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의 이코노믹스] 전기차 등 새로운 중국 쇼크 넘어설 통상 전략 세워야

2024. 9. 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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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이후 한국 통상의 과제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미국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올해 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는 경우 예견되는 그의 통상 정책을 궁금해하는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강연장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기존의 규범과 합의를 파괴하고 무시한 그의 막무가내식 일방주의 통상 정책 광풍의 영향권에 끌려들어 간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을 ‘관세 신봉자(Tariff Man)’라고 명명했던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귀환한다면 다시 한 번 세상을 혼돈과 파괴로 몰아넣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트럼프와 해리스 누가 당선되든
대 중국 정책 초강경 기조 전망

파격적 보조금 지급과 시장 보호
기술 굴기로 경쟁력 확보한 중국

경제력으로 미국 추월 어려워도
비대칭적 기술·군사력은 위협적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수입 관세 10%를 예고하고 있다. 클럽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듯,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면 관세라는 통행료를 내라는 주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다자간 무역 체제였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서 오랜 세월 협상을 거쳐 지속적으로 내려간 미국의 수입 관세, 그 관세를 모든 회원국에 차별 없이 적용하겠다는 국제적 합의를 무시하는 일방주의다.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를 살리려는 정책이라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지만 보편적 수입 관세는 전반적인 소비재 가격 인상, 서민의 가계부담 가중을 초래할 것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미 초당적 합의 ‘중국은 체제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AFP=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현직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재선 시도를 포기하고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선거는 초박빙의 양상을 보인다. 해리스의 대외 정책은 현 바이든 대통령의 연장 선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연합해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정책을 해리스는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을 대선 후보로 확정한 지난 8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정강 정책에서 증명됐다. 해리스가 대권을 쥐게 되면 기후변화가 통상 정책의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은 ‘노동’과 더불어 민주당의 가치를 대표하는 의제이며, 해리스의 정치 기반인 캘리포니아가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로 의무화하려는 정책 구상을 내비친 적이 있는데, 그의 구상은 해리스에 의해 구체화하고 집행될 가능성이 크다. 통상 정책에 대한 트럼프와 해리스의 전혀 상반된 입장은 저성장 추세가 만성화한 국내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 한국의 기업과 정책 당국에 리스크와 불확실성 그 자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통상 정책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문제에 이르면 그 차이는 좁혀진다.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양극화한 미국 국내 정치에서 미국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체제 경쟁자가 중국이라는 것에는 초당적인 합의가 있다. 미국인의 반중 정서는 바위처럼 단단하다. 국제 정치는 국내 정치의 거울임을 생각하면, 미국 행정부와 상·하원 모두 중국 문제 만큼은 초강경 기조로 흐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누리는 비차별적 대우를 중국에겐 박탈할 작정이다. 자신의 재임 기간 단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의 관세를 파격적으로 인상해 핵심 제품의 미국시장 진입을 봉쇄해 중국과 탈동조화(decoupling)할 생각임을 공개했다. 2016년에 그랬듯 2024년에도 트럼프는 미국 혼자 힘으로 중국을 상대하고 견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 65% 수준 줄어든 중국 GDP

차준홍 기자

2024년에 미국 대선의 승자가 마주할 중국은 2016년의 중국과는 다르다. 2016년만 하더라도 ‘시간은 중국의 편’이라는 대세론이 세상을 활보하던 시절이다. 그 무렵엔 중국의 경제력이 언제 미국을 추월할 것인가를 두고 국제기구와 연구 기관, 컨설팅 회사, 금융회사 등이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예측을 내놓던 것이 대유행이었다. 2024년과 2025년, 2030년…. 숫자는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중국의 주요 1개국(G1) 등극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그들의 예측은 실현되고 있을까. 중국은 8년 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0% 수준까지 따라갔고, 2021년에는 75.2%까지 추격했다. 그것이 정점이었다. 2022년부터 중국은 급속한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2023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65% 수준으로 오히려 미끄러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중국의 경제력이 언제 미국을 추월할 것인지는 지난 수년간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필자의 강연 초반 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단골 질문이기도 했다. 트럼프 등장 이전인 2015년만 해도 청중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의 G1 등극 시기를 분주하게 외쳐댔다. 그런데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이 기존의 포용 정책에서 공세적 저지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 청중이 늘어났다. 트럼프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침묵의 대열에 동참하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순간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 손을 들었다. 그들의 추론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경제는 정해진 경기 규칙에서 진행되는 게임인데, 지금까지 중국의 비약적인 상승세를 가능케 한 것은 미국의 중국 포용 정책 때문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변화할 것이라는 외교 전략적 구상으로 중국을 포용하고 중국에게 자신의 시장과 자본, 기술, 교육을 개방했다. 그런 미국이 변심해서 경기 규칙을 바꾼 만큼 과거와 같은 중국의 성장세가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청중의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학계에서 중국 피크론이 등장하기 전이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하강 국면에 진입했고, 인구 역시 같은 궤적에 진입했다는 관찰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2024년 서구는 새로운 중국 쇼크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구 시장을 융단폭격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와 제조업 규모를 가졌음에도 자동차 산업의 강자가 되지 못했던 중국이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전기차로의 전환에서 세계 최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차의 고속 질주 배경에는 2015년 중국 정부가 내걸었던 그들의 산업 정책인 ‘중국 제조 2025’가 있다. 파격적인 보조금과 시장 보호에 힘입어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의 초기 강자였던 한국과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놀라운 것은 중국의 전기차 생산 능력은 판매량의 거의 2배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판매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서구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전기차 공습, 망연자실한 EU

차준홍 기자

전기차로의 조기 전환을 통해 환경친화적 자동차 산업 생태계 구축과 일자리 공급, 환경 문제 해결의 3마리 토끼를 잡아 침체에 빠진 유럽연합(EU)을 혁신하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던 EU는 충격으로 망연자실한 상태다. 당장은 중국 전기차에 고율의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유럽 최대 자동차기업인 폴크스바겐이 자국 내 공장 폐쇄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으로 몰린 것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트럼프에 이은 바이든의 중국의 기술 굴기 견제와 봉쇄에도, 중국은 중국 방식의 기술 굴기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가장 싼 비용으로 최종 조립을 가장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는’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은 세계가 필요했고 세계 역시 중국이 필요했다면, 2024년의 중국은 신기술의 최전선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2016년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이었다면, 2024년 중국과 세계는 이기거나 지는(win or lose) 관계로 바뀌었다.

다자무역 체제 붕괴…대안 모색해야

셔터스톡

미국 대선을 앞둔 한국은 얼마나 준비됐는가. 첫째, 한국을 여기까지 오게 했던 다자무역 체제는 붕괴했다. 단기간에 복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체제의 설계자인 미국이 스스로 체제의 효과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가진지 8년이 됐고, 2024년 이후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자 체제 만세를 외치며 현실적인 대안 모색에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개방된 세계 경제를 지향하던 미국은 점점 고립화하고 있다. 점점 미국으로의 수출보다 미국으로의 투자가 미국 정책 당국자가 원하는 무역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져야 할 일자리가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우려는 비현실적인 기우일까. 이젠 중국에서 미국으로 방향을 돌린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화학 등 한국 제조업의 핵심 분야에서 대미 투자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 한국 정부와 국회는 미국과 얼마나 치열한 협상을 하고 있는가. 국내 산업계에 상생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가.

셋째, 중국은 더는 한국과 보완적·분업적 산업 생태계에서 협력하는 무역상대국이 아니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었고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멀어지고 있지만, 중국의 비대칭적 기술력·군사력은 위협적이다. 경제 안보의 시대에 그 위협은 더 두렵게 다가온다. 한·미·일 공조 강화를 넘어 선 한국 통상의 대중국 전략은 무엇인가. 유난히 길었던 폭염의 여름이 끝난 지금, 맑은 정신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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