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국회 운영”… 여야, 타협 거부하는 ‘국회법’ 전쟁

정우진 2024. 9. 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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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23건·야 42건… 총 65건 발의
야, 탄핵 문턱 낮추기 개정안 등 추진
여, 탄핵 남용 방지 법안 발의 맞불
원구성·필리버스터 등 법안도 충돌


극단적 여소야대의 22대 국회에서 ‘국회법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법은 국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조직·의사 등을 규정한 법률이지만, 여야가 일상화된 대결의 정치 속에서 각자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 시도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경쟁적인 국회법 뜯어고치기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22대 국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회 운영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게임 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5월 30일) 이후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은 모두 65건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23건(철회 1건 포함),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42건의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법안이 37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 다수당의 입법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다. 원 구성 협상 파행, 탄핵 청원 청문회 추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대응 등 여야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원포인트성 개정안 발의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22대 국회 개원 후 7건의 탄핵소추안을 낸 민주당은 탄핵 문턱을 낮추는 내용의 개정안을 5건 발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동관·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의 탄핵안 표결 직전 자진사퇴한 것을 겨냥해 임명권자가 탄핵 대상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이 4건 발의됐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탄핵소추안의 본회의 표결 시한을 없애는 ‘탄핵소추 자동폐기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하지 않으면 자동폐기되는데 개정안은 표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보고 이후 첫 본회의에 자동상정해 표결하도록 했다.

윤석열정부의 ‘시행령 통치’를 비판해온 민주당은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개정안도 4건 발의했다. 정부가 시행령 입법예고 전 국회 제출을 의무화하거나 정부에 시행령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함께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국무위원 등에 대한 벌칙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5건 발의된 상태다.

과거 국회 관행이나 여야 합의에 따랐던 절차를 다수당에 유리하도록 규정한 개정안도 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원내 1당이 의석 비율에 따라 원하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먼저 가져가고 국회의장을 다수당 몫으로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냈다. 같은 당 황정아 의원은 국회의장이 상임위에 불출석한 위원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하고 여야 간사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임위원장이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원 구성 협상이 파행을 빚었던 지난 6월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에 반발해 국민의힘이 ‘상임위 보이콧’에 나섰던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개정안 22건 중 11건은 거야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야당 개정안과는 반대 내용을 담고 있다. 박준태 의원은 국회가 탄핵소추안 발의 시 사유와 증거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도록 하는 ‘탄핵 남용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탄핵안을 남발함으로써 권력분립의 원칙을 해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의 중립 의무를 명문화하고 각종 청문회를 개회일 자정 전에 종료하도록 하는 개정안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또 소속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이른바 ‘정청래 방지법’을 제출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출석한 국무위원, 증인 등을 협박·모욕하거나 명예훼손할 경우 국회 차원의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해서도 법제사법위원장은 국회의장을 배출하지 않은 정당 중 다수당 의원으로, 운영위원장은 여당 소속으로 하는 개정안(김희정 의원)을 냈다. 개정안대로라면 운영위원장과 법사위원장 모두 국민의힘이 맡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밖에도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때 안건에 대한 ‘찬성 토론’을 금지하고 종결 규정을 강화하는 개정안(신동욱 의원)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4건 발의했는데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최수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체포동의안 표결을 본회의 보고 이후 48시간 내 실시하고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체포특권 포기 의사를 국회의장에게 밝힌 경우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거나(김기현 의원), 체포동의안을 기명투표로 표결하도록 하는(임종득 의원) 개정안도 각각 발의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여야가 처한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며 “당장의 유불리를 따져 ‘법대로 하자’는 식보다는 상대 입장을 존중하고 대화해 윈윈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입법기관이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여야 정쟁 성격이 짙다보니 개정안이 실제 통과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지난 19~21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된 비율은 85%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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