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지금 우리 인권위는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국회 인사청문 과정 중 부적격 논란에도 지난 6일 취임한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얘기다.
“지금 형태라면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믿음의 문제다. 학교에서 둘을 같이 가르치면 좋겠다.” 인사청문회장에서 그가 한 말들이다. “동성애가 질병이냐”는 질문에는 “논란이 많다”고 답했고, 성범죄 피해자 유발론의 전형적 표현인 ‘신체 노출이 성범죄를 증가시킨다’는 게 왜 성범죄자를 두둔하는 주장인지 반문했다. 이전 강연에서는 공교육 내 성교육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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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적격 논란 속 안창호 위원장 취임
종교편향 극복, 내홍 수습 가능할까
법조인 치우친 위원회 구성 손봐야
」
보수 성향 법조인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의 ‘종교·사상·표현의 자유’를 감안하더라도 난센스에 가까운 발언이 많았다. 일반인이라도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판인데 인권위 수장이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 항목에는 이미 성별, 나이, 종교, 성적 지향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이 인권위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대다수 인권단체는 반대하고 보수 기독교단체는 환영하는 이례적인 인권위원장의 탄생이다.
안 그래도 최근 인권위는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김용원, 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부적절하고 거친 언사가 여러 차례 보도됐다. 법조인 출신의 두 위원이 “기저귀 찬 게이” “인권 장사치” “기레기” 등 혐오를 담은 언어를 공식 석상에서 쏟아냈다. 인권위 직원들과의 갈등도 심하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국가 인권기구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따라 2001년 출범했다. 우리 사회 인권의식 제고와 국격 향상에 기여한 상징성이 크다. 인권위는 2006년부터 꾸준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 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대부분인 35개국에 이미 평등법(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2019).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우리나라는 이제 국제사회의 평등법 제정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이제 그 역사성이 끊길 우려가 크다.
국민정서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인권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인권위원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안 위원장은 청문회에서 “소수자 인권도 보호되면서 다수자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국가가 인권 선진국”이라고 말했는데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이처럼 소수 인권과 다수 인권을 대립 구도로 설정하면 양자가 부딪칠 때 인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소수 인권은 침해해도 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와 버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위원 개개인의 성향을 떠나 법조인에 치우친 인권위원회 위원 구성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위원장 포함해 총 11명의 인권위원 중 8명이 법률가·법대 교수다. 법조인들은 법의 엄격한 적용, 법의 안정성에 관심이 있다 보니 인권 현장의 새로운 문제의식,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는 데 취약하다는 평가가 꾸준했다. 인권 문제를 인권 아닌 법의 관점에서 보고,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보다 사법기관처럼 소극적으로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치중한다는 얘기다. 퇴임을 앞둔 김수정 인권위원 역시 한 인터뷰에서 “나도 변호사지만 인권위원이 법조인 위주로 구성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조인의 역할은 실무적 지원에 집중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의 ‘파리원칙’ 역시 인권위 구성에 다양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현 사태에 별 관심 없고 민주당은 (김용원 위원 막말 이후) 인권위원도 탄핵할 수 있게 인권위법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탄핵 정쟁화’보다는 인권위원 선출 제도 개선부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인권위에 퇴행의 빨간불이 켜졌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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