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시너지 노림수? 과도한 보수주기?
그룹의 시너지를 내기 위함인가, 보수를 많이 주기 위한 과도한 겸직일까.
최근 대기업 오너 2·3세들이 핵심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는 바람이 거세다. 해당 그룹은 이들이 전략과 투자를 담당하는 요직을 두루 맡으며 경험을 쌓고, 경영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이사직을 맡으며 책임경영을 시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과도한 겸직은 업무 수행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목적은 경영권 승계 자금을 위한 보수 챙겨주기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이사 겸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수 본인은 평균 2.8개, 총수 2 3세는 평균 2.5개 회사의 이사직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최근 대기업 오너 2·3세의 임원 겸직 사례 중 하나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그는 지난달 28일 한화임팩트 투자부문 대표이사에 내정되며 ㈜한화·한화솔루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4번째 대표직을 맡게 됐다. 한화임팩트가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 부회장에게 바이오·수소 등 미래 먹거리를 찾는 중책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부회장도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사이트솔루션·HD현대마린솔루션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 사장은 오는 10월부터 LS마린솔루션의 대표직을 겸할 예정이다.
이들을 압도하는 ‘다관왕’은 곽정현 KG그룹 사장이다. 곽 사장은 KG케미칼(전 경기화학)·KG디지털에셋홀딩스의 대표이사와 KG스틸(전 동부제철)의 경영지원본부장, KG모빌리티 사장을 맡고 있다. KG이니시스·KG모빌리언스·KG에코솔루션·KG모빌리티커머셜·KG제로인·KG이앤씨에서는 사내이사를 겸직 중이다. 자동차·화학·철강·바이오에너지·전자결제·컨설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임원을 겸하고 있다.
대기업은 힘 있는 오너 일가가 대표나 주요 임원직을 맡으면 해당 계열사의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등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잘릴 염려가 없는 오너 일가는 보다 장기적인 플랜(계획)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21년 3월 김 부회장이 사내이사를 맡은 이후 매출이 1조2000억원(2021년 1분기)에서 1조8000억원(올해 1분기) 수준으로 50% 성장했다.
하지만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표이사를 여러 곳 맡으면 임원으로서의 충실한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8일 “총수 일가가 계열사 여러 곳의 대표를 겸직하는 것은 상장회사라는 개념을 존중하지 않기에 생기는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라며 “회사 간 이해관계 충돌이 생길 수도 있고 이사가 회사의 이익에 충실할 의무를 규정한 현행 상법 규정을 생각하더라도 겸직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의결권 자문사들도 해당 이사가 대표이사직을 포함해 복수의 임원직을 겸하고 있는 경우 “대표이사 직책의 엄중함과 역할을 고려할 때 임원 겸직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오너 2·3세들이 다른 계열사 월급 사장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한화그룹의 김 부회장은 한화솔루션으로부터 30억8300만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30억5800만원을 받았다. 다른 전문경영인 대표이사의 보수는 7억원대에 그쳤다. 김 부회장의 올해 총급여는 9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KG그룹 곽 부회장의 경우에도 계열사에서 맡고 있는 직위별 평균 임금을 합산하면, 비상장사 보수를 제외하고 지난해 최소 17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급여를 더 적게 받는 사례도 있다. 정기선 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에서 같은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가삼현 부회장의 절반 수준 급여를 받았다.
국민연금은 임원직의 과다 겸직 우려가 나올 때마다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한 의무수행이 어려운 자’의 경우 이사 선임에 반대할 수 있다고 명시된 국민연금 수탁자 지침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총수 일가나 현 경영진의 우호 지분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해도 선임안이 부결되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
전문가들은 오너 2·3세들이 어쩔 수 없이 겸직하더라도 보수 금액을 최소화하거나 보수 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문경영인들은 대개 겸직을 할 경우 한곳에서만 대표이사직을 맡고 다른 곳에서는 기타 비상임이사직을 맡으며 명목적인 금액을 받는다”며 “이사직을 겸직하는 총수 일가 구성원들이 한 회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대표이사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립적 이사로 구성된 보수위원회의 설치 의무화, 보수 산정 방식과 내역 공시, 주주승인투표 등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 어떡해, 제2금융도 안 해준대… 대출난민들 땀 뻘뻘
- 의협 “증원 계획 백지화 하고 2027학년도부터 재논의”
- 45세 미만 대졸여성만 오세요…中 수영클럽 멤버 기준
- 30대에 재산 1조 7400억원… 셀레나 고메즈, ‘억만장자’된 비결은?
- 화재 속수무책인데… 정부 “지하 3층 전기차 충전 허용”
- 대출 패닉에… 정부 “엄정 관리 지속, 악화땐 추가 규제”
- 유명 피아니스트, ‘마사지업소 성매매 혐의’ 고발 당해
- ‘감방’ 갈래 ‘깜빵’ 먹을래…청소년 도박 근절에 웬 빵?
- 6세 목조르고 패대기…CCTV 찍힌 유치원 男교사 학대
- ‘쯔양 공갈’ 구제역 “전부 거짓말…국민참여재판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