그려진다.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믿는다. 왜냐하면 저 슬프고도 황폐한 건물 하나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국민에게 호소한다. "동두천, 그 이름을 불러달라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국민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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