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액턴 경이 옳았다
검찰의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 혐의는 두 사건의 인과 관계다. 2018년 3월 청와대는 이스타항공 창업주이자 대선 캠프의 수석 부본부장이던 이상직 전 의원을 기관장 연봉 1위인 중소벤처진흥공단 이사장에 앉힌다. 넉 달 뒤 문 대통령 사위가 이 전 의원이 실제 주인인 타이이스타젯의 임원으로 가 월급 800만원, 빌라 임대료 350만원씩 총 2억2300만원을 받는다. 검찰은 이를 문 대통령에게 준 뇌물로 여긴다. “정실인사의 대가인 뇌물” 혐의에 대한 유무죄의 판단은 물론 법원에서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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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잡한 문재인 전 대통령 검찰수사
끊임없는 절대 권력 주변의 스캔들
‘막중한 책임감’ 주문엔 한계있다면
확고한 부패차단 시스템만이 해법
」
노무현 청와대의 출입기자로 4년여 지켜본 문재인 당시 수석은 부패엔 매우 엄정했었다. 비서실장 매제의 경찰청장 임명, 친노의 TK 실세이던 정무특보의 요직 기용을 결사 반대, 친노 핵심에선 ‘왕따’ 신세였다. 대통령 장모상 때는 민정 직원들을 조문객으로 잠입시키고, 형 건평씨는 상시 관찰 대상이었다(결국은 실패했지만). 경남고 동문 모임조차 한번을 가지 않는 ‘결벽’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번 수사의 귀결이 유죄라면 권력자 그 누구도 가족 앞에선 무너진다는 씁쓸한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평가받는 대통령 대부분도 피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역시 뇌물죄가 적용됐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최고권력 스캔들의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부패란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모든 행위’다. 혈연·업연·학연·지연의 정실 인사 청탁은 공동체의 더 나은 선택과 남의 기회를 가로막는다. 카르텔의 기득권 지킬 전관예우. 권력과 업계가 유착, 경쟁은 막고 진입 장벽 쌓아 독점적 이윤 키우는 담합. 이 욕심 이루려 기댈, 아니 이용할 확실한 고리가 ‘절대 권력’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1887년 영국 액턴 경(남작)의 말이다. 그는 사지 찢기, 머리 분쇄기로 무고한 사람 처형한 종교재판을 담담히 연대기로만 기술한 크레이턴 주교에 격분했다. 액턴 경이 그에게 보낸 서한. “교황과 왕은 보통 사람과 달리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무오류라는 귀하의 호의적 전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전제는 권력자에게 불리해야 하고, 권력 커질수록 이 전제도 커져야 한다. 역사적 책임은 법적 책임의 빈 곳을 메워야 한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대인은 거의 모두 악인이다.”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에 대한 정치·심리학의 검증은 137년간 이어져 왔다.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이 갖게 되면 권력을 타락시킨다”(버나드 쇼), “당신이라면 과연 순수하게 지배를 할 수 있는가”(사르트르 희곡 ‘더러운 손’의 대사)란 반론들 때문이다. 이 논쟁을 숱한 인터뷰·실험으로 검증해 온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옥스퍼드대 박사)는 “모든 증거는 한 방향을 가르킨다”며 이같이 평가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은 남을 지배하려는 높은 공격성, 자기도취·권위주의·권모술수 성향을 지닌다. (그들의 타액에서조차 테스토스테론-공격적 남성호르몬 수치 높으니) ▶권력을 쥐면 더 이기적·위선적에 동정심 없이 힘을 남용하려 한다. ▶우리는 비합리적 이유로 그런 리더를 택하고, 좀 더 너그럽게 봐주며 이끌려 간다. ▶우리가 문제다. 그의 결론. “액턴 경이 옳았다.”(『권력의 심리학』)
필연이라면 줄일 길은 뭘까. ‘자리의 막중한 책임감’ 지니라는 도덕적 접근도 한계 있을 터이니…. 결국 시스템이다. 뉴욕 유엔 외교관들의 주차 위반 미납 과태료가 1800만 달러에 이르자 블룸버그 시장은 ‘삼진아웃 면허 취소’를 감행한다. 위반 1등 쿠웨이트가 1인당 250에서 0.15회로, 2위 이집트가 141에서 0.33회, 3위 차드는 126에서 0회로 줄어든다. 반(反)부패의 문화는 시스템이 이룬다. 다행히도 우리는 액턴 경보다 400년 전 조선 성종 대에 반부패 모델의 DNA가 새겨져 있다. 대간(사헌부·사간원)의 기개 살아 있어 최고 실세 한명회조차 107차례 탄핵에 6개월 파직당한다. 임금 결재에도 대간이 서명 않으면 관직 취임 불가다. 강요하면 집단 사직. 대간은 불체포 특권에 지방 좌천도 금지다.
‘풍문 탄핵’ 논란도 흥미롭다. 양성지가 대사헌(검찰총장)에 임명되자 사헌 부 간부 김제신이 “인사 담당 이조판서 때 많은 뇌물 받았다”며 그를 탄핵한다. 근거 대라는 저항에 성종은 “풍문의 진원지를 밝히라면 그 어느 대간도 마음속 말을 할 수 없다”며 이틀 만에 임명 철회다(이성무 교수, 2009년). 계좌·통화·문자 추적, CCTV 등 조사 수단 없던 때니 뭐 어느 ‘묻지마 탄핵’ 정당이 이에 고무될 이유란 없다.
절대 권력엔 그러니 절대적 견제 시스템이 약이다. 검찰·경찰·감사원 역시 절대 권력의 인사권에 흐물대던 관행을 벗게 하자. 신분의 독립과 공정성 확보할 시스템이 우리 시대의 으뜸 과제다. 권부의 ‘소금’이던 특별감찰관을 없앤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최근 혐의는 다 이때 싹텄다. 절대 권력의 즐거운 불가침 자유, 이는 모두 절대 권력자의 업보로 돌아간다. 액턴 경이 옳았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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