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고 있는 밑바닥 현장... 그래서 '작은 사업장 노조' 만들었죠"
[손가영]
인터뷰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통화를 하려고 방을 나간 이보은씨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창문 넘어 보이는 표정은 심란했다. 다시 돌아온 이씨는 한 네팔 이주민의 산재사고를 전했다. 돼지농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였다.
"사료 배합기 벨트가 고장 나서 차단기 내리고 벨트를 손 보고 있는데, 다른 동료가 이걸 모르고 기계를 돌려서 손가락이 잘린 거예요. 손가락은 찾지도 못 했어요. 근데 농장주가 산재 신청을 안 해줬어요. 오늘 병원에 간 날이라 저한테 전화가 온 건데, '병원에 왔어요' 이 말도 어디 숨어 있듯이, 숨 죽여서 말해요." (이보은)
▲ 7월 31일 양산노동민원상담소에서 <일터>와 만난 이은아 ‘양산 작은 사업장 노조’ 공동위원장(왼쪽), 이효나 공동위원장(가운데), 이보은 사무국장. |
ⓒ 손가영 |
"더는 미룰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지역에서 이런 노조를 만들지 않으면서 내가 노동상담을 한다고, 노동인권활동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건은 계속 해결하는데 바뀌는 건 없는 무력감"
양산 작은 사업장 노조는 지난 7월 12일 출범했다. 현재 조합원으로 있는 10여 명의 양산 주민이 먼저 의기투합했다. 모두 양산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 관련 활동가로 오래 일해 온 이들이다. 2022년 8월 시작된 '양산 작은 사업장 권리 찾기 모임'이 계기였다. 작은 사업장은 임직원이 50인 미만인 사업장을 이른다. 직원이 1~4명뿐인 영세기업도 포함한다. 이 작은 사업장은 대표적인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 사각지대다.
양산 소재 업체의 99.1%가 작은 사업장이다. 직원 수가 1~4명인 영세기업만 87%에 달한다. 직원 수 5~49명인 업체는 12.1%를 차지한다. 이렇듯 주민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에 고용돼있으나, 이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노조를 찾기란 요원했다. 권리찾기 모임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를 고민하던 이들이 '더는 지켜볼 수만은 없다. 무엇이든 해보자'며 모이면서 시작됐다.
"상담은 많고, 대응한 사건도 많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어요. 결국 당사자들이 나서고 조직이 돼야 하는데, 5인 미만, 10인 미만 이런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기존 노조에 가입하기도 어려워요. 상급단체 노조도 상근자가 1~2명밖에 없고 이미 격무에 허덕이는 데다 작은 사업장은 교섭이 특히 더 어려우니까요.
양산엔 이주민이 정말 많아요. 미등록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비율도 매우 높아요. 동포노동자도 많고요. 이들이 전부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 현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는 동안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은 계속 후퇴했고, 이제는 정말 무너지는 정도까지 왔어요. '사회 곳곳에 저지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당사자가 연결되어야겠다, 그 연결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고민의 끝이 노조였어요." (이은아)
이들이 양산을 설명하는 말 중에서 두 가지 단어가 유난히 반복됐다. '하청'과 '이주민'이다. 양산은 울산에 인접해 있다. 아래로는 창원과도 가깝다. 활동가들은 양산 시가지를 둘러싼 12여 개 산업단지의 상당 부분이 자동차·조선·화학 등의 대공장의 하청업체라고 했다. 이은아 공동위원장은 "1·2차 하청이 아니라 '하청의, 하청의, 하청업체'인 곳이 많다"며 "이 현장들은 매번 더 기발한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열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12일 양산 작은 사업장 지역연대 노조 창립 총회 풍경. |
ⓒ 양산 작은 사업장 지역연대 노조 |
동시에 이주민들의 노동환경은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무너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일수록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효나 공동위원장이 최근 상담한 방글라데시 이주민의 얘기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분이에요. 조선소 배에 들어가는 주유통을 만드는 업체였어요. 기본적인 안전화도 없이 일했어요. 그러다 2m 높이의 모형을 옮기는 공정을 하던 날, 혼자 맨몸으로 모형에 올라가서 지게차에 연결하는 고리를 채우고 내려오는데 미끄러져서 무릎을 크게 다쳤어요. 근데 회사가 바로 병원에 보내질 않았어요. 그냥 사무실에 데려가서 연고, 파스만 발라줬대요. 며칠 동안 아프다고 하니 근처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뼈에 이상이 없다며 진통제만 처방 받고 끝났대요. 그러다 올해 초 수술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산재 인정이 돼 지금 요양 중인데, 최근 사장이 '퇴직금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첨부해 자필 서명을 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이효나)
이효나 위원장은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고 했다. 이주민들의 환경은 근로기준법이 없는 무법지대와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정주민의 공백을 이주민들이 채운다. 특히 야간전담을 많이 하는데, 한 달에 2번만 쉬고 야간수당, 주휴수당, 연차, 퇴직금도 없는 경우가 예사"라며 "돌연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늘고 있는 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2년 전에 한 미등록 베트남 이주민이 과로사했어요. 야간에만 일했고 한 달에 이틀만 쉬었대요. 직장 동료도 거의 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였어요. 처음에 사망자 부인이 '시신을 베트남으로 보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이랬어요. 과로 산재로 남편을 잃었는데… 동료들은 슬퍼하면서도 벌벌 떨었어요. 이분이 산재 신청을 하면 다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출입국에 잡힐까 봐… 제대로 추모도 못 하고, 부당하다는 얘기도 못 하는 거예요. 이때 한계를 느꼈어요. 당사자들이 나서야 하는데 나설 수가 없어요. 며칠을 설득해서 산재 신청은 했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 (이효나)
이보은 사무국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지역 상인협회나 택시협회에서 '단속 좀 하지 말라'며 법무부에 항의할 정도"라며 "갖은 폭력과 죽음, 인권침해의 문제가 심각한데, 단속, 추방의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이들을 합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산에서 희망을 만들자"
이 사무국장은 "우리가 이주민 상담을 주로 해서 자연스레 이주노동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 하는 작은 사업장의 문제는 이주민이든, 정주민이든, 제조업이든, 사회복지든, 서비스업이든, 누구에게든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주민의 권리가 사라진 곳에서 정주민의 권리가 퍽이나 지켜질까요?"라며 바로 이 점이 작은 사업장 노조를 만든 이유라고 말했다.
당장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꾸준히 노조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중심으로 당사자들이 서로의 상황을 나누고 대안을 찾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게 현재의 목표다. 이효나 위원장은 "이런 노조가 양산에서 시작 될 수 있는 걸 보여주면서 양산의 모든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아 위원장은 "여기 양산도, 한국 사회 전반도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 속에서 인간성이 사라지고 사람들 간 불신과 자기 이익 추구만이 가득해지는 흐름에 놓여 있다"며 "지역 연대 노조를 통해서 이 흐름을 조금이라도 반전하려 한다. 그 기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손가영 님은 한노보연 선전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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