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손잡은 마크롱…프랑스 전역서 10만명 몰려나왔다

김이현 2024. 9. 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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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대신 우파 바르니에 총리 임명
극우 협조 없이 내각 운영 불가능
일각에선 조기 사임 가능성 나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프랑스 전역에서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에서 1당을 차지한 좌파 연합 대신 중도 우파 성향의 미셸 바르니에 전 외무부 장관을 총리로 선임했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 반발을 뚫고 내각을 유지하려면 극우 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총선에서 극우 약진을 저지한 ‘공화국 전선’을 깼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결국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기 사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 도둑 맞아” 10만명 이상 대규모 시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7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마크롱 파면'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BBC 등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는 전국적으로 150여곳에서 11만명이 바르니에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고 밝혔다. 파리에서만 2만6000여명이 모였다. 주최 측에선 파리에서 16만명을 포함해 30만명 이상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앞서 7월 열린 조기 총선에서 1당에 오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은 그간 관례대로 1당에서 총리가 배출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루시 카스테트 파리시 재무국장을 총리 후보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총리 임명권을 가진 마크롱 대통령은 NFP의 의석(193석)이 과반(289석)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데 이어 5일 중도우파 공화당 출신인 바르니에 전 장관을 총리로 임명했다. 공화당은 총선에서 4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시위대는 ‘민주주의 거부’ ‘선거를 도둑맞았다’ ‘마크롱의 쿠데타’ 등의 구호를 사용하며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무시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일각에선 ‘마크롱 퇴진’ 목소리로 나왔다.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로시오는 “선거 결과는 존중받지 못했다”며 “마크롱 대통령은 영원히 물러남으로써 우리에게 존중을 보여줘야 한다”고 분노했다.

장 뤼크 멜랑숑 불복하는프랑스 대표가 7일 파리에서 열린 마크롱 규탄 시위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여론도 시위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엘라베가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유권자의 74%는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무시했다고 생각했으며 55%는 그가 선거 결과를 훔쳤다고 답했다.

NFP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 중 사회당을 제외한 볼복하는프랑스(LFI), 녹색당, 공산당 인사들도 대부분 시위에 나섰다.

NFP 내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극좌 성향 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민주주의는 승리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아는 기술일 뿐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이기도 하다”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들에게 긴 전투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무너진 공화국 전선…킹메이커 된 극우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한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가 8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에냉보몽에서 한 여성과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르니에 총리에게 첫 관문은 10월 초 내년도 예산안이다. 예산안이 부결될 경우 곧바로 내각 불신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577석의 프랑스 하원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과 공화당의 의석수는 213석에 불과하다. NFP는 바르니에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공언한 상태다. 바르니에 총리가 불신임을 피하기 위해선 결국 극우 국민연합(RN)과 그 동맹 세력에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

RN은 바르니에 총리 지명에 대해 불신임 투표에 당장 나서진 않겠다며 잠정적 지지를 표했다. 그러면서 불신임에 찬성하지 않는 대신 안보·이민 관련 조치 등 여러 조건들을 제시하며 킹메이커 역할을 하고 나섰다. 조던 바르델라 RN 대표는 BFMTV에 출연해 “그는 감시 받는 총리”라며 “우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셸 바르니에(왼쪽) 신임 프랑스 총리가 5일(현지시간) 파리 호텔 드 마티뇽(총리 관저)에서 열린 총리 이임식에서 가브리엘 아탈 전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여권 인사들도 RN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르니에 총리는 한 TV 인터뷰에서 “RN의 이론이나 이념과 공통점이 많지 않다”면서도 “RN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전 총선 당시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를 막자며 좌파와 중도, 우파가 대부분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를 통한 ‘공화국 전선’을 이뤘다. 그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총리 선정에서 주류 정당인 좌파 세력을 배제하고 극우에 내각의 키를 맡겼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마린 통들리에 녹색당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이 RN을 만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오른쪽에 있는 인물을 찾았다”며 “그는 끊임없이 극우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2024년 7월 프랑스 총선 최종 결과. 다만 의회 개원 이후 이합집산을 거쳐 현재 NFP의 의석은 193석으로 분류된다. 폴리티코 캡처


여당 내에서도 공화국 전선 붕괴 책임론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 중도성향 의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폴리티코에 “공화국 전선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바르니에의 운명은 사실상 국민연합에 의해 유지된다”고 비판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은 당초 중도 좌파 성향의 베르나르 카즈뇌브 전 총리와 중도 보수 성향의 자비에 베르트랑 전 노동부 장관을 총리 후보 우선 순위에 올려뒀지만 의회 내 불신임 가능성이 커지며 제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RN의 대주주인 마린 르 펜 하원 원내대표와 임명 직전 통화를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좌파 대신 극우의 손을 잡은 것은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 등 각종 개혁 조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좌파 인사들은 대부분 연금개혁 철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카즈뇌브 전 총리 역시 총리가 되면 연금 개혁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마크롱 조기 사임 가능성도 ‘솔솔’

총리 인선은 마무리됐지만 프랑스 정국의 혼란은 더욱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결국 내년에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에두아르 필리프 전 프랑스 총리는 3일 2027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중도우파 성향의 필리프 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1기 임기 시작인 2017년부터 3년간 초대 총리를 지냈다. 이후 중도 성향 수평선당을 창당해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성향 여권 연합인 앙상블에 소속돼 있다.

폴리티코는 “동맹으로 여겨졌던 필리프 전 총리가 이른 시기에 (출마 선언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 이후를 언급한 것은 그에게 큰 타격”이라고 전했다.

특히 폴리티코에 따르면 수평선당의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필리프 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이 2027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당내에도 2025년 봄 대선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두아르 필리프(왼쪽) 전 프랑스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조기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사임 가능성에 대해서 일축했다. 하지만 필리프 전 총리는 그가 내년도 예산안 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필리프 전 총리는 출마 선언 직후 프랑스 주간지 르 포인트와의 인터뷰에서 조기 대선에도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필리프 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양측의 관계는 6월 의회 해산 결정 이후 급속도로 악화됐다. 필리프 전 총리는 “준비되지 않은 군대를 선거로 보내 연립 정부를 죽였다”고 마크롱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필리프 전 총리의 대선 발표로 인해 여권 내분도 우려되고 있다. 필리프 전 총리는 지난 2일 마크롱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출마 선언 계획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르네상스 소속 프랑수아 파트리아 상원의원도 “(출마 선언은) 적절하지 않은 시점”이라며 “필리프는 안정을 찾는 것이 시급할 때 개인주의를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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