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사실이 신화가 된 왕국, 미케네
스파르타 왕비와 트로이 왕자가 벌인 불륜의 도피행각에 격분한 왕의 형,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을 조직해 트로이를 침공한다. 에게 해의 패권을 놓고 격돌한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이 발발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는 신화적 서사로 여겨졌으나 19세기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트로이의 실재를 확인한 슐리만은 곧이어 미케네 유적을 발굴했다. 아가멤논의 왕국이었던 미케네는 기원전 16세기부터 400년간 그리스와 지중해의 최강국으로 군림한 이른바 ‘미케네 문명’의 발상지다. 성곽과 도시구조와 왕가의 무덤들이 잘 보존되어 신화를 사실로 재현하기에 최적의 무대가 되었다.
호메로스는 이 도시를 ‘견고한 성벽’과 ‘넓은 길’과 ‘황금의 도시’로 묘사했다. 바위 구릉 위에 높이 13m, 두께 7m의 성벽을 둘러 난공불락 요새를 구축했다. 20t이 넘는 거대한 돌들을 ‘키클롭스 양식’으로 쌓았다. 신화의 외눈박이 거인(키클롭스)의 작품이란 뜻이다. 성안에 폭 3.6m의 대로를 깔아 교통을 원활히 했다. 성 정문 ‘사자문’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슐리만은 15㎏ 이상의 황금 유물들을 발굴해 황금의 나라였음도 증명했다. 그 가운데는 ‘아가멤논의 가면’이라 잘못 추정한 걸작도 포함되었다.
성안 정상부에 궁전을 지었고 그 아래에 신전과 가신들의 주택을 배열했다. 거대한 원형 매장묘는 왕가의 공동 무덤으로 고귀한 유물들이 나온 곳이다. 전설적인 건국 영웅, 페르세우스의 이름을 딴 저수조는 18m 지하까지 계단식 터널을 뚫은 경이로운 시설이다. 성 밖에 ‘토로스 무덤’을 여러 곳 조성했다. 원뿔형 모양의 돔을 쌓아 내부공간을 만든 왕가의 무덤이다. 추방된 왕자가 반란으로 등극한 후 살해당하는 왕들의 연대기들은 ‘아가멤논’ ‘엘렉트라’ 등 그리스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신흥강자 트로이까지 정복해 지중해의 원탑이 되었지만 결국 미케네는 내부의 혼란과 갈등으로 멸망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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