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금융사고, 바보야! 문제는 오해 때문이야 [칼럼]
최근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우리은행 616억원 부당대출, 농협은행 직원 117억원 횡령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의 취약성과 리스크관리의 부실 문제가 금융권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다. 더욱이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내부통제 책무구조도’ 도입·시행을 앞둔 시점에 내부통제에 대한 총괄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 최고 경영진 본인과 관련된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해 그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계속해서 발생하는 횡령 등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내부통제 강화 수단으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많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 대책이 애매모호하거나 형식적이어서 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근본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어 필자 나름대로 원인분석과 대책을 몇 가지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내부통제를 오해(또는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내부통제를 자기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 특히 전문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내부통제는 각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존재하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설계된 모든 규정이나 제도, 시스템 등 일체의 프로세스이다. 즉 각종 규정, 위임전결, 결재 라인 등 업무 수행 과정에서 해야 할 행위나 프로세스 자체가 내부통제인데 이런 것들이 내부통제인 줄 모르는 것이 첫 번째 오해이다. 이러다 보니 내부통제를 본인의 일이 아닌 특별한 능력을 갖춘 다른 사람들만이 하는 일로 보고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 두 번째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내부통제의 개념에 대한 교육과 내부통제에서 요구하는 각각의 R&R(Role and Responsibilities) 및 업무분장에 대해 분명히 인식시키고, 이를 이행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둘째, 내부통제의 한계(속성 또는 단점)도 잘 알아야 한다. 내부통제는 한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걸러내는데 효과적이나 여러 사람이 공모하면 걸러지지 않는 본연의 한계를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여러 명, 특히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공모하면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를 조기에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예를 들어 실무자가 부정대출을 기안을 했을 경우 결재라인에 있는 팀장, 지점장, 본부장이 실무자가 한 행위를 점검하고 걸러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으나 이들이 공모하면 내부통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1차 방어선인 현업부서(또는 지점)가 무너지더라도 2차 방어선에 해당하는 지역본부 또는 본점의 대출 관리부서나 컴플라이언스 부서에서 걸러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셋째, 취약한 거버넌스(과도한 권한집중)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자물쇠라도 만능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내부통제 장치를 모두 뛰어넘는 권한이 있는 경우 내부통제는 무력화된다. 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수백 명에 달하는 임원 선임권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임직원에 대한 인사권한이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제왕적 지배구조 하에서 회장이나 친인척의 부정에 대해 본인의 직을 걸고 이를 막아낼 임직원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그분의 눈 밖에 날 경우 승진은 고사하고 당장 쫓겨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데 그 누가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과도하게 정상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적절히 분산시키고, 임원의 임면 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넷째, 제도 또는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이를 운영하는 사람도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법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조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영진이 솔선수범하여 윤리적 문화를 형성하고, 정착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
다섯째, 내부고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내부고발은 조직 내부의 횡령 등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제도에 대한 홍보 또는 인식 부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제도의 자세한 내용과 필요성 및 절차 등을 적극 홍보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물론, 신상과 그 신분을 법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부정이 조기에 적발되도록 하여야 한다. 적어도 내부고발자가 조직 내에서 받을 비난이나 보복 등 불이익 때문에 부정을 눈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부정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서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확실히 심어줘 신상필벌의 조직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직도 감사조직이나 감사업무가 기업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거나 불필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등 조직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조직쯤으로 인식하는 경영진도 있다. 특히 금융권의 경우 외부 감독기관과의 원활한 관계유지를 목적으로 계속해서 감독기관 출신을 감사로 임명하는 등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감사기능이 3차 방어선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될 때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건강한 조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최근 금융감독 당국에서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내부통제 책무구조도”의 도입·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제도가 “중대재해처벌법” 처럼 최고 경영진의 면책특권만 강화시켜주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근거서류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책임만 피할 수 있게 해주는 형식적인 제도가 아닌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욱희 한국감사협회장(행정공제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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