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이 꿈인 독일 젊은이들이 많아요"
[조계환 기자]
▲ 미술사를 공부하는 레오니는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농장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깻잎을 수확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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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절정이던 8월 중순, 24살 독일 청년 레오니가 백화골에 팜스테이를 하러 찾아왔다. 독일 북부의 마센이라는 마을에 살고, 인근 함부르크의 대학에서 유럽미술사를 전공했다. 지난 3월에 한국에 온 뒤 학원에서 한국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한국 음식을 좋아해, 음식의 바탕이 되는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국 유기농 농장에 찾아왔다.
레오니가 농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고, 밤에도 여전히 온도가 내려가지 않아 힘들었다. 이런 폭염에 레오니는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농장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우리도 다시 힘을 내서 레오니와 함께 가을 배추와 무, 양배추, 브로콜리 등을 심었다. 이제 9월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에 인기 많은 한국
우리 농장에서 하는 팜스테이는 노동과 숙식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하루 5시간, 주 5일을 일하면 숙박을 제공받는다. 1968년 5월 혁명의 여파로 환경문제가 대두되며 유럽에서 유기농장이 조금씩 늘어갔다. 풀 매기 등 많은 노동이 필요한 유럽 유기농가들이 모여 이런 봉사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은 새로운 여행법으로 변형되어 게스트하우스, 미술관, 언어교환 업체 등에서 활발하게 활용한다. 관광지에서 사진찍고 끝나는 여행이 아닌, 현지인과 함께 머물며 제대로 문화를 느껴보는 여행법이다.
▲ 폭염이 계속되었지만 레오니와 함께 가을 작물을 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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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뒤늦은 독일의 한류 열기를 팜스테이 신청 메시지를 보면서 느꼈다. 2021년부터 독일 젊은이들이 보내는 메시지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19살 친구들부터 20대 후반까지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한국어를 조금씩이라도 했고,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에 통달해 있었다.
이전에는 독일인이라고 하면 장난삼아 '노잼'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여러 독일인들과 지내다보니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마다 다 달랐다. 대체로 열심히 일하고, 떠난 후에도 계속 연락하거나 독일 집으로 초대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번은 독일 유기농 채소 씨앗을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다. 독일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영어로 소통하는 게 쉽다는 점이다.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데다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명확하게 발음해주기 때문에 듣기에 편하다.
▲ 자급자족용으로 키운 작은 수박을 수확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는 프랑스 친구 피에로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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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 다음 단계는 한국어 배우기이다. 레오니도 지금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농사일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혼자 한국어를 공부한다.
재미있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너무 욕설이 많이 나와서 한국 사람 입장에서 좀 민망하기도 하다. 10분 드라마를 보고 문장을 공부한 다음에 다시 본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레오니가 한국 욕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도 된다. 다음에는 착한 말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언해주었다.
▲ 한국 여행 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제주.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 |
ⓒ 레오니 |
독일에는 일단 의사가 부족하다고 했다. 무상의료이긴 하지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병원은 응급상황에서만 예약이 쉽다고 했다. 한국처럼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가는 일도, 빠르게 약을 처방받는 일도 어렵다고.
▲ 레오니는 농장에서 갓 수확한 채소들로 요리한 한국 음식들을 정말로 좋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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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쟁이 치열하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회라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그만큼 단시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레오니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한국 병원에 다녀온 다음에 쉽게 의사를 만나고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듣고 한국 의료시스템이 좋은 걸 알았다고 했다.
다시 한국에 오면
"서울에서 많은 박물관과 갤러리에 방문했어요. 그중에서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전시회를 보았는데, 한국인들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발돋움한 현대사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북한산 정상에 올라 도시 경관을 바라보는데, 어떻게 한국이 변화되어 왔는지 상상할 수 있더라구요."
▲ 망원시장에서 각양각색의 한국 음식들을 실컷 맛보았다. |
ⓒ 레오니 |
10대 때 한창 좋아하던 케이팝은 요즘 덜 듣지만, 대신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 매료되어 있다. 특히 한국의 뷰티산업과 패션에 관심이 많다.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를 재미있게 보았어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인 서예지를 좋아하는데, 극 중 서예지 패션에 완전히 반했어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서예지처럼 옷을 입고 싶어요."
▲ 농사 일 마치고 경주 금장대에 가서 야경을 구경했다. |
ⓒ 조계환 |
한국이 여전히 정치나 사회 곳곳에 문제도 많지만, 세계인들이 매료되는 재미있는 콘텐츠와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독일 친구들이 새삼스레 알려줘서 고마웠다. 최근 의료분쟁 때문에 문제가 좀 있지만 그래도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유럽과 달리 밤 늦게 거리를 걸어도 안전하다는 점 등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레오니가 남은 한국 여행 기간 동안 더 한국의 매력을 발견하고 평안하게 여행하기를 기원한다. 내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맛있는 우리 농장 채소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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