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스포츠의 시대
살벌한 기싸움… 인기에 취해
수준 떨어지면 금방 외면받아
바야흐로 스포츠의 시대다. 한때 스포츠 팬 사이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는 무엇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다. 한국의 4대 프로스포츠인 ‘야축배농’(야구·축구·배구·농구)이냐 ‘축야농배’냐를 두고 살벌한 기 싸움이 벌어졌었다. 특히 야구와 축구는 여름 스포츠 대표 자리를 두고 수십 년간 다퉈 왔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이듬해인 1983년 프로축구가 생긴 뒤부터 이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논쟁이 무의미할 정도로 두 스포츠의 인기가 어마어마해졌다.
한국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첫 전성기를 맞이했다. 월드컵 첫 승도 올리지 못한 축구 변방 한국이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사상 첫 16강 진출을 넘어 ‘4강 신화’를 쓰자 곧 전국적인 축구 열기가 끓어올랐다. 프로축구 경기장에 구름 관중이 몰렸다. 2002년 한 해에만 213만여명이 K리그를 직관했다. 전년 대비 약 34% 증가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들끓었던 K리그 인기가 한순간에 식었다. 국가대표 경기만큼 긴장감을 주지 못했고 형편없는 경기력에 실망한 관중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후 축구계는 K리그 붐을 위해 노력했다. 2013년 1·2부 승강제 도입, 연고지 팬 중심 문화 발전 등으로 조금씩 인기를 높여 왔다. 유소년 축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스타 선수도 발굴했다.
프로축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K리그1은 지난해 244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썼다. 승강제 도입 후 처음 평균 관중 1만명을 기록했다. 2부 리그인 K리그2(약 56만명)까지 더하면 프로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3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올해도 8일 기준 K리그1에서만 185만여명을 동원하며 최다 관중 신기록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야구는 늘 한국 제1의 스포츠였다. 고교야구부터 프로야구까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물론 침체기도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KBO리그 관중 수가 정체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이 2008 베이징올림픽이었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이후 야구 열기가 고스란히 프로야구로 전해졌다. 2009년과 2010년 연속해서 연간 누적 관중 590만여명을 모았다. 2011년 첫 6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다음 해인 2012년 700만 관중, 2017년엔 8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올해는 관중 동원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사상 첫 900만 돌파에 이어 1000만 관중 시대가 코앞이다. 이날 기준 2024 KBO리그 누적 관중은 958만4974명이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4800여명에 달한다. 남은 시즌 안에 1000만 관중 돌파가 확실시된다.
축구와 야구 모두 흥행의 아킬레스건을 하나씩 안고 있다. 축구는 여전히 국가대항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국가대표의 성적이 프로 리그에 영향을 준다. 올해 국가대표팀은 아시안컵 4강 탈락 이후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3차 예선에선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이 야유의 대상이 됐다. 최고 인기 스타 손흥민과 이강인이 출전했는데도 4598장의 입장권이 남았다. 국가대표가 잘나가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K리그 인기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야구는 내실이 중요하다. 현장에선 선수들 실력에 비해 야구 인기가 갑자기 너무 높아져 버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몸값에 비교해 경기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관중들은 금세 질려버릴 수 있다. 일부 관중은 단순히 야구가 유행이라서 야구장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SNS ‘인증샷’ 용으로 또는 TV 화면에 잡히고자 야구장에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유행은 금방 지나간다. 인기에 취해선 곤란하다. 선수들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관중이 바라는 건 새로운 굿즈(상품) 출시 같은 겉치장이 아니라 기본을 지키는 정석 플레이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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