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국회는 회의를 왜 여는 걸까?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들로부터 받은 신선한 충격이 여전히 생생하다. 메달은 물론이고 정제된 세계관과 당당함이 배어있는 말은 압권이다. 참 청명했다. 태권도 57㎏급의 김유진 선수는 금메달은 운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매일 2시간씩 1만 번 이상 3차례씩의 발차기 훈련. 3만 번 이상 한날도 많았다. 혹독하게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된 자의 자신감다웠다. 양궁 전 부문(개인전, 단체전, 혼성) 챔피언 김우진은 세계 최고 성적을 낸 선수에게도 한 점 우대 없는 대표선발제도의 공정성과 첨단의 과학적 훈련을 창안해내는 이노베이션 체제의 양궁 시스템의 일원임에 자부심을 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작동하기를 희망했다. 배드민턴의 안세영 선수는 자신을 키운 것은 분노라면서 협회의 잘못된 운영과 관행의 개혁을 요구했다. 공정과 개혁을 향해 금빛 화살과 셔틀콕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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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공인의식 결여, 혼돈 낳아
국가대표의 열린 세계관과 대조
권력자 특권 국민 위해 부여돼
」
남자 유도 60㎏급의 김원진 선수는 패자부활전에서 패배함으로써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세 번 연속 출전에서 메달의 숙원을 풀지 못했다. 이게 나의 역량이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왔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탁구 신유빈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 선수에 패배한 뒤에 “저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다고 인정하고 배워 다음에 도전하겠습니다”고 했다. 최고만이 최선이 아니며, 최선을 다해도 승자와 패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상대가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못난 말도 있었다. “이번 올림픽 선전은 해병대 입소 훈련의 결과물”이라고 한 대한체육회장의 경우이다. 2박 3일 극기 훈련에 참여케 한 결정이 좋은 성적을 거둔 배경이라는 자화자찬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의지, 물심양면으로 선수들을 보살핀 지원진, 국민의 응원을 생각하면 낯 뜨거운 공치사다. 더구나 무차별과 비정치를 지향하는 범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군대와 연결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1972년 제20회 뮌헨 올림픽 남자 사격 소구경 복사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의 이호준이 “원수의 가슴에 총알을 날리는 심정으로 쐈다”라고 하여 세계를 경악시킨 적도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예정된 해단식이 갑자기 취소된 것은 부적절했다. 선수와 국민이 마땅히 함께 누려야 할 공공 축제의 기회를 앗아버린 안하무인의 결정이었다. 당연히 ①준비와 성과에 대한 회고 ②선수들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평가 ③후속 계획과 정당화 ④선수와 국민의 정서 공유를 통한 공동체 의식 고양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국민과 함께 ‘올림픽 서사’를 기억하고 축하하며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어울리는 기회를 삭제한 것은 공인의식의 부족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안하무인과 공인의식의 결여는 조화(cosmos) 대신 혼돈(chaos)을 낳는다. 국회도 그 전형이다. 개원 이래 탄핵·특검·청문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소집한 대부분 회의에서 유용한 정보는커녕 눈길을 끄는 새로운 정보도 선을 보이지 못했다. 비합리적인 정치 팬덤 집단을 제외한 국민에게는 독설, 인격 폄하, 인신공격, 괴담, 선동, 비속어가 난무하는 회의였다. 저질 언어도 모자라 고함을 지르고, 성난 표정을 짓고, 삿대질로 시비하고, 상대 발언을 방해하는 폭력적 비언어 난폭 행위를 되풀이하며 의견 공유나 합의 도출은 불가능한 파행 전문 회의에 머물고 있다. 상임위의 상임위로 군림하는 법사위 위원장은 “위원장이 바라는 답을 하지 않는다”고 채택한 증인을 ‘퇴장’시키고, 과방위 위원장은 “뇌 구조가 이상한 것 같다”는 막말로 상대와 회의 자체를 비정상적 존재로 재단한다. ‘법질서’ ‘발언권 정지’ ‘처벌’ ‘마이크 끄기’와 같은 위협 언어가 효율적인 회의 진행과 타협적인 결과 도출에 필요한 위원장의 회의 진행 전문성을 대체하고 회의의 생명력을 앗아가고 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나 회의를 주재하는 위원장이라는 권력자들은 협력과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게 회의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싸움박질 난장판 회의를 조장하고 만드는 안하무인의 권력자들은 공동체를 연결하고 결속시키는 게 아니라 단절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국회는 왜 이런 회의와 진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답답한 일이다. 권력자들은 회의에서 신세대 올림픽 선수들이 보여준 열린 세계관(치열한 전문 실력 개발, 선한 영향력, 혁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도전 의식)을 발휘할 수는 없는 걸까. 권력자들의 특권과 특전은 국민과 공동체를 위한 ‘협력과 합의’를 구축하라고 주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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