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우키시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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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 일대에서 요새를 구축하는 공사에 조선인을 대거 동원했다.
공사 도중 굶주림과 매질, 중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일본은 패전 직후 수천 명을 부산으로 보내주겠다며 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浮島丸)호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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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 일대에서 요새를 구축하는 공사에 조선인을 대거 동원했다. 공사 도중 굶주림과 매질, 중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일본은 패전 직후 수천 명을 부산으로 보내주겠다며 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浮島丸)호에 태웠다. 그러나 1945년 8월 22일 오미나토항을 떠난 배는 이틀 뒤 교토 마이즈루항 부근에서 폭발로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로 인해 폭침됐고 승선자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으나,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시켰고 승선자 7500∼8000명 중 3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인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방문에 맞춰 일본이 승선자 명부 일부를 우리 정부에 건넸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인도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대응해 왔으며 이번 명부 제공도 그런 대응의 일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행태를 곱씹어보면 일본 측 설명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지금껏 일본 정부는 명부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답변을 피해 왔다. 유족들이 낸 소송에선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했던 명부가 침몰로 상실됐다”고 했다. 지난 5월에야 일본은 존재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에 명부 3개를 공개한데 이어 미야자키 마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이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 일부를 우리 정부에 건넬 때 사과의 뜻도 표시했어야 한다. 그게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갔다가 희생된 조선인의 비극은 셀 수가 없다. 관동대지진·군함도·사도광산·우토로 마을 비행장 등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지만 일본은 여전히 대부분의 관련 자료를 은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은 물론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 의지도 피력해야 할 것이다.
정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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