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권에서 흔들리는 시장주의 '역설' [부광우의 싫존주의]

부광우 2024. 9.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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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게 개입하겠다."

이 원장은 은행권을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시장 관여 의지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은행들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바빴다.

가뜩이나 대출 이자가 불어나 등골이 휘는 마당에 은행들이 금리를 더 올리고, 그게 정책적 요구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서사는 여론의 질타로 이어질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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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급증에 금감원 '으름장'
억지로 대출 문턱 높이는 은행들
"돈 못 구할라" 불안해진 소비자
자유경제 강조하던 정부 '공염불'
가계부채 증가 이미지. ⓒ연합뉴스

"더 세게 개입하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으름장에 은행들이 분주해졌다. 이 원장은 은행권을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시장 관여 의지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은행들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바빴다. 수도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는 기한을 축소하고, 집을 담보로 한 생활 안정 자금 한도도 제한했다.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도 되는 거치 기간을 없애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낮췄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원장의 발언은 즉효를 거둔 셈이다. 자신에 대한 감독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 수장의 엄포에 은행들로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설득보다 회초리가 매력적인 이유다.

은행도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가계부채에 제동을 걸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대출 금리를 올려 대응했다. 가격을 올려 수요가 줄이겠다는 지극히 시장주의적 판단이었다.

정부의 시선에서 이런 모습은 달갑지 않았을 거다. 가뜩이나 대출 이자가 불어나 등골이 휘는 마당에 은행들이 금리를 더 올리고, 그게 정책적 요구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서사는 여론의 질타로 이어질 게 뻔했다. 금융당국이 나서 금리를 찍어 누를 명분은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순리를 거스르면 모순이 생긴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물건을 덜 팔기로 하니 소비자들은 뿔이 나거나 두려웠다. 누군가는 내 집 마련을 미뤄야 한다는 상실감에, 누군가는 당장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걱정에 빠졌다.

금융당국이 소비자의 편에 서고도 정의의 사도가 되지 못한 건 어쩌면 자승자박이다. 스스로 작금의 사태를 부채질한 면이 없지 않아서다.

가계부채가 심상치 않다는 신호가 감지되던 올해 초에도 각종 특례 정책으로 대출의 물꼬를 터준 건 다름 아닌 정부였다. 여기에 더해 지난 7월부터 가동하기로 한 대출 규제를 돌연 9월로 미루면서, 빨리 돈을 빌려놔야 한다는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정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늘 완벽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날이 갈수록 실망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단지 금감원장의 이번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라, 기대와 너무도 다른 정부의 행보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당초 금융권은 보수 정권으로의 교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이전 정부보다는 시장주의에 입각해 자신들을 바라보지 않겠냐는 막연한 희망이 맴돌았다. 그러나 실상은 더 노골적인 간섭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등장 당시부터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해 왔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출범 2년차 국무회의에서도 반시장적 경제 정책을 민간 주도 경제로 전환했다고 역설했다. 현실만 놓고 보면 이는 자화자찬이다. 한 번의 실수는 그저 병가지상사일 수 있다. 하지만 무너진 철학은 이번 정부 이후까지 두고두고 보수 정권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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