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국가의 기억·추모 필요한 월남 파병 60주년
9·11이라고 하면 대부분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테러 만행을 떠올릴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왔지만, 한국인들에게 또 다른 9월 11일도 의미 있는 날이다. 1964년 9월 11일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선제적 파병 제안에 이어 베트남 정부(월남)와 미국의 요청으로 성사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 날이어서다.
올해는 월남전 파병 60주년이다. 1964년 7월 국회의 파병 동의를 거쳐 의무 요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합쳐 140명이 부산항을 출발했고, 이듬해 2월 13일 비둘기부대를 시작으로 전투병이 파병됐다.
1992년 이동원(1926~2006) 외무부 장관이 출간한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에 '박 대통령이 1961년 11월 최고회의 의장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 케네디에게 파병 의사를 전달했다'는 언급과 '1964년 초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 방한 때는 구체적인 (한국군 파병) 얘기가 오갔다'는 대목이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해 10월 방한한 윌리엄 번디 미국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에게 "존슨 대통령이 우리에게 군사협조를 요청한다면 난 언제라도 미국을 도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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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만여명 참전, 5099명 영웅 산화
전쟁범죄 몰아 상처 덧내지 말고
'서울로' '하노이로' 명명해 윈윈을
」
1973년 1월 27일 '파리 평화협정' 체결로 그해 3월 23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철수하기까지 국군의 월남전 파병은 장장 8년 6개월간 이어졌다. 연인원 32만5517명이 참전했고, 안타깝게도 5099명이 전사했다. 부상병도 무려 1만1232명이 생겼다. 1973년 3월 미군의 완전 철수 이후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지난 60년 동안 월남전은 사실상 기피 대상으로 취급됐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해외 파병 용사의 날'의 법적 근거가 처음 생겼다. 구체적으로 5월 29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2022년 9월 참전유공자법을 개정하면서다. 유엔이 정한 '유엔 평화유지군의 날'과 겹치게 해 베트남의 정서를 배려했다.
지난해부터 전국 5개 국가보훈지청을 시작으로 지자체·지방의회 차원에서 소규모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국가보훈부 차원의 행사로 격상해야 한다는 생존 용사들(17만여명)의 호소에 귀 기울일 만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산업화에 활용된 참전 용사들의 전투근무수당(1인당 연 7800달러) 이슈도 진상을 규명하고 풀어야 할 숙제다.
베트남 공산화로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관계는 단절됐다. 다행히 탈냉전기를 맞아 1992년 12월 22일 외교관계가 정상화됐고, 지난 32년간 양국은 기적적인 관계 발전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베트남 현지에서는 미국에 승리한 전쟁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을까.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는 대표적 베트남 전문가인 안경환(69) 응우옌짜이대학 대외 총장에게 물어봤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외사촌 매형의 권유로 1974년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하면서 베트남과 인연을 맺었다.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던 1989년 베트남 파견 근무를 자원했고, 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에서 외국인 최초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6년간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 5월 『6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베트남』을 출간했다.
-현지에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의 파병을 활발하게 재조명하나.
"그런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1986년 12월 '도이머이(쇄신)' 전략을 채택한 베트남은 실용적인 '대나무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래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며 '옛 원수를 새로운 친구로' 만들자고 강조한다."
-1968년 베트남 민간인 74명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해 한국 법원이 지난해 2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반세기 전에 끝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거론하는 것이 국익에 과연 무슨 보탬이 되겠나. 숱한 전쟁을 겪은 베트남은 과거의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는 마당에 잊으려는 과거사를 들춰내는 것에 오히려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한국군과 직접 싸웠던 베트남 인민군 출신은 '한국군이 용맹하고 강한 군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전쟁을 겪어본 사람만이 평화의 의미를 안다'고 말했다."
-양국의 선린 우호와 윈윈 발전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참전 60주년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양국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행사가 필요하다. 양국 도시에 각각 '서울로'와 '하노이로' 또는 '세종로'와 '호찌민로'를 명명하면 좋겠다. 매년 중·고교생 1000명의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 문화·교육 교류를 추진하면 어떨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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